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도 꽃이 다 피어요."
"글쎄요, 어쨌든 나무라는 이름이 있으니 꽃을 피우겠죠.""그런데 왜 대나무꽃은 보기 힘들죠."
"그런데, 왜 아직 대나무꽃을 못 봤죠?"
평소 한번씩 산책하는 곳이 대학캠퍼스 교정입니다. 이곳에 제법 큰 대나무밭이 있습니다. 곧잘 산책을 하는 곳이라 계절이 기어가는 소리, 뛰어가는 소리, 내리는 소리, 날라가는 소리까지 다 듣게 됩니다. 계절은 그렇게 기어서 왔다가 또 그렇게 기어서 가버립니다. 그런 대나무밭을 10년을 훨씬 넘게 보면서 단 한번이라도 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 나무인줄 알았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대나무꽃. 그 처연한 대나무꽃이 피었습니다.
나무에게서 배운 지혜, 대나무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
켜켜이 묵은 머리를 곧추 세우고자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가 먼지가 또 켜켜이 쌓인 책 한권을 손에 잡았습니다.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입니다. 하필이면 왜 이 책이 책장에 꽃혀 있었는지 왜 이토록 먼지가 쌓였는지 모릅니다. 또 왜 하필이면 이 책이 손에 잡혔는지 모릅니다.
'왜'라는 숱한 의문부호를 뒤로 한채 책장을 넘겨봅니다. 책제목이 생경한게 여간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왜 이 책의 저자는 나무처럼 살고자 했을까요. 표지를 보니 '나무에게서 배운 인생의 소금 같은 지혜들'이라는 구절이 책을 한 장 두 장 자꾸만 넘기게 합니다. 그는 죽음이라는 엄청난 문턱에서 나무를 만났다고 합니다. 나무를 만났기 때문에 그는 삶을 연장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무의사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의사가 다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희한안 직업과 이색 의사가 다 있다는 생각에 빠져 한 장 한 장 읽다가 어느새 끝장까지 훌라당 다 읽어버린 책입니다. 참 오랫만에 책을 완독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습니다. 책을 덮고나니 책을 오랜만에 다 읽었다는 색다른(?) 환희 대신에 무엇이 책을 끝까지 다 읽게 했는지 그 동기가 여간 궁금해지지 않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아마도 책속의 대나무가 스멀금스멀금 감정의 심연을 자극해 책을 끝까지 손에 잡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귀한 대나무꽃이 피었습니다. 그것도 도심에 피었습니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이야기를 아무리 해대도 역시 봄은 봄입니다. 모든 것이 소생한다는 봄입니다. 싱그러움과 왕성한 성장을 자랑하는 여름입니다, 봄과 여름에 피워낸 꽃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가을입니다. 새순을 피워올리고 꽃을 내고 열매를 익게 만들고 낙엽으로 잎을 떨거낸 다음 시러죽는게 나무의 일생입니다. 아니 잠시 시러 죽지만 내년 봄 소생을 기약하게 됩니다. 그런 계절이 겨울입니다. 나무라면 지극히 평범한 흔히 이런 사이클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나무와 달라도 너무나도 다른 게 대나무입니다. 봄이 와도 여름이 되어도 가을이 되어도 그리고 겨울이 되어도 뚜렷한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다고 하면 '무슨소리'라며 죽순을 피워냅니다. 이 죽순은 하루아침에 쑥 커져버립니다. 놀라운 성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래저래 참 희안한 나무가 대나무입니다.
대나무꽃? 대나무가 꽃이 피는 나무였던가?
나무는 변화를 거듭합니다. 봄이면 가녀린 새순을 위로 밀어 올리고 이윽고 싱그런 잎들과 무성한 가지들을 선보입니다. 꽃은 또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가요. 그 화려한 꽃이 지고나면 씨알 굵은 열매를 가을선물로 내놓습니다. 그리고선 가을엔 울그락불그락 또 곱디고운 단풍까지 선물합니다.
나무는 1년 동안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하건만 대나무는 변화가 없습니다. 아니 조금씩 변화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숱한 나무들이 화려한 꽃을 선보일 동안 묵묵히 화려한 꽃을 지켜만 보고있었던 그 나무가 대나무입니다.
흔하디 흔한 나무들이 그 화려한 꽃을 피우고 또 열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나무는 화려한 꽃도 사람들을 현혹시킬 열매도 없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대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왜 사군자에 넣었는지 성현들의 지혜를 알것도 같습니다.
참 희안한 나무인 대나무. 그 대나무가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60~120년 동안 단 한번 꽃을 피우고 그 즉시 생을 마감한다고 하니 대나무의 꽃은 꽃이 아니라 피를 토해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대나무꽃을 보고 싶은 열망이?…대나무꽃을 보다니?
