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풀 뜻, 부추 베러 간다던 처녀가 몰래 만난 사람

“소풀 좀 베어오너라.”

어머니는 부추가 필요할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막 그친 오후였습니다. 마당 흙은 아직 촉촉했고, 처마 끝에서는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집 앞 우물가에는 동네 사람들이 물을 길어가며 남긴 발자국이 흐릿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시골집 앞에는 ‘새미’라고 부르던 우물이 있었습니다. 물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물동이를 이고 지고 와서 물을 길어가던 곳이었습니다. 여름이면 우물가 돌 위에 물기가 번들거렸고, 겨울이면 두 손을 호호 불며 물을 퍼 올리던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우물 바로 옆에는 작은 밭이 있었습니다. 토란도 심고, 부추도 심던 밭이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부추 잎은 흔들흔들 움직였습니다. 비를 맞고 난 뒤에는 더 그랬습니다. 부추들도 시원했는지, 잎마다 생기가 돌았습니다.

어머니는 찌짐을 부치거나 국에 넣을 부추가 필요하면 늘 그 밭으로 가셨습니다. 바쁘신 날에는 저를 부르셨습니다.

“가서 소풀 한 줌만 베어온나.”

처음에는 정말 소가 먹는 풀인 줄 알았습니다. 소가 먹는 풀은 소꼴이라고도 했는데, 왜 어머니는 부추를 보고 소풀이라고 하실까. 어린 마음에는 그게 참 헷갈렸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날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같은 부추를 두고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구지 좀 씻어라. 저녁에 찌짐 부치자.”

소풀이라고 했다가, 정구지라고 했다가, 시장에 가면 또 부추라고 했습니다. 같은 초록 잎 하나에 이름이 세 개나 붙어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소풀 뜻은 부추였습니다. 정구지도 부추였습니다. 다만 지역과 집안마다 부르는 말이 조금 달랐던 것입니다.

소풀 뜻, 부추를 가리키는 지역어입니다

소풀 뜻은 간단히 말하면 부추입니다. 지역과 세대에 따라 부추를 정구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소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집에서는 정구지가 더 익숙하고, 어떤 집에서는 소풀이 더 자연스러운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풀 좀 베어온나”는 “부추 좀 베어오너라”라는 뜻입니다. “소풀 찌짐 부치자”는 “부추전 부치자”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소풀이라고 해서 소가 먹는 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소가 먹는 풀은 소꼴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 두 말이 헷갈렸지만, 어머니가 말한 소풀은 밥상에 올라오던 부추였습니다.

소풀 뜻 요약
소풀은 부추를 뜻하는 지역어입니다. “소풀 좀 베어온나”는 “부추 좀 베어오너라”, “소풀 찌짐”은 “부추전”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지역에 따라 같은 부추를 정구지, 소풀, 부추처럼 다르게 부르기도 합니다.

부추는 한 번 베어도 다시 잘 자라는 채소입니다. 뿌리가 살아 있으면 새잎이 금세 올라옵니다. 그래서 시골집 작은 텃밭 한쪽에 부추를 심어두면,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베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소풀을 베어오라고 하신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시장에 가지 않아도, 우물 옆 작은 밭에 가면 찌짐 한 장 부칠 만큼의 부추는 늘 있었습니다.

비 온 뒤 시골 우물가 옆 부추밭을 바라보는 긴 머리 여성과 싱그럽게 자란 소풀
비가 그친 뒤, 우물가 옆 작은 밭의 소풀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흔들 움직였습니다.

어머니는 소풀을 베어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손에 작은 칼을 쥐고 우물가 옆 밭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뿌리까지 뽑지 말고, 밑동만 살살 베어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풀을 벤다는 것이 그냥 몽땅 잘라내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부추는 달랐습니다. 칼로 삭둑 잘라도 며칠 지나면 다시 올라왔습니다.

정말 이상할 만큼 빨랐습니다.

아침에 베고 난 자리는 낮에는 허전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가보면 초록빛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또 한 줌쯤 베어도 될 만큼 자랐습니다. 어린 저는 그게 신기했습니다.

“어제 잘랐는데 또 났네.”

혼잣말을 하면 어머니가 웃으셨습니다.

“소풀은 원래 그래. 베어도 또 올라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부추 이야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살이도 그랬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다음 날이면 다시 밥을 짓고, 밭을 매고, 우물물을 길었습니다. 베어도 다시 올라오는 소풀처럼, 어른들의 하루도 그렇게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날 저녁이면 어머니는 제가 베어온 소풀을 흐르는 물에 씻었습니다. 흙을 털고, 누렇게 진 잎을 골라내고, 송송 썰어 밀가루 반죽에 넣었습니다. 반죽 위로 초록 잎이 흩어지면 부엌에는 금세 비 오는 날의 냄새가 났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얇게 펴면, 지글지글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좋았습니다. 밖에서는 비가 오고, 안에서는 소풀 찌짐이 익어가고, 어머니는 젓가락으로 가장자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건 뜨거울 때 묵어야 맛있다.”

