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건강

'보릿고개'의 추억…보리, 천대받던 몸이 귀하신 몸으로

세미예 2008. 5. 11. 00:21

"보릿고개가 뭐죠?" 

"요즘 보리가 갑자기 왜 각광받죠?"
"보리에 관한 추억이 뭔가요." 
"요즘 세대는 보릿고개를 전혀 모르더군요."
"가슴 아픈 기억을 오래 간직할 필요는 없지만 되새겨볼 필요는 있습니다."
"보릿고개란 말이 이제는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아요."

"우리 민족은 참으로 보릿고개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어요."




한때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봄이면 참으로 넘기 힘든 고개가 바로 보릿고개였습니다. 배고픔으로 상징되는 보릿고개는 우리민족에게 아픈 추억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보릿고개시대는 한 해 지은 식량이 동이나 배고픔 상태로 지내야 했던 시절입니다. 당시 보리밥일망정 귀한 존재였습니다. 


당시엔 배고픔이 정말 몸서리칠 정도로 싫었습니다. 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살아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에야 배를 곯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당시엔 대다수가 굶주렸습니다. 그랬던 보리가 오늘날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봄바람이 살랑살랑 간질간질거리면 파도파기를 하듯 오선지의 음표가 푸른 길 사이로 하늘거린다. 보리밭 사잇길로~ . 실록의 계절 5월 고향을 다녀오다가 보리밭을 스쳐 지나왔습니다.

주마등처럼 어린시절이 문득 생각나 카메라로 몇 컷 담았습니다. 청록의 빛을 머금은 채 수런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환희의 송가같았습니다. 부활을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보리가 부활한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보리에 대한 생각주머니를 모아봤습니다.




보리는 옛날부터 주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리관련 재밌는 속담도 많더군요. 이를테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움츠러들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노래나 춤도 못 추고 파티같은 데 가면 구석에 쭈그러져있는 것을 ‘쑥맥’ ‘꿔다논 보리자루’라고 합니다. 1960년대 세대를 흔히들 보릿고개 세대라고 합니다.

보릿고개란 말은 예전엔 농촌이 몹시 궁핍하여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이 되면 농가에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가 닥치는데 이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흔히 춘궁기(春窮期)라고 불리는 이 시기 대부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간신히 연명하다시피 하였으며, 워낙 지내기가 힘들어 마치 큰 고개를 넘는 것 같다 하여 보릿고개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보릿고개 세대라 그 당시엔 끼니를 구황작물로 때우거나 대충 먹고 자랐습니다. 그러던 것이 식량증산에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서서이 보리는 찬밥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쌀이 남아돌고 수입쌀까지 들어오면서 보리는 우리의 추억속에나 간직될만큼 사라져 갔습니다.

그런데 최근 보리가 다시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웰빙식품 바람을 타고 전국적으로 소비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재배면적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경남지방통계청이 최근 도내 2533개 표준단위구를 대상으로 '2008년 경남지역 맥류·마늘·양파 재배면적'을 조사한 결과 겉보리·쌀보리 재배면적이 4809ha로 지난해 3970ha에 비해 21.1%(839ha)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같이 보리 재배면적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건강을 생각하는 식생활 습관이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보리를 이용한 식품 개발이 늘어나고 소비자들의 선호도까지 높아지면서 판매장 개설 등 판로 개척이 수월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최근 보리관련 다양한 음료까지 개발된 것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확실히 보리가 부활한 것 맞죠. 그렇다면 어린시절 불고 놀았던 보리피리와 그 시절 흔한 음식인 보리개떡도 다시 맛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런 풍속들은 이젠 추억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