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학력고사·연합고사·예비고사·수능 세대?…당신은 어느 세대?

세미예 2011. 11. 10. 07:34

"수능일이었네. 우린 본고사 세대."

"우린 예비고사 세대."
"우린, 연합고사 시대."

"수능의 변화 참 변화무쌍했네요."

"시대마다 교육제도가 바뀐다는 게 바람직할까요>"





혹시 블로거 이웃님들은 어떤 세대세요. 본고사 세대와 연합고사 세대, 예비고사 세대, 학력고사 세대, 수능세대….

우리나라 대학입시 시험은 그 세월만큼이나 다양하게 변화해 왔습니다. 오늘 치르는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공식 명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입학을 위한 시험은 어떻게 변해왔고, 시대별로 어떤 시험제도가 있었을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있다보니 시대별로 다양한 시험제도를 통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시대별로 어떤 대입 시험제도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세미예 가정의 아이들이 사탕으로 만든 수능 글자


광복직후엔 대학별 단독시험
우리나라에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이 도입된 것은 아마도 광복 직후부터라고 합니다. 광복직후 각 대학이 자유롭게 필기시험, 면접, 신체검사 같은 과정을 거쳐 신입생을 뽑았습니다. 각 대학별로 단독으로 시험을 치르게 한 것이죠.


이렇다보니 처음에는 지원자가 부족해 미달이 속출했습니다. 미달이 속출하다보니 무자격자도 마구 입학을 시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엔 대학 등록금 자체가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정부땐 대학입학연합고사
대학별 단독시험이 무자격자를 입학시키는 등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바로 잡겠다고 1954년 '대학입학연합고사'를 만들게 됩니다. 이 제도는 대학별 시험을 보기 전에 '자격시험'을 치러 정원의 140%를 거르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고 나니 첫 해에 일부 권력층의 자녀가 연합고사에 탈락하면서 제도 자체를 백지화한 채 그대로 사라지고 맙니다.


5‧16후 대입자격 국가고사 등장

대학입학시험도 정권이 바뀌면 제도도 바뀝니다. 1961년은 5·16이 있었던 해입니다. 5·16으로 집권에 성공한 군사정부는 1962년 '대입자격 국가고사'를 치르게 합니다. 이 제도는 전체 대학 정원의 100%만 합격시키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시행한 결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대학에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또한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과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자 1963년에는 국가고사와 실기고사, 신체검사, 면접 같은 대학별고사 점수와 합산해 신입생을 뽑도록 제도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대학이 학생 선발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지면서 다시 대학별 자율 선발 체제로 돌아갑니다.





대학예비고사의 등장
이렇게 시험제도가 변모에 변모를 거듭해 1969년부터는 대학입학예비고사가 시작됩니다. 예비고사는 쉽게 말해 본고사에 앞서 보는 시험이었습니다.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특차' 전형이 있었지만 예비고사를 본 뒤 주로 국어와 영어 수학 등 필기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첫해 시험에는 11만2000여 명이 응시해 절반을 조금 넘는 6만1000명 가량이 본고사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360점 만점에 152점이 커트라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예비고사는 1972년부터 제도가 바뀌어 지역별 예비고사 점수 커트라인을 넘어야 그 지역 대학에 지원해 본고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적은 좋은 학생은 대부분 1지망은 서울, 2지망에 자기 지역을 써넣는 게 관례였습니다.

학력고사시대로
대학예비고사는 1980년 신군부의 '7·30 교육개혁' 조치를 통해 과외를 금지하면서 학력고사로 대체됩니다.


'대학입학학력평가'가 첫 실시된 것은 1982년이지만 1981년에도 시험 이름만 '예비고사'였을 뿐 본고사가 사라진 뒤였기 때문에 '학력고사'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학력고사와 함께 1981년부터 시작된 논술 시험, 졸업정원제도 계속됐습니다. 지금의 386세대들이 대학을 다닐때의 제도인 졸업정원제는 각 대학이 졸업 정원보다 30~50% 정도 많은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졸업정원제는 중도탈락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데다 대학 생활이 성적 위주로 흐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1988년에는 '선시험 후지원' 방식이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뀝니다. 수험생은 지망 대학을 먼저 선택하고 그 학교에 가서 시험을 봤습니다. 이 당시 대학 지원 기회가 전·후기 두 차례뿐이었기 때문에 눈치 작전이 극심했습니다. 대학의 학과간 서열화도 몹시 심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대로

대학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 CSAT,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은 1994학년부터 대학 입학 평가에 도입된 시험을 말합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학문을 닦을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입니다.


이전까지 치러졌던 학력고사가 고등학교 과정의 과목별로 문제가 출제 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교과서를 암기해야만 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해 통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고자 미국의 SAT를 본떠 언어영역, 수리탐구영역I 수리탐구영여II(사회탐구영역, 과학탐구영역) 외국어영역(영어)으로 나누어 만들어졌으며, 지난 1993년에 1994학년 대학입시생들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통합 교과서적 소재를 바탕으로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 위주로 출제되었는데, 1999학년도부터 2004학년도까지 적용되는 내용은 이전보다 수험생의 선택권을 넓히는 한편, 출제 과목수는 줄여 입시부담을 덜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잦은 입시제도 변경 참 난해한 교육정책

따지고 보면 대학입시 제도는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과 함께 수 많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제도가 도입되고 또 어떤 제도가 선보이게 될이지 자못 궁금합니다.


문제는 교육이 백년대계인만큼 철저한 연구와 우리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교육정책이 펼쳐지고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수능을 치러는 모든 이땅의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든든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교육당국의 더 넓은 안목과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참모습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