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예의 환경 허브 미디어 대안언론

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올 겨울은 여느해보다 유난히 동장군의 기세가 사납습니다. 하지만 윤서원 시인의 '봄은 찾아온다'는 시처럼 따뜻한 봄은 사나운 동장군을 뚫고 반드시 찾아 옵니다. 흔히 설날이 낀 음력 1월을 가리켜 맹춘이라고 합니다. 


한자어 맹(孟)은 처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 춘(春)은 말 그대로 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맹춘(孟春)이란 말은 말 그대로 초봄을 뜻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봄철이면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예축적(豫祝的) 의미의 세시풍속이 유독 우리 민족에게는 많습니다. 1월(음력)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은 바로 설날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역시 한가위와 설입니다. 추석과 더불어 부모를 찾아뵙기 위해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민족에게서 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명절입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흔히 말하는 명절은 세시풍속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기념하는 날을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예로부터 산소에 올라가 제사를 올리는 것을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4대 명절에 행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설날의 의미는 각별했습니다.


설은 새해의 첫 시작을 알리는 날을 기념하는 우리 민족의 크나큰 일종의 행사입니다. 설은 묵은 해를 정리해서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는 첫날입니다.  


이렇게 의미가 깊은 설날은 오늘도 유유히 민족의 가슴속에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설이라 칭했으며 설날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설날은 어떤 아픈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설날이름 왜 하필이면 설일까?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명절인 설날은 음력 1월1일을 가리킵니다. 흔히 설이라고 할때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는 뜻이 그 의미라고 합니다. 이 때의 '사린다'는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삼가다’ 또는 ‘조심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설날의 의미는 한해 내내 무탈하고 무사하게 지낼 수 있도록 새해 첫날부터 몸과 행동을 조심하며,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입니다.


설날의 역사

우리 민족에 있어서 양력의 도입은 일대 대사건이었습니다.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택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때 개화당의 김홍집 내각에 의한 것으로 가히 혁명이라고 할만큼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1895년 당시에는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건양1) 1월 1일이라고 고종황제의 칙명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또한 세력(歲歷)을 태양력으로 바꾸고, 나라에서 쓰는 연호도 양력을 세운다는 뜻의 건양(建陽)이라고 고쳤습니다. 설날은 1985년부터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그 후 민속의 날로 정했던 구정을 1989년부터 ‘설날’로 개명하는 동시에 3일간의 연휴로 한 것입니다. 


설날의 유래 어원 어떻게 시작됐을까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습니다. 우선 '섧다'라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선조때 이수광의 '여지승람(舆地胜览)'에는 설날을 '달도일'로 표기했습니다. 이 때  '달'은 슬프고 애달파한다는 뜻이며,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입니다. 한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이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설날의 또 다른 어원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說)입니다. 우리 민족의 각종 가록을 담은 세시기(歲時記)들에는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가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몸과 마음을 바짝 죄여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말뿌리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원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 문화적 낯섦의 의미로 생각되여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이를 말하는 즉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연세설(年歲說)'도 있습니다. 이 밖에 한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의 '서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였다는 설도 있다.


설 또는 설날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정초(正初),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歲初), 년두(年頭), 년수(年首), 년시(年始)'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한자말들은 '설날'만큼 정감어린 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설날의 의미는?

이 ‘설’의 의미에 대해 ‘설날 문화 가족’이란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다. 


"설날은 한자로 원일(元日), 세수(歲首)라고 쓰며, 그것은 일 년의 첫째 되는 날이란 뜻이다. 또한 첫 출발일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날을 삼가는 날(愼日)이라고 하여 중요한 날인 만큼 행동을 경망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밖에 ‘설’의 의미에 대해 처음 날, 비롯함의 날, ‘설다’, ‘낯설다’의 어간 ‘설’에서 온 듯함, ‘선날’에서 왔음, 시단(始旦)이나 원단(元旦)을 설이라 불렀음, 몸을 사리다의 ‘살’에서 옴, 산스크리트 말 ‘살’에서 왔음 등 다양한 해석이 가해졌다."


