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수박을 안먹는 아이?…6.25전쟁과 수박 어떤 사연이 숨어있기에?

세미예 2010. 6. 24. 08:24

"올해 생산된 싱싱한 수박 드세요."

"수박 맛있어 보이는데 많이는 못먹겠다."
"수박을 싫어하는 분은 처음이예요."
"수박을 보면 옛 생각이 자꾸만 나네."
"그러세요, 옛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생각만 해도 당시엔 아찔했어."




수박을 싫어하시는 분 보셨나요. 수박을 싫어한다기보다도 더 정확하게 말해 수박을 보면 다른 생각이 자꾸 나신다고 하십니다.


어머님과 이모님은 여름철이면 안좋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내내 말씀하십니다. 수박과 안좋은 기억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연을 듣고보니 수박을 보면서 갑자기 측은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수박-한국전쟁-6·25-휴전선


수박을 보면 6.25전쟁 상흔이 주마등처럼?

여름철 이모님이 방문하시면 여름과일 중에 가장 대접하기 좋은 게 수박입니다. 그래서 수박을 접시에 담아옵니다. 그런데 어머님과 이모님은 겨우 입에대는 시늉정도만 하십니다.

처음엔 수박이 몸에 안맞아서 안 드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번 지켜보니 일부러 안드시는 것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왜 그러시는 지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특이했습니다.


수박을 보면 6.25의 상흔이 절로 생각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수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태어나자 맞은 한국전쟁
이모님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그해 5월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바로 그 다음달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한국전쟁둥이들이 다 그렇듯 이모님도 갓난아기라 무척이나 힘든 나날이었다고 합니다. 전쟁기간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제일 힘들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납니다. 당시의 아이들은 전쟁을 모르면서도 전쟁을 배우고 자랐다고 합니다.



수박-한국전쟁-6·25-휴전선


우유 대신 수박을 먹고 자라다보니 
이모님은 전쟁터라 우유고 분유고 먹일게 없었다고 합니다. 외조모님이 제대로 먹지를 못했으니 우유가 제대로 나올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분유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분유도 없던 시대이다보니 신생아에게 먹일 것이라곤 농촌에서 수박밖엔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생아였던 이모님에게 어머님이 수박을 떠먹여 배고픔을 달래면서 신생아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수박을 얼마나 많이 먹였는지 당시 신생아였던 이모님은 어느날부터인가 수박을 먹여도 먹지않고 울기 시작헀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님은 그래도 먹일게 없어 수박을 먹인다고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수박을 따러 들판으로 가다가?

당시는 전쟁터라 이곳 저곳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장정들은 북한군 눈에  띄면 곧바로 끌려가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산속 토굴속에 숨어지내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북한군이 마을에서 물러가면 잠시 집에 들렀다가 이내 토굴로 도망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당시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머님이 밭에 수박을 따러가는 임무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하루는 수박을 따서 낑낑거리며 겨우 들고왔는데 들익은 수박이었다고 합니다. 외조부님께 제대로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초등생이 제대로 수박을 따올리가 없습니다. 그날은 설익었거나 덜익은 수박을 이모님께 먹여야 했다고 어머님은 회상하십니다.


또 하루는 수박을 따서 들고오다가 그만 북한군한테 들켜 수박은 그대로 두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무조건 도망친 일도 있었다고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들려주십니다.





수박후유증이  참으로 오래 지속?
한국전쟁이 3년동안 지속되었지만 그래도 수박이 있었기에 이모님은 신생아시절을 그럭저럭 지낼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생긴 것입니다.


자라면서 이모님이 수박을 잘 안먹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처음엔 설마 아이가 수박맛을 기억할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지켜봤더니 이상하게 수박을 잘 안먹었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신생아시절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는 알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이모님은 수박을 잘 안드십니다.    


전쟁이 끝난후 피폐한 세간살이속 지난한 가난이?
3년여간 지속된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외가의 세간살이는 참으로 피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피폐한 세간살이는 아마도 당시의 우리나라 가정들이 모두 겪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꿈을 품고 외조부님은 여름이면 수박을 이곳 저곳 심었다고 합니다. 산에도 심고, 밭고랑 사이에도 심어 배고픈 시절을 이겨보려 했다고 합니다. 이모님이나 어머님 모두 어린시절 수박을 무척이나 많이 먹고 자란 세대라 지금도 수박이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라고 하십니다. 



그때 그 시절 그 아이들은 어디에?

한국전쟁이 벌써 60주년이 되었습니다. 6.25전쟁 60주년 기념일이 다가옵니다. 한국전쟁에 관해 다양한 평가와 여러가지 교훈을 되새겨 봐야할 시기입니다. 더불어 오늘날 미래지향적인 남과북의 관계 등에서도 곰곰이 생각해야할 시기입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그 지난한 삶을 살았던 그 아이들은 벌써 머리에 서리가 내렸습니다. 하나 둘 사라져갑니다. 역사속 한 장면으로 사라져갑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점점 퇴색되어만 갑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전쟁에 관해 의미없이 흘려보내도 되는 것인지 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때 그 시절,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오늘은 이런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래도 수박을 보면 살가운 마음이?

어머님이나 이모님 모두 수박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수박을 보면 어린시절 지난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또다른 한편으론 어린시절 그 가난하고 못살았던 옛시절이 추억처럼 살갑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역설입니까. 아마도 당시엔 지질이도 가난했지만 인정만큼은 오늘날보다 훨씨 좋았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메말라가는 인정을 보시면서 당시의 소박한 정이 생각난 것입니다. 부모님 세대의 지질이도 가난하고 아찔했던 한국전쟁의 상흔, 이제는 오늘날 우리가 보듬고 껴안아 다시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 우리민족의 힘이 약해서 강대국들의 놀이판에 일종의 희생양이 된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국력을 키워 민족을 모으고 우리민족의 자존과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한민족의 저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