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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짱, 이곳이 당신의 또다른 고향 아시죠…이곳 꼭 보세야죠

세미예 2009. 5. 28. 08:03

노짱에겐 고향이 두 곳 있습니다. 한 곳은 태어나 자란 김해 봉하마을입니다. 또다른 고향은 정치적 고향입니다. 그곳은 다름아닌 부산 동구지역입니다.


이제 대통령님과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조금씩 다가옵니다. 대통령님에게 고향마을 못지않게 정치적 고향도 꼭 보시고 가시라고 부산 동구지역을 다녀봤습니다.


노짱, 잘 보세요. 이곳 부산 동구가 한명의 변호사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그리고 대통령으로 키워낸 곳입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정치를 시작하셨습니다. 골목골목을 성능 안좋은 메가폰을 메고 누비기도 하고, 때로는 마이크 없이 목소리로 외치다 목이 쉬기도 했던 그때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부산 동구 일대. 부산역과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짱을 제13대 국회 초선의원으로 키워낸 곳 부산 동구

1988년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됩니다. 1971년 제8대 국회이래 17년만의 소선거구제에 의한 선거였습니다. 부산 동구에서도 1명만을 뽑았습니다.


노짱은 이곳에서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이 되었습니다. 중선거구제 시절엔 중구와 동구 영도구가 한 선거구였습니다. 이 3개의 구에서 2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었습니다. 박찬종, 김정길 전 의원 등도 모두 이곳을 통해 배출된 국회의원입니다.

 

부산 동구지역은 대대로 야당성향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여당 후보가 별로 선전한 적이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전국구를 포함 민주정의당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을 획득했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이 과반수에 미달하는 이른바 여소야대국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짱은 초선의원 금뱃지를 처음으로 다셨습니다.


노짱은 당선사례를 하시려고 트럭을 타시고 손을 흔들며 달동네를 돌아다니셨습니다. 동구 곳곳엔 노짱의 감사 플래카드가 내걸렸습니다. 


하지만 노짱은 1992년 3월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애석하게도 낙선하셨습니다. 그래도 노짱은 트럭을 타시고 동구지역을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에게 성원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부산역 대합실. 이곳을 통해 노짱을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부산역 광장. 이곳에서 노짱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호소하셨다.


초량동 산복도로. 산복도로는 높은 곳에 도로가 뚫려 있다.


초량동 일대의 올망졸망하게 붙은 집들.


노짱이 선거운동 했던 부산역과 초량동 일대

초량동 일대는 부산역과 부산항이 인접해 있습니다. 부산의 많은 곳이 바다를 끼고 있지만 초량동 일대는 부산항이 손에 잡힐듯 한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노짱은 이곳에서 1988년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1992년 3월24일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1995년 6월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선거때마다 이곳 부산역에서 정견발표를 하셨고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부산역에서 시작, 차이나타운 거리(일명 텍사스촌), 초량동 주택가, 초량시장, 초량동 산복도로를 누비면서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동일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린 후보자 정견발표회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노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정동 산복도로와 수정동 일대.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 전경.


동구 수정동일대. 부산항과 저멀리 영도가 보인다.


수정동 산복도로와 수정산.


노짱이 누비던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는 노짱이 초선이 되기 위해, 또 재선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던 시절 달동네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집을 짓고 살아 일명 하꼬방집이 참 많았습니다. 그곳을 일일이 누비시면서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선거운동을 하시다가 연탄을 나르는 주민을 보면 돕기도 하셨습니다. 요즘이야 소방도로도 개설되고 차로 움직이면 금방이지만 그 좁디좁은 곳을, 높은 동네를 선거운동 하시면서 돌고돌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렇게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수성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린 후보자 정견발표회엔 노짱의 인기는 단연 높았습니다.


범일동 일대. 저 멀리 안창마을도 보인다.


범일동 일대. 부산진시장과 좌성대가 보인다.


범일동과 좌천동 일대. 저 멀리 부산항이 들어온다.

노짱이 지지를 호소하던 범일동일대

범일동 일대도 산복도로들 낀 동네라 선거운동 하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안창마을까지 다녀가려면 다리가 후들거릴만큼 피곤합니다. 좁디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걸어서 일일이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셨습니다. 


좁은 골목길이 많은 지역이라 범일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리는 후보자 정견발표회가 참 중요했습니다. 당시 노짱은 특유의 날카로움과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늘의 부산 동구

노짱 보이세요. 부산의 동구는 초량1동, 초량2동, 초량3동, 초량6동, 수정1동~수정5동, 좌천1동과 좌천4동, 범일1동, 범일2동, 범일4동, 범일5동으로 모두 14개동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당시와 비교해서 동이 많이 줄었죠. 인구가 줄어 통폐합되어 그렇습니다.


골목골목 누비던 당시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어떠세요.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요. 아니면 많이 변했나요.


노짱을 기억하는 부산 동구 주민들

세월이 흘러 부산 동구지역도 많은 사람이 이사를 가고 왔습니다. 필자 역시 16년간 살아온 동구를 떠나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노짱 이야기를 꺼내자 주민들은 금방 기억해냅니다. 선거때마다 강한 인상을 남긴 특유의 제스처도 지어 보입니다. 식당을 운영하시던 분들은 소탈하게 먹성좋은 이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노짱을 배출한 정치적 고향 부산 동구 주민들은 노짱의 서거소식이 더 슬프게 와닿습니다.


노짱 보셨나요. 기억나세요. 이렇게 살가운 국민들을 뒤로 하시고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