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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유래 뜻 의미 설날이란 큰명절 몰랐던 놀라운 비밀?

윤서원 님의 '봄은 찾아온다'라는 시가 유독 생각나는 올 겨울입니다. 올 겨울은 여느해보다 유난히 동장군의 기세가 사나웠습니다. 어찌가 추위가 매섭던지 봄이 그리워 집니다. 하지만 윤서원 님의 시처럼 따뜻한 봄은 사나운 동장군을 뚫고 이내 찾아올 것입니다. 


흔히 설날이 낀 음력 1월을 가리켜 맹춘(孟春)이라고 합니다. 맹춘(孟春)의 뜻을 풀어보면 한자어 맹(孟)은 맏, 첫, 처음 맏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 춘(春)은 말 그대로 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맹춘(孟春)이란 말은 말 그대로 봅이 시작되는 초봄을 뜻합니다.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담겨진 글자가 바로 맹춘(孟春)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봄철이면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예축적(豫祝的) 의미의 세시풍속이 유독 우리 민족에게는 많습니다. 1월(음력)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은 바로 설날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역시 한가위와 설날입니다. 대표적인 명절이다보니 우리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난 세시풍속도 바로 설날입니다.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부모를 찾아뵙기 위해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인가 설날을 고향에서 맞으려고 그토록 머나먼 고향길을 찾아갑니다. 이 처럼 우리민족에게서 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명절입니다. 



설날의 어원 어디서 유래됐을까 

음력 1월1일은 설날입니다. 이 날은 조상 대대로 가장 큰 민족의 명절로 지켜왔습니다. 설날의 첫 말인 '설'은 새해의 첫머리를 뜻입니다. 설날은 따라서 한 해의 첫날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설날의 그 기원에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어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설날은 '한해가 시작되는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설날은 묵은 해를 보내고 아직 새로 시작하지 않은 새해가 익숙하지 않아 그런 날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설날의 또 다른 의미로는 '선날'에서 찾습니다. 개시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이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 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설날의 또 다른 기원설은 설날을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합니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일(愼日)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입니다. 


새로운 한해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생긴 말이란 뜻입니다. 설날의 한자어는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등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순수한 우리말의 설날보다 아무래도 정감이 없습니다.


설날의 유래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말은 참으로 많습니다. 한(韓)민족 백의의 민족 배달의 민족 등등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 있어서 설날은 큰명절입니다. 하지만,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역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아무래도 역법이 나타난 시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삼국지를 보면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신라의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일련의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근거로 대략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공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한 점 등으로 미루어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고 알 수 있습니다.



설날의 세시풍속 차례

설날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고 무사안녕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여러가지 놀이나 세시풍속을 행합니다. 그 대표적인 게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 그림, 복조리걸기, 야광 귀 쫓기, 청 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입니다.  참으로 종류도 많고 다양한 행태로 이를 행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게 차례지내기와 성묘입니다. 설날 차례는 아침 일찍 가족과 친지들이 장손집에 모여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과 술을 조상들에게 대접하는 의식을 행합니다. 또한 조상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향교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설날 차례는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 대청마루나 큰 방에서 지내게 되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을 올립니다. 조상의 신주, 곧 지방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냅니다.


세배

세배도 설날의 대표적인 의례 중 하나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 설날 차례를 지낸 뒤 윗어른들에게 절을 하면서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합니다. 이를 세배(歲拜)라고 합니다. 가족들은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식사 후에는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세배를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인 경우 술을 주지 않고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줍니다. 세배를 할 때는 오른손이 왼손 위에 놓아서 큰절을 합니다.


설빔

어린시절 아련한 기억 한 자락이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설빔을 샀다고 자랑하는데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설빔을 사주지 않는다고 부모님을 몹시 원만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설빔은 설날을 맞는 일종의 자랑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날 당일 입기 위해 준비한 옷을 '설빔(세장:歲粧)'이라고 불렀습니다. 설날에는 세배를 하기 위해 새 옷으로 갈아 입게 되는데 이를 '설빔' 또는 '세장(歲粧)'이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설빔을 입고 온 가족들이 고향에 모여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차례를 지내는 것을 가장 큰 후손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우리 민족의 풍속으로는 설빔은 차례를 지낸 뒤 대보름까지 갈아입지 않기도 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은 설날 색동저고리를 입는데 이것을 '까치저고리'라고도 합니다. 열양세시기  원일조에는  "남녀 노소가 새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설빔)'이라 한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설빔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덕담

