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뜻, 서울말도 사투리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니는 서울말이 그렇게 좋더나.”

바닷바람이 세게 불던 저녁이었습니다. 파도는 방파제 아래에서 하얗게 부서졌고, 젖은 모래 위에는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졌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돌아온 지 사흘째였습니다. 돌아왔다고 말하기도 애매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것도 아니었고, 완전히 고향으로 내려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며칠 휴가를 냈고, 무너진 마음을 숨길 곳이 필요해 바닷가로 내려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서울에서 만났던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한때 그녀가 촌스럽다고 밀어냈던 사람. 경상도 사투리를 아무렇지 않게 쓰던 사람. 주말마다 이 바닷가를 함께 걷던 사람.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놓고도 그녀는 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너 생각나서 전화한 거 아니야.”

수화기 너머에서 그가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그럼 와 전화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낮고 무뚝뚝하고, 끝을 툭 자르는 경상도 말투. 서울에서 몇 달 동안 애써 지우려 했던 그 억양이, 이상하게도 그날은 가장 먼저 위로처럼 들렸습니다.

그녀는 바다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냥… 사투리 좀 듣고 싶어서.”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물었습니다.

“어딘데.”
“바닷가.”
“거기 있어라. 간다.”

그는 늘 그랬습니다. 길게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달려왔습니다.

사투리 뜻, 표준어가 아닌 지역의 말과 말투입니다

사투리 뜻은 간단히 말하면 어느 지역에서 쓰이는 말과 말투입니다. 표준어와 다른 발음, 억양, 어휘, 표현이 모두 사투리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국어학에서는 사투리를 방언, 지역어, 지역 방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투리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처럼 지방에서 쓰는 말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울말도 모두 표준어는 아닙니다.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바탕으로 정해졌지만, 서울 사람이 쓰는 모든 말이 곧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서울에도 표준어와 다른 말투, 발음, 어휘가 있습니다. 넓게 보면 그것도 서울 사투리 또는 서울 방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투리 뜻 요약
사투리는 특정 지역에서 쓰이는 말과 말투입니다. 단어뿐 아니라 발음, 억양, 말끝, 표현 방식까지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사투리는 사전에 적힌 단어만이 아니라, 그 말을 꺼낼 때의 표정과 속도까지 함께 데리고 다니는 말입니다.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 충청도 사투리, 제주도 사투리뿐 아니라 서울말 안에도 표준어와 다른 서울 사투리적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투리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어느 지역 사람들이 살아오며 만들어낸 말입니다. 때로는 밥상에서, 때로는 시장에서, 때로는 연인 사이의 다툼 속에서 오래 남습니다.

사투리, 방언, 지역어는 어떻게 다를까요

사투리와 방언은 일상에서는 거의 비슷한 뜻으로 쓰입니다. 어떤 지역에서 오래 쓰여 온 말, 표준어와 다른 발음이나 어휘, 억양을 가리킬 때 흔히 사투리라고 부릅니다. 국어학에서는 방언이라는 말을 더 넓게 쓰기도 하고, 특정 지역의 말을 존중하는 의미로 지역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사투리라는 말에는 때때로 ‘촌스럽다’는 편견이 붙어 왔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지역의 말이라는 뜻을 살려 지역어라고 부르려는 흐름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보다 태도입니다. 사투리든 방언이든 지역어든,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라 어떤 지역 사람들이 살아오며 만든 말입니다.

서울의 고급 카페에서 사투리와 서울말 문제로 다투는 연인, 서 있는 여성이 앉아 있는 남성을 내려다보는 모습
서울말을 닮고 싶었던 그녀는, 사투리 때문에 자주 부딪히던 서울 남자친구와 결국 크게 다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서울로 간 뒤 말투부터 바뀌었습니다

두 사람은 경상도 출신이었습니다. 대학은 달랐지만 고향은 가까웠고, 주말이면 바닷가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그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그녀가 추워하면 말없이 겉옷을 벗어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밥 묵으러 가자” 하고 앞장섰습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런 말투를 좋아했습니다.

“니는 말이 너무 짧다.”

그녀가 웃으면 그는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길게 말한다고 마음이 더 커지나.”

그 말에 그녀는 괜히 얼굴을 돌렸습니다. 바닷바람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부끄러워서였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서울로 취직했습니다.

처음 몇 달은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회의실의 말투, 점심시간의 대화, 지하철 안내 방송, 카페에서 주문하는 소리까지 전부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입을 열 때마다 사람들이 경상도 억양을 알아차리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장난처럼 말했습니다.

