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천만에?…한국 어린이 '행복지수' 봤더니?

세미예 2012. 5. 5. 06:00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위한 날 맞기는 맞나요."

"어린이 보다도 못한 어른이 참 많아요."
"1년에 한번 선물사주고 재밌게 놀아주는 게 어린이날인가요."
"항상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가정의 가장 큰 선물이잖아요."




5월은 몹시 바빠지는 달입니다. 유난히 행사도 많고 기념해야할 날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날씨는 바야흐로 흐벅지게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고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무덥기까지 합니다.

5월 가정의 달에 가장 먼저 온 날이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가 미래의 꿈나무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매년 어린이날만 되면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집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이런 반성이 1년 내내 이어지면 좋겠지만 사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 다음은 오간데 없습니다.

어린이 세상이라는 5월5월 어린이날. 갑자기 아이들한테 부끄러워 집니다. 오늘날 우리사회 어른들은 과연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지, 부끄러운 게 있다면 왜 부끄러운 지,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들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 지 어린이날을 맞아 생각해봤습니다.


어린이날이 과연 필요할까?

어린이날이 과연 필요할까요? 문득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해마다 맞는 어린이날이지만 오늘은 지금처럼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어린이날이라면 우리사회에 과연 필요한지 되짚어봐야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사회의 어린이날은 누구를 위한 어린이날인지 모르겠습니다.

언뜻 보면 온 세상이 어린이를 위해 여러가지를 준비한 듯 보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를 위한 각종 행사들이 여기 저기 널려있고 백화점에는 어린이날 선물이 즐비해 있으며 놀이공원들도 대규모 어린이 손님을 맞을 준비에 한창 들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어린이는 어디까지나 어른이 마련해 놓은 각종 소비재의 주 객체가 되어있을 뿐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위해 만든 그 기본 정신은 오간데 없습니다. 소파 선생의 어린이 헌장 등 어린이날 제정 취지 따위는 이미 실종된지 오래되었고 오로지 상업주의에 온통 휩쓸려 선물과 함께 즐겁게 하루 노는 날로 기억되고 있을 뿐입니다.



결혼-임신-출산-사랑-부부-어린이날-아동-보육-육아-가정어린이 양육은 무엇보다 중요한 테마입니다.

 


어린이날이 뭘까?
다소 무거운 마음이지만 어린이날의 참뜻을 알려면 어린이날이 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89주년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가 밝고 맑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는 꿈과 용기를 갖고 씩씩하게 자라나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소박한 정신으로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앞장서 어린이날을 제정했습니다. 더불어 어린이날은 지난 70년 세계 최초로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어린이를 몹시도 사랑했습니다.


1957년엔 ‘어린이 헌장’을 공표했습니다. 어린이헌장에서 "어린이는 인간으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밝고 씩씩하게 뛰놀고 공부하는 ‘어린이 세상’이 될수록 좋은 나라겠죠.


국가의 동량 어린시절 성장기에 결정?
그렇다면 왜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할까요? 한 사람이 태어나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어린 시절의 성장기에 결정된다고 합니다. 부모의 무관심이나 나쁜 환경에 잘못 말려들면 정서나 인격이 결손을 입게 돼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사랑과 보살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날 제정이나 헌장 선포가 1959년 유엔의 ‘아동 권리선언 채택’보다 훨씬 빨리 이뤄졌으니 자부심을 갖고 어린이 천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이는 부끄러운 어른들의 거울? 

푸르른 오월과 함께 찾아온 어린이날. 벌써 제89주년 어린이날입니다. 이날을 맞아 기다렸다는 듯 전국 각지에서 풍성한 축하행사가 열리고 부모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을 찾는 아이들이 줄을 이룹니다. 


일제 치하이던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제정했던 어린이날을 다시 맞는 감회가 큽니다. 과연 오늘 이땅에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은 소파 선생이 외쳤던 것처럼 아이들을 아름답고 슬기롭게, 그리고 씩씩하게 키우고 있는지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어린이들 행복? 

오늘날 현실을 돌아보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해졌고 교육환경도 나아졌지만 요즘 어린이들이 더 행복해졌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결식아동이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에 이르고 있고, 부모의 이혼으로 보호시설에 들어가는 아이만 연간 수 천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소년소녀 가장도, 극빈층 자녀들도 풍요의 그늘에 버려져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중산층 가정의 일부 자녀들도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때문에 학원을 전전하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초등학생 대대수가 하루종일 학교, 학원을 오가며 10시간 이상 책상에 붙잡혀 있다는 우울한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한창 키가 커야 할 나이인데도 절반 가량이 하루 8시간도 못자는 심각한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부…공부?, 공부벌레로 살아가는 아이들?
아이들이 얼마나 공부에 시달리고 있을까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남지부가 경남 18개 시·군 전 지역의 초등학교 5~6학년 1천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실태 조사를 보면 어린이들이 얼마나 과도한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남지역 초등학생의 절반 이상이 성적 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며,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하는 어린이가 58%에 달했다고 합니다. 가장 큰 고민을 묻는 질문에 대해 설문 대상자의 52.2%가 '성적 문제'를 꼽아 2위인 친구문제(12.0%)를 압도했다고 합니다.

평일에 하루 12시간 이상을 공부한다고 답한 어린이도 58.8%에 달해 지난해의 46.3%에 비해 12.5%포인트나 급증했다고 합니다. 하루 학습시간이 10시간 이상이라는 응답도 80.8%에 달했다고 합니다.


주말에도 모든 어린이들이 3시간 이상 학습하고 있으며 4명 가운데 1명 꼴인 25.5%의 어린이가 6시간 이상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정부가 공부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며 주 5일제를 실시했지만, 학원가는 시간만 더 늘어났을 뿐이라는 지적이 확인된 것입니다.


균등한 교육기회, 휴식, 여가 주어지고 있을까?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는 모든 종류의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정책을 수립,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균등한 교육기회, 휴식과 여가가 주어져야 한다고도 명기돼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톱10에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나라답게 유엔협약을 충분히 지키고 있는지 정부와 우리 사회는 다시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극빈층 자녀들과 시설보호 아동들에 대한 보호를 대폭 확대하고 방과 후 교실 등 어린이들이 균등하고 자유롭게 재능을 계발할 기회도 적극 늘려야 할 것입니다.




하루가 아니라 365일 어린이 천국을

1년에 단하루 어린이를 떠받들고 돈을 쓰는 것이 어린이날의 진정한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어린이와 함께 놀아주는 것으로 어른이 할 일을 다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1년의 하루가 아니라 365일이 어린이날이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가 깨끗한 환경에서 마음껏 뛰놀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른들은 또한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재난과 유해환경들을 제거해주는 것도 할 일이 아닐까요. 소년 소녀가장과 결식아동들에 대한 사회제도적인 뒷받침도 적극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밝고 바르고 씩씩하게 키울 것을 다짐하는 하루로!
어린이날을 맞아 어른들은 오늘 하루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볼거리를 주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밝고 바르고 씩씩하게 키울 것을 다짐하면 어떨까요. 기아에 시달리는 빈국의 어린이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인류애도 보여 주면 어떨까요.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 나는 새처럼, 달리는 냇물처럼 환하고 행복한 웃음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