어린 시절 대나무밭이 있는 농촌에서 자랐고, 대나무와 더불어 살아왔건만 대나무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나무는 꽃을 피워낼줄 모르는 나무인줄 알았습니다. 매스컴에서 대나무꽃 소식이 들려올때마다 돌연변이 이거나 아니면 무슨 안좋은 징조가 일어날 전조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대나무꽃을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60~120년 동안 단 한번 꽃을 피운다는 게 신기했고, 꽃을 피우고 생을 마감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글퍼 꽃을 본다면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숱하게 학습된 머릿속에서 대나무꽃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대나무꽃을 꼭 한번 보고싶다고. 기구한 생애주기를 직접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까지 한꺼번에 분출했습니다. 그런데, 딱 그까지였습니다. 대나무꽃은 역시 쉽게 볼 수 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나무꽃은 꽃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대나무꽃 눈으로만 구경하세요'
이런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정말 우연히 대나무꽃을 만났습니다. 부산 수영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작은 팻말 하나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구청에서 붙여놓은 것입니다. 순간 그토록 찾던 대나무꽃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는 전율이 머리를 타고 흐르더니 이내 발끝까지 이르러 몸을 굳어버리게 만듭니다.
무수히 작은 꽃들, 가녀린 꽃대, 이게 대나무꽃이었어!
대나무꽃을 보고 싶다는 오랜 욕구가 마침내 이뤄지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대나무꽃이 이상합니다. 한 발만 떨어져 바라봐도 꽃다운 모양새가 아닙니다. 꽃이라면 응당 있어야할 화려함과 거리가 멉니다. 수술과 암술, 꽃대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내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리려다 기념샷을 촬영하려 가까이 다가갔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무수히 작은 꽃들이 붙어서 붙어서 피어있고, 너무나도 작은 꽃대들이 사람의 눈이 볼까봐 살포시 피어 있습니다. 작아도 너무나도 작은 꽃대들과 꽃잎들이 사람들에게는 꽃으로 보일리 만무했습니다.
주변의 대나무들이 일시에 한꺼번에 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그 꽃이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지 않는다면 대나무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그런 모양새입니다. 순간 '이래서 대나무꽃을 구경하기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꽃을 피우지 않고, 꽃을 피워도 너무나도 꽃이 작아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사람들은 대나무가 꽃을 안 피우는 나무인줄 알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연한 대나무의 죽음, 마지막 순까지 선비의 지조가?
대나무에서 조선 사대부의 꼿꼿한 기개를 읽습니다. 그 기개는 늘 푸르고 꼿꼿한 지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대나무꽃을 보고나니 하나 더 발견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대나무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 죽음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 삶을 연장하려 온갖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대나무는 달랐습니다. 제대로 된 꽃을 피우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과연 선비의 기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향기조차 없는 대나무꽃이 피었습니다
봄이면 나무들은 가녀린 새순을 피워내고 이윽고는 화려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그 씨앗을 땅으로 뿌려 다음 세대를 이어갑니다. 말하자면 나무의 꽃은 세대를 이어가기 위한 처절한 종족본능의 몸짓입니다. 생명을 연장하고 종을 보존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하지만, 대나무 꽃은 이런 공식에서 완전히 빗나가 있습니다. 대나무 꽃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생명의 끝, 땅 속에 숨어 있는 한 줌의 생명까지도 완전히 말려버리는 잔혹한 죽음을 위한 처연한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처연한 아픔을 지닌 대나무꽃. 하지만, 대나무 꽃이라는 걸 알고 보지 않으면 꽃인지도 모르는 게 대나무 꽃입니다. 꽃이라면 응당 있어야할 향기조차 없습니다.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저 보리 이삭 같다는 느낌입니다.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향기도 없는 죽음을 향해가는 처연한 대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삶의 허허로운 손짓, 소소한 기적, 대나무꽃은 그렇게 피어?
대나무꽃을 평소 한번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간절히 대나무꽃과 조우하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참 기분이 묘합니다. 평소 그토록 원했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는데도, 환희나 감탄이나 경건함은 오간 데 없고, 처연함이 느껴집니다.
세상살이도 혹시 뭐 다 이런게 아닐까요. 어느날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만났건만 이내 허무에 빠지고 마는 것. 우리는 오늘도 이런 소소한 기적을 경험하면서 그 기적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래요, 세상살이가 뭐 별건가요. 세상에서 기적이라거나 신비하다고 믿는 그 자체도 알고보면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이었다고 되뇌이면서 말입니다. 그 속엔 대나무같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배여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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