“말투 되게 세다. 화난 줄 알았어.”

그날 이후 그녀는 말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밥 묵었나?” 대신 “밥 먹었어?”
“와 그라노?” 대신 “왜 그래?”
“퍼뜩 온나” 대신 “빨리 와.”

전화 속 그녀의 말투도 달라졌습니다. 그는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니 요새 말투 와 그리 어색하노?”

그녀는 웃으며 넘겼습니다.

“서울에서 일하니까 좀 고쳐야지. 계속 사투리 쓰면 촌스러워 보이잖아.”

그 말이 문제였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습니다.

“촌스럽나, 내 말이?”

“그런 뜻 아니야.”

“근데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

그녀는 그때 사과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자기 말을 부끄러워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자주 다퉜습니다.

서울 남자의 말투가 세련돼 보였던 시절

회사 근처에는 자주 가는 카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서울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말이 부드러웠고, 문장 끝을 가볍게 올렸고, 농담도 세련되게 했습니다. 그녀가 애써 고치려는 말투를 그는 처음부터 가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서울 온 지 얼마 안 됐죠?”

그가 물었습니다.

“티 나요?”

“조금요. 근데 귀여워요.”

그녀는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고향에서는 너무 평범했던 자신이, 서울에서는 낯선 사람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말해도 되는데, 너무 애쓰는 것 같아요.”

그 말이 다정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다정함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였습니다.

그녀가 무심코 경상도 억양을 쓰면 그는 웃었습니다.

“방금 사투리 나왔어요.”

처음엔 장난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몇 번 반복되자 그녀는 더 조심하게 됐습니다. 그 앞에서는 더 서울말처럼 말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고향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우리 너무 달라졌어.”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물었습니다.

“서울 가더니 내가 부끄러워졌나?”

“그런 말 하지 마.”

“아니면 와 나를 피하는데.”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서울말도 모두 표준어는 아니었습니다

서울 남자와의 만남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어색한 서울말을 귀엽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곤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너는 그냥 네 말투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그게 무슨 뜻이야?”
“억지로 서울말 쓰는 거 좀 어색해.”

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버리려 했던 말투도, 새로 가지려 했던 말투도 모두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며칠 뒤 그는 이별을 말했습니다.

“우리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녀는 그 순간 이상하게 화보다 허탈함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촌스럽다고 밀어내고, 서울말을 닮으려고 애썼는데, 결국 어느 쪽에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혼자 방에 앉아 있다가 그녀는 그 서울 남자가 자주 쓰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나 지금 바뻐.”
“그거 할려구 했는데.”
“삼춘이 그러시더라.”
“오늘은 겨란말이 시켜도 돼?”
“너만 생각하면 자꾸 생각나걸랑.”

그녀는 처음엔 몰랐습니다. 그냥 서울 사람이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검색을 하다 보니 그런 말들 가운데 표준어와 다른 서울 사투리적 표현으로 설명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애기, 챙피하다, 삼춘, 겨란, 할려구, 먹구, 바뻐, 창꼬, 교꽈서.

그녀는 한참 화면을 보다가 혼잣말을 했습니다.

“지도 사투리 쓰면서… 누구더러 촌스럽대.”

그 말이 나오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습니다. 서울 남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버린 말, 자신이 먼저 부끄럽다고 했던 사람, 자신이 먼저 밀어낸 고향의 억양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서울 사투리 예시, 서울 사람도 모르게 쓰는 말들

서울 사투리는 경상도 사투리처럼 억양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표준어라고 생각하며 그냥 씁니다. 하지만 서울말 안에도 표준어와 다른 발음이나 표현이 있습니다.

서울 사투리처럼 쓰이는 말 표준어 설명
애기 아기 ‘아’가 ‘애’처럼 나는 전설 모음화 예로 자주 소개됩니다.
챙피하다 창피하다 서울말 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발음 변화 예입니다.
삼춘 삼촌 ‘ㅗ’가 ‘ㅜ’처럼 나는 말로 서울·경기권 말투에서 자주 거론됩니다.
겨란 계란 이중모음이 단순하게 발음되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할려구 하려고 ‘-고’가 ‘-구’처럼 들리고 ㄹ이 덧붙는 형태입니다.
먹구 먹고 일상 대화에서 부드럽게 들리지만 표준 표기와는 다릅니다.
바뻐 바빠 ‘ㅏ’가 ‘ㅓ’처럼 나는 예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창꼬 창고 된소리처럼 강하게 나는 경음화 예입니다.
교꽈서 교과서 단어 중간 소리가 세게 나는 사례입니다.
걸랑요 거든요, 그러거든요 계열 서울 토박이 말투나 드라마 속 서울말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물론 위 표현을 모든 서울 사람이 똑같이 쓰는 것은 아닙니다. 세대와 지역, 개인 말버릇에 따라 다릅니다. 또 어떤 표현은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널리 쓰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무조건 서울 사투리다”라고 단정하기보다, “표준어와 다른 서울말의 예로 자주 언급되는 표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파트 거실에서 휴대폰을 보던 여성이 TV의 서울 사투리 예시 방송을 보고 놀라는 모습
그녀는 서울 남자가 쓰던 말 속에도 표준어와 다른 서울 사투리적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서울말도 사투리 아이가” 그 말에 다시 싸웠습니다