이를 보면 설날의 ‘설’은 ‘살’에서 왔다고 합니다.  ‘살’은  ‘나이’나 ‘해’를 뜻하는 ‘살(歲)’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해마다 세는 명절 ‘설’이란 말은 ‘나이’나 ‘해’를 뜻하는 살(歲)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명절로 지내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隨書)'에는 신라인들이 새해의 아침에 서로 례를 차려 축하하고 왕이 잔치를 베풀며 일월신에게 절하고 례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다. 이때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도 비슷하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신라때에도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포함된 큰 제사를 1년에 6번씩 지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생겼을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설을 9대 명절의 하나로 즐겼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을 4대 명절의 하나로 지냈는데 이미 이때에는 설이 지금처럼 우리 겨레의 큰 명절로 자리잡았을것으로 보입니다.





설 언제부터 쇠기시작했을까?

우리가 오늘날 쇠고 있는 설은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사서에서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을 배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 민족에 있어서 그 역사가 무척이나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설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만큼 이 날을 아무 탈 없이 보내야 1년 365일이 평안하다고 하여 지극히 조심하면서 가만히 들어앉는 날이란 뜻에서 설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설은 다른 이름으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보통 우리가 부를때 설이라고 합니다.


설은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묵은 1년은 지나가고 설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데,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작은 설 '아치 설'이 뭐길래

흔히 설날이 다가오면 '아치 설'이란 말을 듣게 됩니다. 예전에는 작은설을 ‘아치 설’이라 했습니다. 순수한 우리나라 말에 ‘아치’는 ‘작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치’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어 ‘아치 설’이 ‘까치설’로 되었다고 합니다. 


설날이 되면 듣게되는 대표적인 ‘까치까치 설날’ 의 동요 속의 그 ‘까치’와는 뜻이 전혀 다릅니다. 옛날에는 섣달 그믐날에 아치 설이라고 하는 작은 설을 지내고 또 정월초하루에도 설을 지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설 차례를 실제로 따로 두 번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설날인 섣달 그믐날 밤 해시(亥時)에 진설을 해 놓고 차례의 일부 순서만 지내고 자정이 넘기를 기다렸다가 자정이 넘으면, 즉 해를 넘기고 나서 그 차례 상에서 그대로 나머지 순서대로 정월초하루 설 차례를 지내습니다. 


설날 세배와 덕담문화

설날 아침과 정초에 어른에게 하는 큰절을 세배라고 합니다. 새해 첫날 큰절을 하면 어른은 덕담을 내려 줍니다. 덕담의 법도는 어른이 먼저하고, 어른이 아랫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전에는 "올해 과거시험에 급제했다"며, "올해는 시집 갔다"며, "올해 득남했다"며, "올해 큰 부자가 됐다"며, "복 많이 받았다"며 등등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여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웃 어른에게 세배를 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덕담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하는 데, 이것은 전통 예의에 어긋납니다. 큰 절을 올리는 사람은 겸손하고 조용하게 큰절을 하고, 어른이 곧바로 덕담을 하면 아랫 사람은 그제서야 '올해도 건강하시고, 보살펴 주십시오' 정도로 답례하면 됩니다.


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설날 왜 떡국을 먹을까

설날이면 궁금증이 한번씩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설날 아침에는 왜 떡국을 먹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새해의 시작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떡국을 먹는 전통이 생간 것으로 짐작됩니다.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했고, 썬 떡의 둥근 모양은 화폐를 형상화하여 재물도 많이 들어오길 바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을까요. 떡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나와 있는 문헌은 없습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담은 '열량세시기(1819)'와 '동국세시기(1849)'에는 제례음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떡국을 꼽고 있습니다. 정조차례(正朝茶禮, 정조는 설 아침을 뜻하는 말임)와 세찬(歲饌, 세배하러 온 손님을 위한 음식) )으로 꼭 필요한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사학자로 문인으로 활동했던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아주 오래 된 것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된 것으로 떡을 주식(主食)으로 하던 우리 민족의 관습이 지속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백의민족의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설이 있을까?