설날 행해지는 여러가지 의례 중 세배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게 덕담입니다. 덕담(德談)은 설날 일가 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안녕 하셨습니까?", "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아들  낳기를 빕니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위치나 또는 장유(長幼)의 차이에 따라 각자가 처한 위치에 합당한 소원하는 일로 서로를 축하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열양세시기 원일조에도 설날부터 사흘 동안 시내의 모든 남자들이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새해에 안녕하시오"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를 한다. 예컨대 아들을 낳으시라든지, 승진하시라든지, 병환이 꼭  나으시라든지.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날 아침 조상과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면 '덕담(德談)'을 나눠 줍니다. 덕담은 한마디로 웃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맞는 말로 축원하는 일종의 언어주술 행위를 말합니다. 


설날의 세시풍속 복조리

설날이 다가오면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자마자 복조리장사들이 복조리를 한 짐 메고 골목을 다니면서 복조리를 사라고 외칩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1년 동안 필요한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이를 일찍 구매하면 할수록 좋으며 집안에 걸어두면 복이 담긴다고 우리 조상들은 믿었습니다. 또한 정초에 복조리를 사는데 이는 쌀을 이는 도구인 조리가 그 해의 복을 쌀알과 같이 일어 담는다는 뜻입니다. 


설날과 관계깊은 설빔 청참 세찬 세주 음복 세배가 뭐길래?

우리 조상들은 설날 새벽에는 거리에 나가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청참(聽讖)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미리 마련해둔 새 옷인 설빔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아침에는 가족 및 친척들이 모여들어 정초의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순서를 따져 세배를 올립니다. 떡국으로 마련한 세찬(歲饌)을 먹고 어른들은 세주(歲酒)를 마십니다. 세찬이 끝난 후에는 차례상에서 물린 여러 명절음식들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을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나누고 한해 운수대통을 축원해줍니다. 이웃 및 친인척을 찾아서 세배를 다니는 일도 중요한 풍습입니다.


설날이 오늘날과 같은 설이란 이름을 되찾기까지는 오랜 기간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에 갑오경장 당시 김홍집 내각에 의해 태양력을 사용했지만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면면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을 실시해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습니다.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 명치절(明治節) 등을 국경일로 정해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련을 겪다가 1985년에 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설’의 명칭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사흘간 쉬는 것으로 결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세배와 절하는 공수법(拱手法)

새해 아침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새해의 복을 빌며 덕담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배도 절하는 법이 따로 있습니다. 우선 손은 공손하게 맞잡아야 합니다. 손끝은 상대를 향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누워있는 어른에게는 절대 절하지 않습니다. 흔히 어른에게 '앉으세요', '절 받으세요'라고 하는데 이는 명령조이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것이 좋습니다. 세배를 하면서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등의 말을 하는데 이것은 예절에 맞지 않습니다. 절을 하는 사람이 아래사람이라도 성년이면 그를 존중하는 대접의 표시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좋습니다.


세배를 한 뒤 일어서서 고개를 잠간 숙인 다음 제자리에 앉는게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배를 받은 사람이 먼저 덕담을 들려준 후 이에 화답하는 뜻으로 겸손하게 얘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덕담은 덕스럽고 희망적인 얘기만 하는게 좋으며 지난해 있었던 나쁜 일이나 부담스러워할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게 미덕입니다.


공수법이란 어른 앞에서나 의식행사에 참석했을 때 공손하게 손을 맞잡는 방법을 말합니다. 공수의 기본동작은 두 손의 손가락을 가지런히 편 다음 앞으로 모아 포갭니다. 그리곤 엄지손가락은 엇갈려 깍지 끼고 집게손가락부터 네 손가락은 포갭니다. 또한 평상시에는 남자는 왼손이 우로 가도록 하고 녀자는 오른손이 우로 가게 합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의 손잡는 법은 남녀 모두 평상시와 반대로 합니다.


