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이 생각납니다. 어린시절 우물 말입니다."
"우물가는 동네 인심을 피워올리는 곳이었죠."
"맞아요. 우물가에 물길러 가는 길이 좋았었는데."
"그 당시엔 우물가가 동네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우물가를 들락거렸으니까요."
"그랬던 우물이 이젠 완전히 사라져 가네요."
우물을 아시나요. 최근 우물을 보셨나요. 도심에서 우물을 보셨나요. 우물에 관해 어떤 기억이 있습니까. 우물은 아마도 386 이상 세대들, 혹은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에겐 아련한 추억을 퍼올리는 존재입니다.
우물은 물만 깃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두런두런 둘러앉아 동네 인심을 나누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더 정겹고 더 살가운 곳이 우물이었습니다.
우물은 아련한 어린시절 추억을 퍼올리는 존재
물이 한때 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수돗물을 틀면 물이 콸콸 나오고, 요즘엔 농촌까지 수돗물이 보급되었으니 예전의 이야기입니다. 또 우물이 필요하면 현대화된 장비로 파면 되지만, 예전에는 자연발생적인 우물이거나 일일이 사람이 파야만 했습니다.
우물 팔때 온 동네 남정네들이 공동작업
우물을 파내 만들때면 온 동네 남정네들이 공동작업을 하고 아낙들은 새참(중찬)을 가져옵니다. 막걸리 한 사발이 돌려지고 동네 꼬마들은 주변에서 우물파는 시늉을 하거나 뭐 먹을 게 없나 기웃거리곤 했습니다.
물을 길어다 먹던 아스라한 옛날 추억
물이 귀한 시대다 보니 아침 밥상, 혹은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면 어머니는 설거지를 마치고 물항아리를 들고 이웃집으로 물을 길러 나섰습니다. 이렇게 한 동이씩 머리에 이고 집과 우물을 오가며 집안의 물동이를 채우려면 열댓 번을 오가야 하루동안 쓸 물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우물이 있는 그 집을 '새미집'이라 불렀습니다. 우물이 있는 집이 부러웠고, 그 집안의 아이들은 동네 친구들에게 으스대며 ‘새미’(우물)를 자랑하곤 했습니다.
새미는 동네 아낙들의 의사소통 공간
새미는 동네 아낙들의 의사소통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 가면 동네 아낙들의 스트레스가 팍팍 풀리곤 했습니다. 남편 험담부터 시누이 흉보기, 남녀상열지사, 아들 딸 자랑들이 모두 이 우물가에서 시작됐습니다.
두레박으로 건져올린 물로 시원한 등목
여름이면 두레박으로 막 건져올린 물로 등목을 치면 그 오싹함에 더위가 확 달아나 버립니다. 우물깃는 처자의 자태에 반해 몰래 처자의 손목을 잡았다가 물세례를 받은 양반의 이야기도 우물에서 나왔습니다. 전설의 고향 주 단골메뉴로 빼놓을 수도 없었죠. 그래서 아이들은 우물가에 가기를 무서워 했습니다.
부산 도심의 '황새알 우물' 옛흔적 이젠 사라져
상수도가 생긴 이후로 그 동네우물이 하나둘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동네 아낙들의 이야기꽃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시화는 옛 것들을 아주 빨리 우리의 주변에서 밀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산 도심에 우물이 남아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황새알 우물’을 소개합니다. '황새알 우물'은 인근 주민들이 우물 살리기 운동을 벌여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부산 연제구 거제동 부산교육대와 국제신문 사이에 있습니다. 구청의 자료에 따르면 황새가 물을 마신 곳이라 해서 유래 되었다고 하며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황새알 우물터'의 유래는 부산의 행정구역명 유래를 보면 18세기 조선후기 영조때 남문 옆에서 3리 떨어진 이곳을 대조리(大鳥里)라 불렀는데 ‘큰새’ 즉 황새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해발 46m의 십자산은 마이 둥근 알처럼 생겨 종종 이에 비유되었다는 기록도 있고 또 황새도 많이 서식하였는데 물을 마시기 위해 이 우물터로 날아온 황새들의 산란으로 알이 무척 흔했다고 합니다. 이런 유래를 간직한 황새알 우물터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옛날 대조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으로 주민의 사랑을 받은 것이여서 오늘날 ‘거제1동의 상징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우물물은 바닥이 보일정도로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수질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아 현재는 식수 이용이 불가능합니다.”(부산 연제구청 자료)
빠르게 사라져가는 옛것에 대한 보존 노력 절실
'황새알 우물'은 현재 부산지역에 남아 있는 재래식 우물 가운데 가장 크고 원형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름이 2m에 달할 정도로 제법 큽니다. 큰 길가에 위치해 예전의 의사소통 공간이라는 우물 본래의 목적에도 딱 들어맞습니다. 두레박도 있습니다. 동사무소와 인근 주민들이 나서 올 봄 쌈지공원으로 조성했습니다. 주변도 깔끔하게 정비돼 있습니다.
자꾸만 사라져가는 옛것들
이곳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겐 옛것에 대한 산교육장으로서 좋습니다. 아울러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져가는 옛것들을 보존하는 노력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새알 우물’을 보존하려는 인근 주민들의 노력은 갈채를 받을만 합니다. 오늘 하루도 잠시 세상살이 시름을 잊고 우물에 대한 추억을 퍼올려 보면서 즐겁게 생활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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