중국에도 우리민족의 설에 해당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봄의 절기를 뜻하는 '춘절'이 라는 중국 최대의 명절입니다. 올해 춘절 기간은 2월 15일부터 21일까지지만, 고향길 행렬은 2월 1일부터 40여 일간 계속됩니다. 


춘절 기간에는 빨간 옷을 입고, 빨간색 종이에 행운을 상징하는 글귀 또는 복(福)을 적어 거꾸로 문에 걸어놓기도 합니다. 이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고,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전에는 설날을 음력으로 쇘지만, 지금은 양력 1월 1일만 쇤다고 합니다. 3~4단 찬합에 새우와 검정콩 등 의미가 담긴 여러 가지 음식을 조려 보기 좋게 담아낸 '오세치 요리'를 먹습니다. 설에 우리나라처럼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있는데 '당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멕시코에서는 집안에 돈을 숨겨 가족과 함께 찾은 뒤, 모은 돈으로 맛있는 식사를 즐긴다고 합니다. 식사 후에는 1년 12달을 의미하는 포도 12알을 먹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합니다.


불가리아는 '포카치오'라는 빵을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동전을 넣어 굽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빵을 잘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동전이 있는 빵을 받은 사람이 한 해 행운이 깃든다고 합니다.


설날은 근심되는 일은 삼가는 날의 의미

우리 조상들은 설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겨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매년 첫 해일․ 자일․오일에는 온갖 일을 꺼리며 조심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를 '달도'라 하여 근심되는 여러 일을 금했다고 합니다. 설날이라는 말의 유래는 '섧다' '슬프다'에서 나온 것으로 몸을 사린다는 신일(愼日)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설날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차분하고 조용하고 올해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지면서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로 설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요.  설날의 의미처럼 근심되는 일에 삼가 주의를 기울이며 어떨까 싶습니다.


세미예 블로그 관련 글

설날 왜 떡국 먹을까?…세시풍속 설날 떡국에 이렇게 깊은 뜻이?

큰명절 설날에도 민족의 아픔이?…설날 역사와 세배 알고보니

설날의 아픈 역사?…미처 몰랐던 설날 이야기와 상식은?

실속있는 설 차례상 비결은…발품? 정보? 제수용품 잘고르려면?

명절음식 살안찌는 방법 있다?…고칼로리를 저칼로리로 어떻게?

명절보내고 난후 몸이 이상해?…명절증후군 극복 어떡해?

입춘은 양력? 음력?…입춘에 숨은 과학적 원리는?

Trackbacks 0 / Comments 0

설날의 아픈 역사…설날 꼭 알아둬야할 것들은 바로?

설날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날입니다. 민족의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큰 명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설날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설날은 원단(元旦), 세수(歲首), 정조(正朝)라고도 부르며 우리 민족의 명절 중에서 한가위와 더불어 가장 큰 명절입니다.




설날 차례상에는 한 해가 기원하는 마음으로 흰떡국을 올립니다. 떡국을 먹어야 한해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설날은 오늘날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날의 역사를 추적해봤더니 참 굴곡과 시련도 많았더군요.


오늘에야 반듯한 설날이지만, 한때는 정부에 의해 사실상 폐지위기까지 갔었던 아픈 이력이 있습니다.