설날 먹는 떡국의 의미는  

설날 먹는 세시음식으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빼놓지 않고 반드시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떡국입니다. 메 대신 떡국차례를 올리고 집안 사람들이 모여 떡국을 먹음으로 나이를 더하는 것으로 여깁니다다. 보통 떡국의 떡은 돈모양으로 동그랗게 썰어 넣어 먹는데 돈이 많이 벌리라는 뜻입니다. 설날에 쓰는 술을 '세주(歲酒)'라 하는데, 세주는 데우지 않고 차게 마셨는데 이는 봄을 맞이한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떡국은 가래떡을 뽑아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육수에 끓인 설날 음식입니다. 떡국은 설날이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끗한 흰떡을 끓여 먹은 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이날 먹는 떡국은 첨세병(添歲餠)이라 하여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국세시(東國歲時記)'에는 "떡국에는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 적고 있는데, 즉,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이라 했으며,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고 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떡국은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만든 떡을 흰떡이라 하는데 이것을 얄팍하게 돈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말하며 지방에 따라서는 떡국에 만두를 빚어 넣기도 했습니다.


설날 음식 흰떡의 의미는?

설날 흰떡을 먹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로 시작을 뜻합니다. 우주 최초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천지만물이 새롭게 탄생하는 새해의 첫날에 흰떡을 먹었던 것입니다. 또한 묵은 때를 씻고 흰색처럼 깨끗해지자는 뜻도 있습니다.


조선조 서울의 풍속을 열양세시기(1819)에는 흰떡은 “좋은 멥쌀을 빻아 채로 곱게 친 흰가루를 쪄서 안반에 놓고 자루달린 떡메로 쳐서 길게 만든 가래떡을 돈짝만(엽전모양)하게 썰어 육수물(꿩고기, 쇠고기)에 끓인 음식이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렇게 끓인 떡국은 차례상이나 세찬상 들에 올려졌으며 설날은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가래떡을 왜 길게 뽑았나?

가래떡을 뽑을 때 길게 뽑았는데 떡을 쭉쭉 길게 뽑듯이 재산도 그만큼 많이 늘어나고 무병장수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떡국을 썰때 동그랗게 써는 까닭은?

떡국을 썰때에는 동그랗게 썹니다. 왜 그럴까요. 가래떡을 썰 때 타원이 아닌 동그란 모양으로 썰게 된 것은 그 모양에 비밀이 있습니다. 떡국은 그 모양이 마치 옛날 화폐인 엽전과도 같았습니다. 엽전처럼 생긴 떡국을 먹으면서 맞이하는 새해에도 돈이 잘 들어와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조상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 개성에서 유래한 조랭이 떡국 역시 누에고치 모양의 조랭이가 재물과 풍년을 가져온다고 하여, 새해에도 집안에 재물이 넘쳐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먹었습니다.






설날 마시는 술의 의미는  

설날에는 술을 마시는데 '세주불온(설술은 데우지 않는다)'이라고 하여 찬술을 한잔씩 마셨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보았기 때문에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라고 합니다.


설에 마시는 술에는 도소주도 있다. 이 술은 오랜 옛날부터 전하여 오는 술로 육계(5~6년 이상 자란 계수나무의 두꺼운 껍질로 한약재로 쓰인다), 산초, 흰삽주뿌리(한약재 백출을 만드는 풀), 도라지, 방풍(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술을 마시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집니다.


설날 먹는 음식 식혜와 수정과

식혜는 밥을 가지고 만드는 음식입니다. 우선 밥을 만든 다음에 엿기름과 함께 물을 넣어 따뜻하게 5~6시간 정도 삭히면 밥알이 동동 떠오르게 되는데 이 때 한 번 끓여 식힌다. 수정과는 곶감을 달일 물에 생강과 꿀을 넣고 끓여서 식힌 후에 건져 둔 곶감과 잣을 넣어 만들었습니다.


설날 음식 한과(과자)

한과는 우리의 전통 과자이며 음식 중에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가득 들어가는 음식입다. 과자의 종류는 많지만 유과와 약과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과는 잔치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과자고 약과는 밀가루에 기름과 꿀, 또는 술을 넣고 반죽해서 튀긴 과자입니다. 옛날 우리 음식에는 '약'자가 들어가는 음식이 많은데 우리 조상들은 과자를 만들 때 정성 들여 빚어서 서로 명절 선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설날 차례상 차리기

차례는 설날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입니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명절·조상의 생일 등에 간단히 지내는데 '차사' 또는 '다례'라고 합니다. 또한 설차례는 설날 아침 조상에 대한 세배로서, 이를 정조다례라고 하고 떡국을 올렸다 하여 설차례를 떡국차례라고도 합니다.


차례음식 만들 때 주의할 점은?

