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40대 늦깎이 임시교사…그토록 학생들과 교사로 만나고 싶었을까

세미예 2008. 9. 23. 10:59

"뭐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해"

"아이들 잘 가르쳐 보고 싶어요."

"그런 마음을 누가 알아준다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텐데."

"기회라는 게 참 불공평한 것 같아."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요."




혹시 40대에 늦깎이로 주변 사람이 임시교사 나간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도 채 100일도 안된 신생아를 두고 임시교사로 나간다고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과연 이를 만류해야 할까요, 아니면 격려를 해야할까요. 격려를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만류하기도 참 난처한 것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이도 나이이거니와 그 길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40대 늦깎이 임시교사 왜?

집사람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시교사로 여고에 처음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개월짜리인데도 집사람은 그동안 육아만 하다보니 세상을 너무 모랐다며 임시교사 요청에 두말 않고 응하더군요.


어린 아이가 있다보니 졸지에 처가에서 짐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처가에 아이를 맡기더라도 기필코 임시교사지만 해봐야 겠다고 했습니다. 오기가 발동한 것일까요. 아니면 자아실현을 위한 몸부림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경제력 때문이었을까요.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한번 해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늦깎이 임시교사 마음고생이 심해요

하지만, 걱정도 앞섰습니다. 40대라면 학교에서 참 지내기가 거북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교사들이 많은데 적지않은 나이에 그것도 임시교사의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단지 잘 해내리라 그냥 믿고 있습니다. 집사람의 일을 계기로 중등교원 문제가 새삼스레 다시 떠오릅니다.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국가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채 자격증을 발급하는 바람에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임용고시란 말이 허튼소리가 아닙니다.


집사람도 몇차례 임용고시를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나간지 워낙 오래된 일이라 몇차례 고배를 마셨습니다. 이런 집사람을 보기가 안쓰럽습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도 교사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집사람의 모습이 한편으론 측은하고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아예 포기하고 육아만 전담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국가의 정책 잘못이 큽니다.



국가 교육정책 잘못 언제까지

국가의 정책을 볼까요. 첫째, 국가는 수요가 공급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을까요. 초등교사가 모자라 중등교원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교육시켜서 발령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시기적으로 그 당시 뿐이었습니다. 중등교사 양성학교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적절히 조절치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격증은 발급하고 관리는 제대로 안하는 셈입니다. 


다음으로, 국가는 아이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사가 많이 필요했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말은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예산타령으로 말입니다. 이러다보니 예비교사가 넘쳐난 것입니다. 


다음으로, 임용고시의 기준이 거의 해마다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좋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해마다 바꿔야 할 정도로 그 시험제도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죠. 임용고시의 기준이 좋았다면 해마다 확 바꿀만큼 예비교사들에게 혼란을 줘야 할까요.


국가의 정책잘못은 숱하게 있습니다. 이들 정책의 잘못으로 이땅엔 교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국가가 나서 원죄의식을 갖고 적절한 대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올해도 연말이면 임용시험이 예정돼 있습니다. 내년초면 당락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탈락자들은 또 그 다음을 기약하며 준비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은 이어져야 할까요. 정말, 국가가 문제의식을 갖고 성실한 정책과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