1. 설날, 시련을 딛고 꿋꿋이 지켜낸 장한 민족의 큰 명절

설은 우리나라 명절중의 명절입니다. 이 점에선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날이 최고의 명절 대접을 받기까지 숱한 시련과 핍박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중년층이라면 옛시절이 되어버렸지만 한때 암흑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설은 우리 민족 대대로 이어오던 우리의 명절입니다. 하지만, 1896년 서양 달력이 우리네 안방 벽에 걸리면서 수난의 역사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일제의 강점기 시절엔 식민지 설움도 단단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족보에도 없는 '구식 설날'이란 뜻의 '구정'으로 강제 개명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혹자들이 ‘구정’이라고 사용하는 표현은 사실은 식민지 시대의 아픈 잔재입니다. 따라서 구정이란 표현은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의 수난은 일제에게서 해방을 맞았어도 끝나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이중과세(양력 설과 음력 설을 함께 쇠는 것)가 실시되면서 양력 설에 밀려 설움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시련의 절정기는 아이러닉하게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입니다. 당시 음력 설을 없애기 위해 아예 공휴일에서 빼버리는 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아픈 역사를 딛고 1985년 끈질긴 생명력에 백기를 든 정부는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부활시켰습니다.


그리고 4년 뒤 설날이란 옛 이름을 찾아 주고 추석과 더불어 사흘 황금연휴가 실시됐습니다. 아울러 1999년을 기점으로 신정 휴일이 하루로 줄어들면서 음력 설은 민족의 최대 명절로 완전 복권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설날이 현대사에서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된 것은 이제 10년이 된 셈이죠.

2. 설날 떡국 이렇게 깊은 뜻이

우리 조상들은 새해 첫 날의 아침을 새하얀 떡국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설날의 흰 떡국은 흰색의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 만물이 부활하고 새롭게 성장하는 의미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일 년을 시작하는 새해 첫 날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가짐을 갖고자 흰 떡국을 끊여 먹었는데, 떡국은 순수 무구한 경건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설날엔 꼭 떡국을 먹어야 하는데, 그것은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설날에 나이를 물을 때 ‘몇 살이냐’라고 묻기 전에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설날에 먹는 떡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래떡이 필요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에 찐 떡을 길게 늘여 뽑는 장면이 자못 인상적인데 이렇게 떡을 길게 늘여 뽑는 것은 재산이 쭉쭉 늘어나라는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떡국을 끓이기 위해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이유는 둥근 모양이 마치 옛날 화폐인 엽전의 모양과 같아서 새해에 재화가 풍족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3. 설날, 다른 나라도 있나요

설은 중국에서도 춘절(春節)이라 해서 우리나라처럼 최대의 명절로 꼽습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날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같습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두 나라의 설날이 달라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음력 초하룻날 계산법과 중국과 한국의 시차(1시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매달 음력 초하룻날은 태양-달-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는 합삭이 생기는 날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때 합삭이 발생하는 날이 음력 1월 1일 설날이 됩니다. 문제는 합삭이 자정 부근(밤 11~12시 사이)에서 일어나면 두 나라의 시차 때문에 중국의 설날이 한국보다 하루 앞서게 됩니다. 실제 1997년 중국은 한국보다 하루 앞서 설을 맞기도 했습니다. 2028년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해 중국(1월 26일)이 한국(1월 27일)보다 하루 앞서 설을 쇠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와 같이 음력설을 지내는 아시아 국가는 중국, 베트남,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이 있습니다. 음력 문화가 거의 사라진 일본은 신정만 쇠고 있습니다.


4. 북한에도 설 명절이 있을까

북한에서는 설 명절이 '사회주의 생활 양식'과 어긋난다고 배격하여 오다 1989년 들어 민족 고유의 '음력설'을 부활 시켰다고 합니다. 북한은 설날 당일을 쉬는 대신 그 주간의 일요일에 보충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력설에는 의무적으로 김일성 주석 동상을 찾게 하지만, 음력설에는 주민들의 뜻에 맡긴다고 합니다.