그때 먹던 소풀 찌짐은 크지 않았습니다. 계란도 많이 들어가지 않았고, 해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맛은 오래 남았습니다. 바삭한 가장자리, 약간 질깃한 부추 향, 간장에 살짝 찍어 먹던 첫 조각. 지금도 비가 오면 그 냄새가 먼저 떠오릅니다.

소풀과 정구지, 같은 부추를 다르게 부르던 말

어린 시절에는 소풀과 정구지가 서로 다른 채소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날은 소풀이라고 하고, 어떤 날은 정구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엄마, 소풀이랑 정구지는 다른 거예요?”

제가 묻자 어머니는 손에 묻은 밀가루를 털며 대답하셨습니다.

“같은 기다. 부추를 그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른다.”

그 대답이 더 헷갈렸습니다. 같은 것인데 왜 이름이 여러 개일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사투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같은 경상도 안에서도 지역과 세대에 따라 말이 달랐고, 같은 집 안에서도 어른들이 들은 말과 아이들이 쓰는 말이 달랐습니다.

정구지라는 말은 경상도에서 부추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소풀도 부추를 가리키는 지역어로 쓰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정구지가 익숙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소풀이 익숙했습니다.

표현 예문 느낌
소풀 부추 “소풀 좀 베어온나.” 시골 텃밭, 집밥, 생활어 느낌
정구지 부추 “정구지 찌짐 해 묵자.” 경상도 부추 사투리로 익숙한 표현
부추 표준어 “부추전 부치자.” 전국적으로 통하는 표현
소꼴 소에게 먹이는 풀 “소꼴 베러 간다.” 소풀과 헷갈리기 쉬운 말

정리하면, 소풀은 소가 먹는 풀이 아니라 부추를 뜻합니다. 소가 먹는 풀은 소꼴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처럼 헷갈렸다면, 이렇게 구분하면 됩니다.

소풀은 밥상에 올라오는 부추, 소꼴은 소에게 먹이는 풀.

소풀, 정구지, 무다이, 멀끄디처럼 여러 경상도 생활어를 한 번에 보고 싶다면 경상도 사투리 뜻 정리 글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 오는 날 할머니가 “정구지 찌짐 묵으러 온나”라고 하신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정구지 뜻과 정구지 찌짐 이야기도 함께 읽어보세요. 같은 부추를 두고도 정구지와 소풀이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남는지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소풀 베러 간다는 말은 가끔 핑계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에는 몰래 서로 좋아하던 처녀와 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온 동네가 다 알고 있었을 텐데, 그때 두 사람만 모르는 척했습니다.

처녀는 집에서 나갈 구실이 필요할 때마다 말했습니다.

“엄마, 소풀 좀 베어올게요.”

처음 한두 번은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시골집 밥상에는 소풀이 자주 올라왔습니다. 소풀을 송송 썰어 된장국에 넣기도 했고, 밀가루 반죽에 섞어 찌짐을 부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소풀을 베러 간다는 말은 너무 자연스러운 핑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풀이 아무리 잘 자라도 하루 이틀 만에 또 벨 만큼 자라지는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소풀을 베어왔는데, 처녀는 또 소쿠리를 들고 나섰습니다.

“또 소풀 베러 가나?”

마루 끝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처녀는 괜히 소쿠리 손잡이만 고쳐 잡았습니다.

“비 오고 나면 금방 자라잖아요.”

그 말에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습니다.

“소풀보다 니 마음이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은데.”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었습니다. 처녀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습니다. 그래도 그는 소쿠리를 들고 밭 쪽으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우물가를 지나 밭둑에 다다르면, 늘 그 총각이 먼저 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대단한 말을 나눈 것도 아니었습니다. 총각은 밭 가장자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소풀을 조금 베어주었고, 처녀는 괜히 이미 벤 자리를 다시 만졌습니다.

“오늘은 너무 조금 베면 들키지 않겠나?”

총각이 낮게 말하면, 처녀는 대답 대신 웃었습니다.

“많이 베면 또 너무 자주 베러 온 게 들키잖아요.”

비 온 뒤의 소풀 잎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초록 잎들이 흔들렸습니다. 두 사람은 그 흔들림 사이에서 잠깐씩 손이 닿았고, 그럴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소쿠리에는 소풀 몇 줌밖에 담기지 않았지만, 돌아오는 처녀의 얼굴은 이미 온 동네가 알 만큼 환했다고 합니다.

비 온 뒤 소풀밭 옆에서 소쿠리를 들고 몰래 만난 1950년대 한국 시골 처녀와 총각
소풀을 베러 간다는 말은, 어느 날에는 몰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핑계가 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날 저녁, 처녀는 소쿠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소쿠리 안에는 소풀이 조금 담겨 있었습니다.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눈에는 그 양보다 얼굴이 먼저 보였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물었습니다.

“오늘 소풀은 많이 안 컸더나?”

처녀는 괜히 소쿠리를 부엌 바닥에 내려놓으며 대답했습니다.

“비가 덜 와서 그런가 봐요.”