먼저, 차례음식에는 고춧가루, 마늘 양념은 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국물있는 음식(탕, 면, 식혜)은 건지만 사용합니다.  '치'자가 들어간 생선(꽁치,갈치,삼치), 비늘이 있는 생선(잉어)은 쓰지 않습니다. 붉은 팥은 쓰지 않고 흰고물로 씁니다. 복숭아는 쓰지 않습니다.





설날에 즐기는 전통놀이

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들은 설날부터 시작하여 설 명절의 마지막인 정월 대보름날까지 즐겼습니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윷놀이와 널뛰기, 연날리기, 썰매타기, 팽이치기, 바람개비놀이, 쥐불놓이(쥐불놀이)  등이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놀이로는 풍물굿이 어느 지방에서나 행해졌으며 지신밟기, 석전(石戰), 동채싸움(차전놀이), 나무쇠싸움,  홰불싸움, 달불놀이, 달집사르기, 고싸움놀이, 도깨비놀이,  별신굿,  거북놀이, 북청사자놀음, 광대놀이, 처용놀이와 계명(鷄鳴)점, 보리싹 점, 부름깨기, 액연태우기 등이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 나아가 이웃마을 사람들과 한덩어리가 되여 즐기는 이 집단놀이는 각 개인과 가정, 마을 공동체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입니다. 나아가 집약적로동을 요구하는 농경사회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의 협동체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이러한 공동놀이속에 있었습니다.


설날 세시풍속 윳놀이

남녀노소가 함께 하는 가장 보편적인 놀이인 윷놀이는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한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놀입니다. 


둥근 나무토막이나 콩 따위를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들고 이것을 던져서 엎어지고 잦혀지는 모양을 셈하여 말을 쓰는 놀이로서, 보통 장작윷을 많이 사용합니다. 놀이 방법은 윷판을 놓고 쌍방이 각각 윷을 던져 나온 결과대로 말 네 개를 진행시켜서 최종점을 통과하는 편이 이기는 방식입니다.


제기차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놀이입니다. 발을 한 번씩 딛고 차는 '맨제기', 제기를 차는 발을 바닥에 딛지 않고 계속 차는 '헐렁이', 양발을 바꿔가며 차는 '쌍발차기'가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차다 실수하는 이에게 벌칙을 주기도 한다.





널뛰기

큰 명절에 성행한 여자들의 대표적인 놀이입니다. 조선조 양반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해 왔지만 서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널뛰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널 양끝에 한 사람씩 올라와서 줄을 잡고 천천히 뛰기 시작합니다. 이 때 널 가운데 한 사람이 앉아 널을 널받침 위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가장 높이 뛰는 사람이 이기거나 힘껏 굴러 상대편을 떨어뜨리면 이기게 됩니다.


팽이치기

겨울에 사내아이들이 얼음판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치라고도 합니다. 팽이에는 아랫 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 만든 보통 팽이와 위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불팽이가 있습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후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습니다.


복조리 달기

조리장수가 설날 전날 밤부터 복조리 사라고 외치며 돌아다닙니다. 각 가정에서는 밤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1년 동안 쓸수 있는 량의 복조리를 사는데 밤에 미처 사지 못한 사람은 이른 아침에 삽ㄴ다. 일찍 살수록 좋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므로 그 해의 행복을 조리와 같이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이 풍속이 생겼다고 미루어 추정합니다.


야광귀(夜光鬼) 쫓기

야광(앙괭이)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버리는데 그 신의 주인에게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귀신이 무서워 모두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은 다음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채를 마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두었습니다. 그것은 야광귀신이 와서 채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재미있는 풍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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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올 겨울은 여느해보다 유난히 동장군의 기세가 사납습니다. 하지만 윤서원 시인의 '봄은 찾아온다'는 시처럼 따뜻한 봄은 사나운 동장군을 뚫고 반드시 찾아 옵니다. 흔히 설날이 낀 음력 1월을 가리켜 맹춘이라고 합니다. 


한자어 맹(孟)은 처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 춘(春)은 말 그대로 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맹춘(孟春)이란 말은 말 그대로 초봄을 뜻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봄철이면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예축적(豫祝的) 의미의 세시풍속이 유독 우리 민족에게는 많습니다. 1월(음력)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은 바로 설날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역시 한가위와 설입니다. 추석과 더불어 부모를 찾아뵙기 위해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민족에게서 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명절입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흔히 말하는 명절은 세시풍속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기념하는 날을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예로부터 산소에 올라가 제사를 올리는 것을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4대 명절에 행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설날의 의미는 각별했습니다.