북한 사실상 신정을 지내며 음력설은 단순한 휴일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5. 세배는 말 없이 절만 해야

오늘날 설날 세배에 관한 예법이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됐습니다. 하지만 설날 세배는 결혼한 부부라면 쑥스러워도 부모보다 부부끼리 먼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배는 가까운 사람부터 하는 것이므로 일심동체인 부부가 1순위라고 합니다. 그러나 직계존속 간의 세배는 '가까운 사람'이 아닌 '윗사람 순'입니다. 부부→조부모→부모의 순서로 세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윗사람에게 세배할 때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절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배를 받은 윗사람이 덕담을 하고 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도의 축원을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세배는 원래 한 명씩 따로 따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6. 중국에서 건너온 세뱃돈

세배를 하고 나면 기분좋게 받는 선물이 세뱃돈입니다. 아이들이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어쩌면 이 세뱃돈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세뱃돈은 우리 고유의 풍속은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중국사람들은 설날 아침 빳빳한 새 돈을 빨간 봉투에 넣어 덕담과 함께 자녀들에게 건네던 풍습이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세배는 차례를 끝내고 식사 전후에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관련 글 : 가장 빠른 설날과 가장 늦게 찾아온 설날은 언제였을까?
             올 설연휴 많이 쉬는 직장이 달갑지 않은 이유는?


Trackbacks 3 / Comments 23

올 설날 빠르네…가장 빠른 설날·가장 늦은 설날은 언제?

음력 1월1일을 가리켜 설날이라고 합니다.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설날을 경사스런 날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설날은 의미 이상의 소중한 날이었습니다. 올해의 경우 양력 1월26일이 설날입니다.



올해는 특이하게도 양력 1월에 양력설과 음력설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1월에 양력과 음력설이 모두 있다보니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란 말을 1월에만 거푸 전해야 합니다. 문자와 메일로 이곳 저곳 안부를 거푸 날려야 합니다. 

설날이 되면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오손도손 정을 나누고 이곳 저곳 인사다니는 것이 참 좋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경기가 불황이라 충전을 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면 가장 의미있는 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는 설날이 1월26일이라 꽤나 빠릅니다. 그렇다면 설날이 가장 빨리 오면 양력으로 며칠까지 될 수 있을까요. 한국천문연구원의 자료를 분석, 이를 살펴봤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올해 설인 1월26일 정보.


1. 양력 1월26일 이전에 온 설날 있을까

올해 설날은 양력으로 1월26일입니다. 지난해의 2월 7일에 비해 상당히 빠른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천문연구원 자료를 찾아봤더니 1월26일 이전에 설날이 찾아온 해가 많았습니다. 1월21일이었던 해가 1433년을 비롯 11번이나 있었고, 1월20일이었던 해도 1406년을 포함 7번이나 있었습니다.(천문연구원 자료는 1391년부터) 


올해와 같은 1월26일엔 1400년, 1419년, 1438년, 1457년, 1495년, 1514년, 1552년, 1571년, 1618년, 1637년, 1656년, 1675년, 1713년, 1724년, 1743년, 1789년, 1819년, 1838년, 1857년, 1876년, 1895년이 있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www.kasi.re.kr) 자료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양력 1월 20일이 설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력 1월 1일인 설날이 가장 빨리 오면 양력으로 며칠까지 될 수 있을까를 계산해 봤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지난해 설날 정보자료.


2. 동지로부터 30일 경과한 시점이 설날

순태음력의 1년 길이는 1태양년의 길이보다 10일 이상 짧아 계절과 어긋나게 됩니다. 즉, 음력 한달의 길이 29.530583일 x 12월 = 354.3671일이고 1년의 길이 365.2422 - 354.3671일 = 10.8751일입니다. 이 10.8751일이 3태양년간 쌓이면 윤월 1개를, 8태양년에 3개의 윤월을 태음력에 더해주어야 계절과 일치하게 됩니다. 계절을 일치시키기 위해 24기를 두어 절기와 중기가 들지 않는 달을 윤달로 두는데, 1절월은 365.2422일 /12월 = 30.43685일이 됩니다. 태음태양력의 제1원칙이 춘분(음력2월). 하지(5월), 추분(8월), 동지(11월)가 됩니다.(한국천문연구원 자료)


