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서리 해보셨나요.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내신 분이라면 참외나 수박서리를 한 두 번 해보셨을 것입니다. 수박이나 참외서리 아찔한 경험은 없으셨는지요. 친구들과 재미로 주인어르신의 눈을 피해 한 두개 정도 따먹던 그 맛과 추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겠죠.
참외서리 했다가 평생 못잊을 아픈 추억은 없으셨나요. 그런 아픈 추억이 여름이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마치 잊혔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뇌리속을 타고 내립니다. 마치 편린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사연이기에 평생 못잊을 아픈 사연 일까요. 그 사연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색근무는 안하고 참외서리
필자의 유쾌하지 못한 군생활을 한 경험이 편린처럼 마구 가슴속을 찔러댑니다. 때는 지금과 비슷한 시기인 한여름. 수색근무에 돌입합니다.
중대장한테 근무신고를 하고 수색근무지로 이동합니다. 근무중 장난끼 많고 엉뚱한 짓을 잘하는 고참이 소대장을 꼬십니다. 참외서리를 해오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학사장교 출신의 이 소대장은 무턱대고 심심하니 몇 개만 따오라고 합니다. 고참이 당시 일병이었던 필자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고 고참은 근 자리에서 군화발로 한대 걷어차 버립니다. 이윽고 원산폭격을 시킵니다.
능수능란한 솜씨로 참외를 따오는 고참
고참은 참외밭으로 다가가더니 이내 밭속으로 사라집니다. 참외밭에서 깜빡깜빡 불빛이 들어옵니다. 군대용 후렛시로 잠깐 비춰서 노랗게 익은 것을 고랄 땁니다. 저 멀리서 참외를 따는 불빛이 반딧불이처럼 잠깐잠깐 빛을 발합니다.
조금 있으려니 이 고참은 자신의 전투복 상의 하나 가득 잘 익은 노란 참외를 잔뜩 따서 담아옵니다. 그리고선 영웅처럼 내보입니다. 몹시 재밌어 합니다.
참외를 못따오겠다고 하자
원산폭격을 풀고 단검으로 참외를 깎게 합니다. 마지못해 참외를 깎습니다. 고참이 그러면서 핀잔을 줍니다. 이래저래 인격적 모욕마저 줍니다. 학사장교 출신의 이 소대장은 그 핀잔마저 재밌어 하면서 웃습니다.
참외서리를 재밌어 합니다. 영웅시합니다. 하지만, 참외서리를 ‘절도’라고 생각한 필자는 아무리 고참의 명령이지만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엄청난 인격적 모욕과 일명 ‘원산폭격’을 당해야 했습니다.
다시한번 더 필자더러 참외밭에 가서 고참처럼 참외를 따오라고 합니다. 선뜻 대답을 못하는 필자를 고참이 발로 걷어차 버립니다. 또다시 원산폭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저런 위협까지 받습니다.
소대장의 무모한 도전
참외밭에 안 가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도시에서 자란 소대장은 재밌겠다면서 군대가 좋아졌다며 소대장인 자신이 직접 가겠노라고 나섭니다. 일병주제에 명령을 어겼다고 자대로 복귀하면 엄청난 일이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더니 이번엔 자신이 직접 갑니다. 다른 소대원들이 서로 가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이 소대장은 모두 만류한 채 자신이 직접 혼자 가겠다고 재밌어라 합니다.
참외밭 가를 지나더니 쏜살같이 돌진합니다. 참외밭에서 깜빡깜빡 불빛이 들어옵니다. 밭 가장자리에 참외를 놓더니 이 소대장이란 양반 또 참외밭으로 들어갑니다. 또 재밌어 합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합니다. 아마도 도시에서 자란 소대장이라 이런 경험을 안해본 모양입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소대장이 몇 번 참외밭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밟히고 맙니다. 소대장이 후렛시로 노란 참외를 낮은 포복으로 딱깍하고 비추면서 참외를 막 따는데 하늘에서 ‘요놈 너 바로 걸렸다’라는 주인장의 목소리가 곧장 전해옵니다.
소대장은 현장에서 곧장 붙잡힌 것이죠. 어이할 수 없이 소대장은 주인한테 여차여차해서 그랬다고 이래저래 변명을 해봅니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주인은 일을 크게 키울 모양새입니다. 소대장은 발이 손이 되도록 빌어봅니다. 하지만 주인은 끔쩍도 않습니다.
이윽고 소대장은 조용히 무마하려고 돈을 제시합니다. 주인은 돈이 적다는 말이 조금 떨어진 우리들 귓가에까지 들립니다.
참외 서리후 엄청난 후폭풍이
그 다음날 참외밭 주인은 결국 중대장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선 변상을 하게 했습니다. 수소문해 보니 참외밭 전체 수확량을 보상해 달라고 하다가 몇 줄 값을 받아갔다고 합니다. 참외는 몇 개 서리 했지만 들킨 죄로 그 보다도 훨씬 많은 경비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중대장은 그날밤 우리가 자고 있는데 느닷없이 비상을 걸어버립니다. 군기가 빠져서 그렇다 말합니다. 자다가 빵빠레를 당한 것이지요.
중대장은 그래도 성이 안찼는 지 결국은 그 다음날 그날 수색에 갔던 소대원들을 전원 군기교육대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소대장은 장교라고 적당하게 중대장이 위신을 세워줬습니다.
무척이나 후폭풍에 시달렸던 아련한 추억
군기교육대에 들어간 우리들은 전봇대 체조를 비롯해서 하루종일 얼차례를 받았습니다. 구르고 목소리가 작다고 발로 차이고 이래 저래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고참은 필자에게 목소리 작다고 또 한소리 합니다. 밥먹는 시간에 조차 필자를 구박합니다. 이렇게 군기교육대를 보냈습니다. 참으로 억울했지만 당시의 군대는 군대였기에 어떡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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