설은 새해의 첫 시작을 알리는 날을 기념하는 우리 민족의 크나큰 일종의 행사입니다. 설은 묵은 해를 정리해서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는 첫날입니다.  


이렇게 의미가 깊은 설날은 오늘도 유유히 민족의 가슴속에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설이라 칭했으며 설날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설날은 어떤 아픈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설날이름 왜 하필이면 설일까?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명절인 설날은 음력 1월1일을 가리킵니다. 흔히 설이라고 할때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는 뜻이 그 의미라고 합니다. 이 때의 '사린다'는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삼가다’ 또는 ‘조심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설날의 의미는 한해 내내 무탈하고 무사하게 지낼 수 있도록 새해 첫날부터 몸과 행동을 조심하며,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입니다.


설날의 역사

우리 민족에 있어서 양력의 도입은 일대 대사건이었습니다.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택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때 개화당의 김홍집 내각에 의한 것으로 가히 혁명이라고 할만큼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1895년 당시에는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건양1) 1월 1일이라고 고종황제의 칙명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또한 세력(歲歷)을 태양력으로 바꾸고, 나라에서 쓰는 연호도 양력을 세운다는 뜻의 건양(建陽)이라고 고쳤습니다. 설날은 1985년부터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그 후 민속의 날로 정했던 구정을 1989년부터 ‘설날’로 개명하는 동시에 3일간의 연휴로 한 것입니다. 


설날의 유래 어원 어떻게 시작됐을까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습니다. 우선 '섧다'라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선조때 이수광의 '여지승람(舆地胜览)'에는 설날을 '달도일'로 표기했습니다. 이 때  '달'은 슬프고 애달파한다는 뜻이며,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입니다. 한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이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설날의 또 다른 어원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說)입니다. 우리 민족의 각종 가록을 담은 세시기(歲時記)들에는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가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몸과 마음을 바짝 죄여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말뿌리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원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 문화적 낯섦의 의미로 생각되여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이를 말하는 즉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연세설(年歲說)'도 있습니다. 이 밖에 한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의 '서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였다는 설도 있다.


설 또는 설날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정초(正初),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歲初), 년두(年頭), 년수(年首), 년시(年始)'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한자말들은 '설날'만큼 정감어린 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설날의 의미는?

이 ‘설’의 의미에 대해 ‘설날 문화 가족’이란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다. 


"설날은 한자로 원일(元日), 세수(歲首)라고 쓰며, 그것은 일 년의 첫째 되는 날이란 뜻이다. 또한 첫 출발일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날을 삼가는 날(愼日)이라고 하여 중요한 날인 만큼 행동을 경망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밖에 ‘설’의 의미에 대해 처음 날, 비롯함의 날, ‘설다’, ‘낯설다’의 어간 ‘설’에서 온 듯함, ‘선날’에서 왔음, 시단(始旦)이나 원단(元旦)을 설이라 불렀음, 몸을 사리다의 ‘살’에서 옴, 산스크리트 말 ‘살’에서 왔음 등 다양한 해석이 가해졌다."


이를 보면 설날의 ‘설’은 ‘살’에서 왔다고 합니다.  ‘살’은  ‘나이’나 ‘해’를 뜻하는 ‘살(歲)’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해마다 세는 명절 ‘설’이란 말은 ‘나이’나 ‘해’를 뜻하는 살(歲)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명절로 지내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隨書)'에는 신라인들이 새해의 아침에 서로 례를 차려 축하하고 왕이 잔치를 베풀며 일월신에게 절하고 례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다. 이때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도 비슷하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신라때에도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포함된 큰 제사를 1년에 6번씩 지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생겼을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설을 9대 명절의 하나로 즐겼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을 4대 명절의 하나로 지냈는데 이미 이때에는 설이 지금처럼 우리 겨레의 큰 명절로 자리잡았을것으로 보입니다.





설 언제부터 쇠기시작했을까?

우리가 오늘날 쇠고 있는 설은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사서에서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을 배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 민족에 있어서 그 역사가 무척이나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설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만큼 이 날을 아무 탈 없이 보내야 1년 365일이 평안하다고 하여 지극히 조심하면서 가만히 들어앉는 날이란 뜻에서 설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설은 다른 이름으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보통 우리가 부를때 설이라고 합니다.