쉽게 풀어보면 태양태음력의 제1원칙에 의하면, 동지(冬至)를 음력 11월에, 춘분을 음력 2월에, 하지를 음력 5월에, 추분을 음력 8월에 넣도록 되어 있습니다. '동지(冬至)'는 음력 11월에 넣도록 정해져 있으므로, 가장 늦게 올 경우, 동지(冬至)는 음력 11월 그믐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력 12월이 29일까지 있는 작은달이라고 할 때, 음력 1월 1일은 빨라야 동지(冬至)로부터 30일(29일+1일) 경과한 시점이 됩니다. 동지는 양력으로 12월 21일경이며, 12월 20일~12월 22일 사이에 오게 됩니다.


그러면 설날은 아무리 빨라도 12월 21일로부터 30일 경과한 시점인 양력 1월 20일이 됩니다. 현재의 역법으로는 이론상 설날은 양력 1월20일~양력 2월21일 사이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3. 1월20일 이전 설 가능할까

현재의 역법(曆法) 이론상 설날은 양력 1월20일~양력 2월21일 사이에 오게 되어있습니다만 현재와 역법이 달랐던 조선시대에는 설날이 1월20일 이전에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 자료를 찾아봤더니 가장 빨랐던 설날은 1496년과 1507년, 1545년의 양력 1월 13일이었습니다.


양력 1월14일이던 해가 1450년, 1488년, 1534년, 1553년, 1564년이 있었습니다. 양력 1월15일이던 해가 1401년, 1420년, 1439년, 1458년, 1477년, 1515년, 1572년이었습니다.

또한 양력 1월16일이던 해가 1409년, 1496년, 1542년, 1561년, 1580년이었습니다. 양력 1월17일이던 해가 1428년, 1447년, 1466년, 1485년, 1504년, 1523년, 1569년이었습니다. 양력 1월18일이던 해가 1417년, 1436년, 1455년, 1474년, 1493년, 1531년, 1550년이었습니다.

양력 1월19일이던 해가 1398년, 1482년, 1501년, 1512년, 1577년이었습니다. 또한 양력 1월20일이던 해가 1406년, 1425년, 1444년, 1463년, 1520년, 1539년, 1558년이 있었습니다.

4. 가장 늦은 설은 언제일까

반면, 가장 늦은 설은 언제일까요? 같은 식으로 계산해 보면 동지는 음력으로 11월이고 동지가 늦을땐 양력으로 12월 22일입니다. 12월이 음력으로 큰 달일때 31일(30일+1일)이 지난 양력 1월 22일이 됩니다. 그러나 윤달이 그해 끼이게 되면 여기에 큰 달 30일을 더해 2월 21일이 설이 됩니다. 이래서 이론상 가장 늦은 설은 2월21일입니다.


하지만, 2월20일이 설인 해가 1594년, 1632년 1651년 1833년 1852년이 있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내년 설날 정보. 양력 2월14일 일요일이다.


5. 내년 설은 2월14일

그럼, 마지막으로 내년 설을 살펴볼까요. 한국천문연구원 자료로 환산해보니 2월14일 일요일 입니다. 불행히도 일요일과 겹칩니다. 설 전날이 토요일이네요. 어떡하죠. 하지만 벌써 내년 설날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겠죠.


즐거운 설명절 되시고 오가시는 길 뻥 뚫리시고 무탈하고 즐거운 귀성길 되시기 바랍니다.

관련 포스팅 : 올 설연휴 많이 쉬는 기업이 달갑지 않은 이유는?
                가장 빨리 온 추석과 가장 늦게 온 추석은 언제였을까



Trackbacks 2 / Comments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