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고생했는데 또 시댁에 가면 마음 고생합니다.”
“무슨 소리야? 시댁에 가면 뭐가 그리 불편한데.”
“한복부터 호칭까지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다 그렇게 해서 이땅의 어머니들은 가정을 일구고 가꿨데.”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요.”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달라지지 않을까."
설을 앞두고 엄마 세미예 후배가 설날 새해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 후배의 입에서 하소연부터 쏟아집니다. 몹시 설날이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설날 뿐만이 아니라 명절을 치르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닌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명절이 불편한 것일까요.
명절은 흔히 흥겨운 정이 오가는 민족 최대의 축제의 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흥겨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왜 이땅의 여성들에게 명절은 힘든 것일까요.
명절날 한복 입고 시댁에 가야 하는 불편함?
엄마 세미예 후배는 지난해 9월 결혼했습니다. 그야말로 신혼꿈에 부풀어 있건만 명절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첫 명절인 추석을 치르고 난 후 이번 설엔 시댁 가는 길이 덜컥 겁부터 난다고 합니다. 명절을 치르는 게 마치 한 편의 사극을 촬영하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추석 때 시어머니는 첫 명절이라면서 한복을 입고 오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그 주문이 이번 설에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복을 입으라고 한 것은 친척이나 시부모의 지인 혹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꼭 한복을 입고 오라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명절이면 사극 촬영하는 기분?
지난해 추석 때엔 첫 명절이라 한복을 입고 오라는 시어머니의 주문에 시키는대로 한복을 입고 시댁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량한복이면 모를까 한복을 제대로 차려 입고 그대로 생활한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한복을 결혼식 때도 불편해서 한 시간만에 훌훌 벗어던졌는데 하루종일 한복을 입고 시댁 어르신들의 밥상이며 술상을 나르느라 여간 불편했던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불편함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번 설에도 또 다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오고 명절이 안 왔으면 했다고 합니다.
이번 설날에도 그렇게 불편한 한복을 입고 음식상을 차리고 음식을 장만하고 설거지를 해야하기 때문에 그 불편함에 가슴이 턱턱 막혀 온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어머니의 말에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없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시댁식구며 시댁친척 호칭 왜 이렇게 복잡할까?
이 후배를 몹시 불편하게 하는 또 다른 것은 시댁식구와 시댁 친척의 호칭문제도 있었습니다. 아가씨, 아주버님, 동서, 형님, 시누이 등등 시댁 식구부터도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시댁 친척들을 만나게 되면 어떤 어떤 친척이라고 시어머니가 소개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솔직히 그냥 인사만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상한 호칭과 인사를 이번 설에도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며느리가 알아야 할 가족 호칭은
시어머니가 시댁 친척들 인사를 해야하니 호칭 공부를 하고 오라기에 실수를 하거나 난감해하지 않으려 엄마 세미예 후배는 사전에 호칭에 관해 공부를 했건만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후배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시댁 식구들을 부를 때 아내는 자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서 호칭을 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시부모님은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고 시아버지의 형제 자매와 그 배우자는 남편의 입장에서 보아 ‘큰아버님’, ‘큰어머님’ 또는 ‘고모님’, ‘고모부님’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시어머니의 형제 자매는 ‘이모님’, ‘이모부님’ 또는 ‘외삼촌’, ‘외숙모’라고 부릅니다. 남편의 형과 형수는 ‘아주버님’, ‘형님’이라 부르고 남편의 누나와 매형은 ‘형님’, ‘아주버님’이라 부릅니다. 남편의 매형을 부를 때는 살고 있는 지역의 명칭을 붙여 ‘○○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남편의 남동생이 미혼이라면 ‘도련님’, 기혼이면 ‘서방님’이라 부르고 그의 아내는 ‘동서’라 부르면 됩니다. 남편의 여동생은 ‘아가씨’, 그의 남편은 ‘서방님’이라 부릅니다. 남편의 사촌은 친가, 외가 구분 없이 남편의 형제를 부를 때와 동일합니다.
