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큰명절 설날에도 민족의 아픔이?…세시풍속 설날 역사와 세배 알고보니

세미예 2014. 1. 31. 06:00

"엊그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했는데 또 새해네요."

"정확하게 말해 설날이겠죠."
"설날은 뭐고 새해는 뭐죠?"
"왜 1년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두번 해요."

"그렇네요, 그게 참 궁금해요."

"왜 우리 민족은 1년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두번 하게 된 줄 몰랐어요."





민족 최대의 큰 명절 설날입니다. 설날은 인정과 더불어 다시금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스스로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기 때문에 정겨움과 흥이 납니다. 인정마저 넘쳐납니다. 그래서 설날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 민족 뿐만아니라 중국 등 의 나라에서도 설날을 큰 명절로 지킵니다. 설날은 원단(元旦), 세수(歲首), 정조(正朝)라고도 부르며 우리 민족의 명절 중에서 한가위와 더불어 가장 큰 명절입니다. 설날 차례상에는 한 해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흰떡국을 올립니다. 떡국을 먹어야 한해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설날이 뭘까요. 설날엔 어떤 아픈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설날에 관해 한번쯤 알고 설명절을 맞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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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설날, 알고보니 수난의 100년 세월
한민족에 있어서 설명절만큼 큰 명절은 없습니다. 추석과 더불어 우리민족 최대의 민족입니다. '명절의 지존'은 역시 설날입니다. 오늘날 민족 최대의 명절로 위상을 누리고 있지만 이런 이런 영광을 누리기까지 설은 숱한 시련과 핍박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한민족 대대로 유유이 이어오던 설은 1896년 서양 달력이 우리나라 가정의 벽에 내걸리면서부터 질곡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이름도 족보에도 없는 '구식 설날'이란 뜻의 '구정'으로 강제 개명까지 당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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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핍박에서 해방후에도 시련은 여전 
일제의 강점기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해방을 맞았어도 설날에 대한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중과세(양력 설과 음력 설을 함께 쇠는 것)가 실시되면서 양력 설에 밀려 여전히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한 것입니다. 굴욕의 절정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정부 시절입니다. 당시 음력 설을 없애기 위해 호적 파내 듯 아예 공휴일에서 빼버리는 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런 냉대와 찬밥신세 속에서도 민간에서 여전히 설날을 꿋꿋이 명절로 지켰습니다. 1985년 끈질긴 생명력에 백기를 든 정부는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부활시켰고, 4년 뒤 설날이란 옛 이름을 찾아 주고 추석과 더불어 사흘 황금연휴가 실시됐습니다. 1999년을 기점으로 신정 휴일이 하루로 줄어들면서 음력 설은 민족의 최대 명절로 완전 복권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큰명절 설날은 그때 그때 달라요
설날은 우리민족에게는 최대의 명절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도 설날이 있을까요. 설은 중국에서도 춘절(春節)이라 해서 최대 명절로 꼽습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날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날짜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두 나라의 설날이 달라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음력 초하룻날 계산법과 중국과 한국의 시차(1시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매달 음력 초하룻날은 태양-달-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는 합삭이 생기는 날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때 합삭이 발생하는 날이 음력 1월 1일 설날이 됩니다. 문제는 합삭이 자정 부근(밤 11~12시 사이)에서 일어나면 두 나라의 시차 때문에 중국의 설날이 한국보다 하루 앞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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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설날은 언제? 올해 진짜 설날 새벽 6시38분 이후?
실제로 1997년 중국은 한국보다 하루 앞서 설을 맞았습니다. 2028년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해 중국(1월 26일)이 한국(1월 27일)보다 하루 앞서 설을 쇠게 됩니다.

올해 설날 합삭시간은 1월 31일 새벽 6시 38분입니다. 우리와 같이 음력설을 지내는 아시아 국가는 중국, 베트남,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이 있습니다. 음력 문화가 거의 사라진 일본은 신정만 쇠며, 북한 역시 신정을 지내며 음력설은 단순한 휴일에 그칩니다.


우리 고유의 달력 칠정산
역법은 워낙 복잡해 오늘날에도 컴퓨터를 동원해도 산출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 마을마다 날짜와 절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정부는 동짓날 부근 중국에 특사를 파견, 다음해의 책력(달력)을 받아와 공표했습니다. 세종 때 비로소 우리 고유의 달력인 칠정산이 만들어지고, 이후 일시 월식 계절의 변화 등을 자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됐습니다.





