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어쩌나, 결혼기념일을 깜빡했습니다

세미예 2008. 6. 21. 08:39

"평생 호강시키고 정말 신나게 살도록 해줄께."

"정말요? 말만 들어도 행복해요."

"두고봐, 꼭 그렇게 만들어줄께."

"꼭 그렇게 해주세요. 재밌게 살도록 노력할께요."

"열심히 서로 도와 알콩달콩 재밌게 살자."

"그래요, 멋지게 살도록노력할께요."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께요."





이런 다짐은 결혼하기 전에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결혼이란 현실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다짐들을 흘려버리기 쉽상입니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기념일을 꼽으라면 결혼기념일, 아이들 생일, 아내 생일, 양가 어른들 생일 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연거푸 2개의 기념일을 깜빡하고 잊었습니다. 엊그제는 결혼기념일입니다.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해마다 챙겼는데 엊그제는 그만 나도 모르게 깜빡했습니다. 초창기에는 꼬박꼬박 잊어버리지 않고 잘 챙겼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 곧잘 이런 다짐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지난달말에는 큰애 생일도 그렇게 깜빡했습니다. 집사람은 당일날 내색을 안하더군요. 요즘 날씨가 무더워서 일까요. 아니면 이것 저것 바쁘다는 핑계때문일까요. 그래서 곧잘 잊어버리곤 한답니다.

그런데 어제 드디어 화를 부른 것이지요. 사소한 것이라도 챙겨주면 집사람은 결혼기념일을 기억해 줬다는 그 사실 하나에 감격해서 남편의 존재에 관해 다시금 느끼곤 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하죠. 그래서 기념일을 기억해주면 더 감격해 하는 모양입니다. 어제 아침, 집사람이 느닷없이 예전의 신혼여행 시절을 이야기 하더군요. 그제서야 가시방석이었습니다. 말은 안해도 몹시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집사람 이야기가 무던히도 부담스러워 화제를 은근슬쩍 딴곳으로 돌려 난처함을 모면했습니다.

집사람 보기에 미안해 퇴근길에 화장품 세트를 들고 갔습니다. 집사람은 돈들어갈 곳도 많은데 웬 화장품이냐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제의 화장품 세트를 회사에서 나눠준 것입니다. 그런데도 집사람은 그 자초지종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올해의 결혼기념일 해프닝은 적당히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루 하루는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면 엄청 중요한 날이 되고 맙니다. 특히,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 관계로 기념일은 의미 이상의 중요한 날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결혼기념일은 부부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나날이 그 의미에 대해 퇴색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오래오래 그 기념일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고 함께 되돌아보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같습니다.




여러 축하객들에게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했던 그 수많은 나날들이 흘러 이제는 다짐이 약해질 무렵이면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이 다가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내년에는 좀 더 근사한 결혼기념이 될 것이라 다짐하면서 아내에게 이래저래 미안하고 송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