호칭문제에서 민감하고 애매한 부분이 바로 동서지간의 호칭입니다 ‘형님’, ‘동서’로 부르는 게 맞지만 나이가 뒤바뀌면 난감합니다. 이럴 때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손윗동서라도 ‘형님’이라 부르고 손아랫동서가 나이가 훨씬 많을 경우에는 ‘동서’라 부르되 맞존으로 대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얼핏 간단할 것 같지만 실제 이를 대입해 보면 여간 복잡하고 헷갈리는 게 아닙니다.
시댁 식구들은 왜 극존칭을 사용해야 할까
엄마 세미예 후배는 결혼을 하기 전 남편의 남동생과 여동생과는 당시 편하게 만나 이름을 부르며 술잔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의 남동생과 여동생에게는 꼬박꼬박 ‘도련님’, ‘아가씨’라고 불러야 했다고 합니다.
이 후배가 알 수가 없고 다소 황당한 것은 시댁 식구들에게는 극존칭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댁 어른들이 이 후배를 부를 때에는 ‘며늘애야, 새아가, 새언니, 형수’ 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자신은 극존칭을 사용했는데 이 후배를 시댁식구들이 부를 때에는 평대를 하거나 하대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펐다고 합니다.
가족 간의 가부장적 호칭 바꿔야?
이런 문제점이 있어 정부에서도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 문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명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주제라고 합니다. 아가씨나 도련님 등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유교문화에서 출발한 호칭을 이제는 양성 평등한 용어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현실화까지 먼 길이라 이 후배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합니다.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언어 스트레스 아찔?
이 후배에게 명절 스트레스 중 언어적인 문제도 심각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 후배의 시부모처럼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어른들과 신세대 며느리의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달라 앞으로 부딪히게 된다면 겪을 그 위험수위가 아슬아슬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신세대 며느리가 받는 고통은 지금은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터뜨릴수가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어른들과 신세대 며느리는 부딪히면서 그 위험수위가 점점 높아가고 있어 그 후배를 보는 게 위험천만했다고 합니다.
내 딸은 힘들어선 안되고 며느리는 힘들어도 된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명절이 되니 자신의 딸은 시집을 가서 시댁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감을 토로하더랍니다. 하지만, 자신의 며느리는 '친정조차' 못가게 하고 좀 더 오래 머물러주길 바라는 발상이 참으로 서운하고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원한 감정을 내색할 수가 없어 속으로만 삼켰다고 합니다.
가족 맞아? 남의 집에서 며칠 머물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이 후배가 결혼 후 지난 추석명절을 보내고 보니 시댁을 가는 게 솔직히 너무나도 불편했다고 합니다. 우선 이 후배에게도 '가족'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남편의 가족이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자라온 남편의 집이지만 사실 이 후배에게는 남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런 남의 집에서 몇날 며칠을 머물면서, 시댁 식구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부적절한 행동과 부적절한 대화를 툭툭 던지는 데 자신은 마음놓고 할 말을 할 수가 없어 없던 스트레스도 저절로 생기더라고 합니다.
굳이 명절날 모일 이유가 있을까?
솔직히 이 후배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굳이 명절에 가족이 모일 이유가 있느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명절 스트레스 중 하나로 꼽히는 차량 교통체증은 아무래도 고통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는 고통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댁을 가서 받는 스트레스는 아무 말도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어 답답하고 마냥 스트레스가 쌓여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땅의 며느리도 딸 아닌가?
여성으로 태어나 결혼을 하면 가정을 이룹니다. 결혼으로 시어머니도 생겨나고 시댁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며느리를 맞아들이면 시집을 왔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했다는 평행선 관계가 아닌 시집을 왔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이런 관계를 벗어나 우리집 며느리도 사돈집의 소중한 딸이란 생각을 하면 어떨까요. 그런 발상과 생각에서 서로 존중하고 깊은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이 즐거운 명절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든 일보다 마음이 다치면 명절 상처 깊다?
명절스트레스는 음식 장만이며 설거지 등 일이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간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작은 마음을 보듬는 그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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