설은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묵은 1년은 지나가고 설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데,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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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설 '아치 설'이 뭐길래

흔히 설날이 다가오면 '아치 설'이란 말을 듣게 됩니다. 예전에는 작은설을 ‘아치 설’이라 했습니다. 순수한 우리나라 말에 ‘아치’는 ‘작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치’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어 ‘아치 설’이 ‘까치설’로 되었다고 합니다. 


설날이 되면 듣게되는 대표적인 ‘까치까치 설날’ 의 동요 속의 그 ‘까치’와는 뜻이 전혀 다릅니다. 옛날에는 섣달 그믐날에 아치 설이라고 하는 작은 설을 지내고 또 정월초하루에도 설을 지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설 차례를 실제로 따로 두 번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설날인 섣달 그믐날 밤 해시(亥時)에 진설을 해 놓고 차례의 일부 순서만 지내고 자정이 넘기를 기다렸다가 자정이 넘으면, 즉 해를 넘기고 나서 그 차례 상에서 그대로 나머지 순서대로 정월초하루 설 차례를 지내습니다. 


설날 세배와 덕담문화

설날 아침과 정초에 어른에게 하는 큰절을 세배라고 합니다. 새해 첫날 큰절을 하면 어른은 덕담을 내려 줍니다. 덕담의 법도는 어른이 먼저하고, 어른이 아랫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전에는 "올해 과거시험에 급제했다"며, "올해는 시집 갔다"며, "올해 득남했다"며, "올해 큰 부자가 됐다"며, "복 많이 받았다"며 등등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여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웃 어른에게 세배를 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덕담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하는 데, 이것은 전통 예의에 어긋납니다. 큰 절을 올리는 사람은 겸손하고 조용하게 큰절을 하고, 어른이 곧바로 덕담을 하면 아랫 사람은 그제서야 '올해도 건강하시고, 보살펴 주십시오' 정도로 답례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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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왜 떡국을 먹을까

설날이면 궁금증이 한번씩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설날 아침에는 왜 떡국을 먹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새해의 시작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떡국을 먹는 전통이 생간 것으로 짐작됩니다. 떡국에 들어가는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했고, 썬 떡의 둥근 모양은 화폐를 형상화하여 재물도 많이 들어오길 바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을까요. 떡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나와 있는 문헌은 없습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담은 '열량세시기(1819)'와 '동국세시기(1849)'에는 제례음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떡국을 꼽고 있습니다. 정조차례(正朝茶禮, 정조는 설 아침을 뜻하는 말임)와 세찬(歲饌, 세배하러 온 손님을 위한 음식) )으로 꼭 필요한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사학자로 문인으로 활동했던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아주 오래 된 것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된 것으로 떡을 주식(主食)으로 하던 우리 민족의 관습이 지속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백의민족의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설이 있을까?

중국에도 우리민족의 설에 해당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봄의 절기를 뜻하는 '춘절'이 라는 중국 최대의 명절입니다. 올해 춘절 기간은 2월 15일부터 21일까지지만, 고향길 행렬은 2월 1일부터 40여 일간 계속됩니다. 


춘절 기간에는 빨간 옷을 입고, 빨간색 종이에 행운을 상징하는 글귀 또는 복(福)을 적어 거꾸로 문에 걸어놓기도 합니다. 이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고,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전에는 설날을 음력으로 쇘지만, 지금은 양력 1월 1일만 쇤다고 합니다. 3~4단 찬합에 새우와 검정콩 등 의미가 담긴 여러 가지 음식을 조려 보기 좋게 담아낸 '오세치 요리'를 먹습니다. 설에 우리나라처럼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있는데 '당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멕시코에서는 집안에 돈을 숨겨 가족과 함께 찾은 뒤, 모은 돈으로 맛있는 식사를 즐긴다고 합니다. 식사 후에는 1년 12달을 의미하는 포도 12알을 먹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합니다.


불가리아는 '포카치오'라는 빵을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동전을 넣어 굽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빵을 잘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동전이 있는 빵을 받은 사람이 한 해 행운이 깃든다고 합니다.


설날은 근심되는 일은 삼가는 날의 의미

우리 조상들은 설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겨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매년 첫 해일․ 자일․오일에는 온갖 일을 꺼리며 조심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를 '달도'라 하여 근심되는 여러 일을 금했다고 합니다. 설날이라는 말의 유래는 '섧다' '슬프다'에서 나온 것으로 몸을 사린다는 신일(愼日)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설날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차분하고 조용하고 올해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지면서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로 설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요.  설날의 의미처럼 근심되는 일에 삼가 주의를 기울이며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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