에코생활

가을, 유혹·손짓만 마시고 다가오세요…농익은 가을 詩語들의 수런거림

세미예 2009. 10. 25. 06:13

황금들녘 사이로 귀또리가 울어대고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코끝을 만지작거립니다. 시릴듯이 푸르른 하늘은 드높아만 갑니다.


형형색색 치장한 단풍은 누구를 기다리는 지 마구 손짓을 해댑니다. 솜사탕을 풀어놓은듯 억새는 머리를 풀고 바람이 유혹할때마다 흐느적거립니다. 빨갛게 익은 감들은 잎들을 떨어뜨린 채 앙상한 가지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가을은 추수와 수확의 계절입니다. 더불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위한 기간입니다. 황량한 겨울을 위한 마지막 풍경의 성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볼꺼리가 많습니다. 삭막하고 황량한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익어가는 가을, 만끽하신가요. 가을은 더불어 추억을 수확하는 계절입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많은 추억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가을, 그리고 추일서정…이 가을엔 꼭 詩를 읽어볼까

가을엔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가을엔 절로 시심으로 돌아갑니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시어들이 조잘거립니다. 반짝이는 시어들이 빚어내는 합창은 귀또리도 메뚜기도 여치도 도토리 줍기에 분주한 다람쥐도 귀를 기울입니다.


농익은 시어들의 수런거림은 현대의 회색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성큼 다가섭니다. 시집을 꺼내어 읊조리고 노트를 꺼내 끄적거려 보는 낭만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아니면 직접 쓴 편지로 가을을 노래해보면 어떨까요.





가을을 노래한 시들을 모아보니

가을의 시어는 잘 익은 와인만큼이나 농익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인들은 가을을 노래합니다. 가을을 노래한 시들을 엮어봤습니다.(저작권관계로 전편을 싣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가을이 온다            <박이도>

9월이 오면 

어디론가 떠나야 할 심사. 

중심을 잃고 떨어져갈 

적, 황의 낙엽을 찾아 

먼 사원의 뒤뜰을 거닐고 싶다. 

(이하 생략)


가을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 보다는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이하 생략)

 

가을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녁이

모두 샛노랗게 눌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이하 생략)


가을  <송재익>

밤나무에 밤이

밤 밤 밤 익어가면


감나무에 감도

감 감 감 익어가는 날

(이하 생략)


가을 <정태현>

가을은

꽃보다도 진한

향기로 젖어온다

 

끝없이 깊은 하늘은

천상이라도 보여 줄듯

마음을 홀리고

(이하 생략)

 

가을 ll  <전재승>

가을에는

가을남자가 되고 싶어

가을음악을 듣고

가을 책을 집어 든다

(이하 생략) 


가을시 ll     <유재영>

지상의

벌레소리

씨앗처럼

여무는

다 못 쓴

나의 시

(이하 생략)


가을의 시       <김초혜>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가을의 시       <곽재구>

오후 내내

나룻배를 타고

강기슭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당신이 너무 좋아하는 칡꽃 송이들이

푸른 강기슭을 따라 한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이하 생략)


가을의 시       <김옥림>

가을엔 단풍에 고이 적어 보낸

어느 이름모를 산골 소녀의

사랑의 시가 되고 싶다

(이하 생략)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이하 생략)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이하 생략)


가을날    <김현성>

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 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 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 버릴 때까지

(이하 생략)


가을에    <양성우>

슬퍼마라.

우리 다시 기다림의 시를 쓰자.

가을은 이미 그릇에 넘치고

보아라, 새벽달도 바람에 기우는구나.

정든 사람들 모두 먼 길 떠났으니,

이 거칠고 마른 나이에 

그 누가 아니 근심하랴.

(이하 생략)

 

가을엔    <황동규>

가을엔 이별의 앞차를 타리. 

길 뚫려 미리 터미널에 나가 

시간 안 찬 차 타듯. 

길 양편에서 손짓하는 억새들을 지나 

그 뒤를 멋대로 색칠한 단풍들을 지나 

(이하 생략)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정유찬>

가을엔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노을 지는 곳으로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 보리라

(이하 생략)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떄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이하 생략)

 

가을의 기도          <김남조>

신이시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못내 당신 앞에 벌받던 여름은 가고 

기도와 염원으로 내 마음 농익는 

지금은 가을


노을에 젖어 고개 수그리고 

긴 생각에 잠기옵느니 

여기 이토록 아름차게 비워진 나날 

가을엔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신이시여 가을엔 

기도드리게 하옵소서 

(이하 생략)


가을의 노래         <베를렌>

가을날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 

단조로운 우울로 

내 마음 

쓰라려. 

(이하 생략)


가을 서곡      <이효녕>

하얀 구름으로 흐르다가 

멎은 자리에 가을은 

나를 불러 세운다


익어가는 기쁨 안에 

그대 있음에 

나의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이하 생략)




가을을 노래한 시와 시인들
이 밖에도 가을을 노래한 시인들이 많습니다. 
가을 회상(김혜경), 가을 사랑(도종환), 가을 엽서(안도현), 가을노트(문정희), 가을 열병(오말숙), 가을 병(정태현), 가을 들판(이수), 가을 숲(정태현), 가을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김태광), 가을엔 그대에게 편지를 쓰렵니다(권정아) 등이 있습니다.




그대에게 가을편지를 쓰렵니다(ID/달마시안), 가을 우체국(이기철), 단풍(이상국), 단풍 한 잎(이은상), 국화옆에서(서정주), 낙엽(예이츠), 낙엽(구르몽<Gourmont)>), 낙엽끼기 모여산다(조병화), 늦가을 낙엽은 지고(남낙현), 가을이 가네(용혜원), 가을날에는 떠나고 싶다(정소슬), 코스모스 연가(정소슬),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이정하), 우리도 때로는 낙엽이 될까요(이효녕), 가을, 그리고 겨울(최하림), 가을시 겨울사랑(전재승),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 오~매 단풍 들겠네(김영랑), 갈대(신경림)

어떠세요, 익히 알고계신 시들도 있고 낯선 시들도 있으리라 믿어요. 이 가을엔 붉게 치장한 낙엽과 익어가는 곡식들과 흐느러진 갈대를 벗삼아 시를 한 수 정도 읽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