21세기 가장 늦은 설은 2월 19일
올해 설은 신정(양력 1월1일)과 30일의 날짜 차이가 납니다. 양력과 음력 설의 일수차는 양력은 1년이 365일인데 반해 음력은 354일밖에 안돼 생기는 문제입니다. 날짜 차이는 지난해처럼 윤달이 끼면 차이가 큽니다. 실제로 2013년에는 설날이 2월10일이었습니다. 윤달이 낀 관계로 양력과 음력 설의 차이가 40일이나 되었습니다. 

향후 2100년내 신정과 설날의 최대 일수차는 49일(2015년, 2034년), 최소는 20일(2099년)입니다. 달리 말하면 21세기 가장 늦은 설날은 2월 19일이고 가장 빠른 설날은 1월 21일입니다. 이렇게 늦은 설 때문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세배가 조금 민망스럽습니다.


중국에서 건너온 설날 세뱃돈
세배를 하고 나면 으레 받는 게 세뱃돈입니다. 아이들이 일년내내 설날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뱃돈은 우리 고유의 풍속은 아닙니다.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설날 아침 빳빳한 새 돈을 빨간 봉투에 넣어 덕담과 함께 자녀들에게 건네던 풍습이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배는 차례를 끝내고 식사 전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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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대신 차(茶)를 올려 설날 차례상

명절 차례는 엄밀히 말하면 제사가 아닙니다. 차례는 돌아가신 조상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공경하는 전통예법으로 사자(死者)에게 음식을 바치는 제사와는 다릅니다. 설 차례상에는 밥 대신 떡국을 올리는 등 차림법 절차 등에서 제사와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차례(茶禮)는 원래 술이 아닌 야생차를 다려 공양한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다 민간에서 차례를 제사와 혼동하면서 차 대신 술을 올리게 됐습니다. 제사는 자시(밤11~새벽 1시)에만 지내지만 차례는 혼령과 무관하기 때문에 오전· 오후 아무 때고 설날 중에만 지내면 됩니다. 명절 차례 등 우리의 세시풍속은 6세기 중국의 역법이 건너오면서 정착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설날 세배는 말 없이 절만 해야

설날 세배는 기혼자라면 쑥스러워도 부모보다 부부끼리 먼저 해야 합니다. 세배는 가까운 사람부터 하는 것이므로 일심동체인 부부가 1순위입니다. 그러나 직계존속 간의 세배는 '가까운 사람'이 아닌 '윗사람 순'입니다. 따라서 부부→조부모→부모의 순서로 세배를 합니다. 


윗사람에게 세배할 때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절만 합니다. 세배를 받은 윗사람이 덕담을 하고 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도의 축원을 올립니다. 그리고 세배는 원래 한 명씩 따로 따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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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큰명절 설날 세배법은?

평절 기준으로 세배법은 남녀가 조금씩 다릅니다. 남자는 먼저 웃어른을 향해 바르게 선 뒤 공수(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냄)합니다. 왼손을 오른손 위로 올려 맞잡은 두 손을 눈높이까지 올립니다. 허리를 굽혀 맞잡은 두 손을 바닥에 댑니다. 왼쪽 무릎을 먼저 꿇고 오른쪽 무릎을 나란히 꿇은 다음 엉덩이를 내립니다. 팔꿈치는 바닥에 붙이며 머리를 숙여 이마를 손등에 닿도록 하고 잠깐 멈춥니다. 

머리를 들어 서서히 일어섭니다. 이때 오른쪽 무릎을 세운 뒤 공수한 손을 오른쪽 무릎에 가볍게 얹으면서 일어난다. 바로 선 자세에서 공수합니다.

여자는 바른 자세로 선 뒤 공수합니다. 손을 양옆으로 내리면서 왼쪽 무릎을 먼저 꿇은 뒤 오른쪽 무릎을 꿇습니다. 요즘은 짧은 치마 등 평상복을 입기 때문에 오른쪽 무릎을 세우지 않고 양쪽 무릎을 모두 꿇은 채로 절을 많이 합니다. 어깨너비만큼 양팔을 벌리고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손끝을 바닥에 댑니다. 상체를 약 30도 정도 잠깐 숙였다 일으킵니다. 오른발과 왼발 순으로 천천히 일어나 두 발을 가지런히 모읍니다. 바로 선 자세에서 공수합니다. 

 




민족의 큰명절 설날 세배할 때 예법은?
설날 세배할때 예법은 어떨까요. 절을 시작하기 전엔 '인사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건넵니다. 세배 시에는 아무 말 없이 절만 합니다. 세배 후 어른들 덕담이 있고 나서 인사말을 합니다. 방석은 발로 밟지 않습니다. 남자는 가부좌, 여자는 한 무릎을 세우거나 한쪽으로 다리를 모아 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