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고향은 시골? 내 고향은 산부인과?…고향이 뭐냐고 물었더니? 고향은 어디?

세미예 2010. 9. 4. 09:22

풀벌레소리가 귓전을 간지작거립니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가 울어댑니다. 바로 옆 풀숲에서는 메뚜기가 한참 식사를 즐깁니다.  이 모습을 성글성글하게 익어가는 해바라기가 큰 얼굴을 하고서 내려다 봅니다.




여름이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매미는 자지러지게 울어댑니다. 하늘은 자꾸만 높아만 갑니다. 길가의 코스모스들은 벌써 하늘거립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농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은 소적삼속으로 스멀거립니다.

사람들은 벌초로 기나긴 차량행렬을 이룹니다. 빨갛게 익은 석류는 금방이라도 터질듯 합니다. 내년을 준비하려는 듯 호박과 오이는 노랗게 익어갑니다.


고향이 뭐길래? 고향이 그리움의 존재일까?
한때 가고싶어도 가기 힘든 곳이 있었습니다. 큰마음 먹지 않고서는 가기 힘든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향이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운 것일까요.




고향이 뭐길래? 산부인과 세대들의 고향은?
"고향이 어디야?"
"태어난 곳 말이야."
"00산부인과입니다."

오늘날 산부인과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고향에 대한 존재감이 희박해져 갑니다. 하지만, 도시와 산부인과가 아닌 곳, 특히 농어촌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고향의 존재가 특히 강합니다.



고향이 뭐길래? 고향은 왜 그리움의 존재가 되었을까?
고향은 그리움 그 자체입니다. 태어나 자란 곳이기 때문입니다. 연어도 회귀본능이 있고, 여우도 죽을때는 자신이 자란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고향은 바로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본향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이 뭐길래? 고향의 존재의미 왜 약해졌을까?
오늘날 고향의 존재의미가 희박해져 갑니다. 급속한 도시화와 농어촌의 도시물결 유입 등으로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사람들에게조차도 점차 원초적인 농어촌의 모습이 희박해져 갑니다.

고향의 의미보다는 점차 농촌과 어촌, 산골, 혹은 시골의 의미로 점차 각인되고 있습니다.  

고향을 사진으로 돌아보니
희미해져가는 고향의 존재의미를 되살려 보고자 사진으로 고향여행을 떠나봅니다. 



















고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고향이란 존재의미가 나날이 희미해져 갑니다. 아이들에겐 단지 엄마와 아빠가 태어난 곳이고 시골이란 존재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향의 존재가 우리가 가꾸고 간직해야할 우리모두의 본향이란 존재로 알려준다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벌초와 추석명절을 맞아 고향에 관해 생각해볼 시간이 많습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고향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준다면 한층 의미있는 명절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