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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생활

수능시간 답을 한칸 내려쓰서 아찔?…학력고사날의 아찔한 추억

"수능이 되니 예전 대입시험날이 생각납니다."

"어떤 안좋은 추억이 있었길래요."

"지금 생각해도 당시를 떠올리기 아찔하네요."

"정말 황당했겠어요. 당황스럽기도 했겠네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어요."

"그래도 지금 추억으로 남았으니 천만 다행이네요."




해마다 수능일이 되면 아찔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수능일이 되면 아침부터 수험생을 둔 가정에서는 조마조마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수능일이 되고보니 25년전 당시의 아찔한 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추억은 지나고나면 아름답거나 웃을수 있지만 당시엔 아찔하거나 눈앞이 캄캄하기 일쑤입니다. 


어쩔줄몰라 안절부절하던 대학 학력고사(요즘의 수능)날 추억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학력고사(수능)날 아찔한 기억속으로 함께 떠나봅시다.



학력고사 날 아찔한 추억이 새록새록

예전에는 수능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명칭이 여러번 바뀐 것입니다. 당시는 대학 입학을 위해 지금과 같은 수능이 아니라 학력고사를 치렀습니다. 학력고사를 치고 이 점수를 받아들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지원하는 제도 였습니다. 


당시 날은 추웠습니다. 아마도 이때는 어김없이 '수능한파'가 찾아온 것이죠. 당시 필자는 수능고사장에 입장했습니다. 학교 후배들의 파이팅 소리를 들으면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참으로 꼬이기 시작하더군요.


다른 학교 수험생이 보온병을 깨뜨려?

당시엔 학력고사 추위가 있었습니다. 학력고사날만 되면 날씨가 추웠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점심때 점심과 함께 먹으려고 보온병에 물을 담아갔습니다. 당시엔 점심을 고사장에서 먹어야 했기 때문에 도시락과 물을 수험생이 들고 고사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다른학교 수험생이 내 곁을 지나가다가 보온병을 차버려서 보온병이 깨진 불상사가 생긴 것입니다. 그 당시의 보온병만 해도 안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잘 깨졌습니다. 그 학생이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한 자라도 더 보려고 자기 자리로 가버리더군요. 따지고 싶었지만 일단은 시험이 더 중요했습니다. 일단 시험에 주력 했습니다.




답을 한칸 내려쓴 아찔한 추억 

첫째 시간 열심히 문제를 풀었습니다. OMR카드에 정답은 최후에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를 풀고 다시한번 점검했습니다. 드디어 감독선생님이 답안을 OMR카드에 옮겨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답안을 OMR카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죠. 답안을 다 옮기고 나니 내려쓰다보니 내가 적은 답이 남는 것입니다. 뒤늦게 답을 내려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후다닥 감독선생님께 신고를 하고 OMR카드를 다시 받아 후다닥 작성했습니다.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고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군요. 답을 어떻게 OMR카드에 작성했는 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작성했습니다. 미처 몇 문제 답안을 못메웠지만 답안을 내러 가면서 채웠습니다. 정말 간신히 답을 채웠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시험을 쳤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답을 채웠고, 단지 다시한번 더 답안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외에는 그렇게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시간도 첫 시간의 기억이 남아 

문제는 나머지 시간 첫 시간 시험을 망쳤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몹시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첫 시간 시험을 잘못쳤으니 나머지 시간 시험에서 만회하자는 생각이었죠. 둘째 시간 시험부터는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리고 독을 품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부 시험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대충 답을 표시한 것을 들고 수험시험 문제풀이 방송에 들어가 보니 첫째 시간 그렇게 망친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더 최선을 다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깨진 보온병과 관련 부모님께 들을 야단 생각에?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데 부모님이 고사장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점심과 물을 따뜻하게 먹었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잘 먹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점심시간 도시락에 찬 물로 밥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차마 보온병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집에서 부모님이 물어 보시길래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습니다. 





세월은 흘러도 대입시험의 긴장은 여전

세월은 흘러도 대입시험의 중요성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수험생들의 긴장도도 여전합니다. 문제는 제도의 개선인데 매년 반복되는 대입제도의 개선책이 아직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개선책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긴장 푸시고 최선을 다하시면 좋은 결과와 좋은 날이 올것 입니다. 힘내시고 좋은 결과 이뤄내시길 바랍니다.

  • 온누리 2008.11.13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어찌 그런 일이
    정말 눈 낲이 캄캄했을 듯 합니다
    날 좋습니다. 좋은 날 되시구요

    • 예전엔 학력고사로 대학을 가기 때문에 시험을 잘못치면 한해 농사, 인생의 큰 마이너스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눈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답안지를 내러 가면서까지 OMR카드에 답을 적어서 간신히 제출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기억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앗 학력고사가 선지원 후시험 아니었나요 ㅡ.ㅡ??? (꼬투리는 아니고 흐...)

    이런 아찔한 경험이 있으셨군요.

    저도 학력고사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바로 잠 =.= 점심 식사를 맛나게 먹고(역시 도시락이었죠) 나른해진 영어 시험 시간. 듣기 평가를 끝내고 솔솔 잠이오는데 어느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감독 선생님 曰 20분 남았습니다 =.=

    어떻게 합격을 했는지 원 흐...

    • 선지원 후시험이 아니고 학력고사를 치고나면 점수가 학교로 옵니다. 그 점수를 들고 고교서 대학원서를 쓰들고 접수시켰죠. 저희 시대엔 그래서 접수마감까지 막판 눈치경쟁이 치열했죠. 운이 좋으면 턱없는 점수로도 좋은 대학 좋은 학과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그 시대 시험을 쳤습니다.

      선지원 후시험 제도는 우리 앞세대의 본고사 시절이고요, 또 우리 뒷세대에 그런 제도가 있더군요.

      우리 세대는 대학졸업정원제 시대입니다.

    • 아..그렇구나. 저는 세미예님보다 뒷세대고 수능 전전전 세대 정도 되네요. 그때는 선지원을 하고 후시험을 쳤었습니다.

      흐...역시나 변화무쌍한 교육제도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