그러자 아버지가 마루에서 신문을 접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비는 충분히 왔다. 니가 밭에 오래 있었는데도 소풀이 적은 기다.”

처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담긴 뜻을 모를 수 없었습니다. 소풀을 베러 간 시간이 길었던 것, 돌아오는 얼굴이 너무 밝았던 것, 소쿠리 속 부추가 어설프게 잘려 있었던 것까지 모두 들킨 것입니다.

어머니는 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추를 씻으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소풀은 베어도 다시 자라지만, 사람 마음은 너무 오래 숨기면 시든다.”

그 말을 듣고 처녀가 고개를 들었다고 합니다.

“엄마….”

어머니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소풀 핑계 너무 자주 대지 마라. 밭도 쉬어야 한다.”

그 말에 부엌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처녀도 결국 웃었다고 합니다. 혼난 듯하면서도, 어딘가 허락받은 듯한 저녁이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소풀 찌짐을 부쳤습니다. 반죽 안에 송송 썬 부추를 넣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부엌에 퍼졌습니다. 처녀는 평소보다 조용히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찌짐 한 조각을 간장에 찍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소풀은 이상하게 달다.”

아무도 더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소풀 찌짐에는 부추 향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던 젊은 마음도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을요.

베어도 다시 자라는 소풀처럼 마음도 자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저는 그 동네 처녀와 총각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어떤 어른은 두 사람이 결국 혼인했다고 했고, 또 어떤 어른은 총각이 다른 동네로 일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기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하나입니다.

비 온 뒤 우물가 옆 밭.
물방울이 맺힌 소풀 잎.
소쿠리를 든 처녀.
밭둑에서 기다리던 총각.
그리고 소풀보다 더 빨리 자라던 마음.

그 장면을 제가 정말 두 눈으로 봤는지는 이제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어린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투리는 이상하게 그렇습니다. 뜻은 나중에 흐려져도, 그 말을 들었던 날의 냄새와 표정은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소풀이라는 말도 그랬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어머니가 심부름시킬 때 쓰는 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부추를 뜻하는 지역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소풀은 우물가 밭과 어머니의 부엌, 몰래 연애하던 동네 처녀와 총각의 이야기를 함께 데리고 오는 말이 되었습니다.

소풀은 베어도 다시 자랐습니다.
마음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한 번 들키고, 한 번 부끄러워하고, 그래도 다음 비가 오면 또 조금씩 자라는 것.

소풀 찌짐은 부추전이라는 뜻입니다

소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풀 찌짐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소풀 찌짐은 부추전, 부추 부침개를 뜻합니다. 지역에 따라 찌짐은 전이나 부침개를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소풀 찌짐 부치자”는 “부추전 부치자”는 뜻입니다.
“소풀 좀 씻어라”는 “부추 좀 씻어라”는 뜻입니다.
“소풀 한 줌 베어온나”는 “부추 한 줌 베어오너라”는 뜻입니다.

부추는 향이 강하고, 익히면 특유의 단맛과 고소함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찌짐 재료로 자주 쓰였습니다. 시골집에서는 따로 장을 보지 않아도 텃밭에서 조금 베어오면 한 끼 반찬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마트에서 부추 한 단을 사 와서 부추전이라고 부르지만, 어머니 세대의 부엌에서는 그게 소풀 찌짐이었고, 어떤 할머니 집에서는 정구지 찌짐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인데, 부르는 이름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달라지면 이상하게 장면도 달라졌습니다.

부추전이라고 하면 식당 메뉴처럼 들립니다.
정구지 찌짐이라고 하면 경상도 할머니의 말투가 떠오릅니다.
소풀 찌짐이라고 하면 우물가 옆 밭과 어머니의 손이 먼저 떠오릅니다.

소풀 뜻을 찾는 분들에게

정리하면, 소풀부추를 뜻하는 지역어입니다. 소풀이라고 해서 소가 먹는 풀이 아니라, 밥상에 올라오는 부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역과 세대에 따라 부추를 정구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소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풀 찌짐”은 부추전, “소풀 좀 베어온나”는 부추를 베어오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부추는 베어도 다시 잘 자라기 때문에 시골집 작은 텃밭에서 많이 길렀습니다. 우물가 옆 밭, 장독대 옆 밭, 마당 가장자리의 작은 텃밭에 심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베어 먹었습니다.

제게 소풀은 단순히 부추의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심부름이고, 비 온 뒤의 흙냄새이고, 우물가 옆 밭의 초록 잎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몰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던 핑계였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에 누군가 “소풀 좀 베어온나”라고 말한다면, 이제는 이렇게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부추 좀 가져오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오래된 시골집의 밥상과 마음까지 함께 데려오는 말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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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확인: 소풀은 부추를 가리키는 지역어로 쓰이며, 지역과 세대에 따라 정구지, 소풀, 부추처럼 다르게 불릴 수 있습니다. 정구지는 경상도에서 널리 알려진 부추 사투리이고, 찌짐은 전이나 부침개를 가리키는 생활어로 쓰입니다. 방언은 지역과 세대, 집안마다 쓰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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