그녀가 바닷가에서 전화를 건 날, 그는 정말로 달려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그녀를 찾았습니다.

“춥다. 와 여기 혼자 있노.”

그녀는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나 걱정해서 온 거 아니잖아.”
“니가 전화했잖아.”
“너 생각나서 한 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는 그녀를 빤히 보다가 낮게 웃었습니다.

“그래. 사투리 들으러 전화했다며.”

그 말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울고 싶었지만 울기 싫었습니다.

한참 뒤 그가 말했습니다.

“서울 사람, 서울말이 그렇게 좋더나.”
“또 그 얘기야?”
“니가 먼저 그랬잖아. 사투리 촌스럽다고.”

그녀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힘들었어. 서울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랬다고.”
“그래서 나까지 버렸나.”

그 말은 아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나는 척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니 그거 아나. 서울말도 다 표준어 아니다. 서울 사투리도 있다.”

그녀는 바로 쏘아붙였습니다.

“서울 사투리가 어딨어. 서울말이 표준어잖아.”
“서울말을 바탕으로 표준어를 정한 거지, 서울 사람이 하는 말이 다 표준어는 아니란다.”
“네가 뭘 안다고.”
“찾아봐라. 애기, 챙피하다, 삼춘, 겨란, 할려구. 그런 말도 표준어하고 다르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이미 며칠 전 혼자 찾아본 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챘습니다.

“알고 있었네.”

그녀는 결국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몰랐어. 진짜 몰랐어.”

그 순간 파도 소리가 크게 밀려왔습니다. 둘 사이에 남아 있던 말들도 같이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도, 서울 사투리도 결국 사람의 말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는 억양이 강하다는 이유로 거칠게 들린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는 특정 단어만 흉내 내며 장난처럼 소비되기도 합니다. 충청도 사투리는 느리다는 이미지로 단순화되고, 제주도 사투리는 알아듣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국적인 말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투리는 웃기려고 만든 말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밥상에서 쓰던 말이고, 할머니가 손주를 부르던 말이며, 연인이 다투다 결국 마음을 풀 때 흘러나오는 말입니다.

지역 대표적인 느낌 예시 표현 특징
서울·경기 표준어와 가까워 잘 드러나지 않음 애기, 삼춘, 겨란, 먹구 서울말도 모두 표준어는 아니며, 표준어와 다른 서울 사투리적 표현이 있습니다.
경상도 짧고 강하며 억양이 뚜렷함 퍼뜩, 단디, 와 그라노, 무다이 말의 높낮이와 압축적인 표현이 살아 있어 무뚝뚝하지만 정이 담긴 말이 많습니다.
전라도 구수하고 말맛이 차짐 아따, 오메, 거시기, 허벌나게 말끝의 리듬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이 풍부합니다.
충청도 느긋하고 돌려 말하는 느낌 그랬슈, 그런 겨, 어제 오지 그랬슈 느린 말투처럼 들리지만 속뜻을 에둘러 전하는 재치가 있습니다.
제주도 고유성이 강하고 낯선 어휘가 많음 혼저옵서예, 감저, 지슬 다른 지역 사람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독자적인 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에는 짧고 강한 말맛이 있습니다. “퍼뜩 온나”, “단디 챙기라”, “와 그라노” 같은 말에는 재촉과 걱정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의 실제 생활어가 궁금하다면 경상도 사투리 뜻 정리에서 여러 표현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는 말끝의 정과 리듬이 살아 있습니다. “아따”, “오메”, “허벌나게”, “거시기” 같은 말은 맥락에 따라 웃음도 되고, 서운함도 되고, 친근함도 됩니다.

충청도 사투리는 느린 말투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돌려 말하는 재치와 은근한 유머가 있습니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 같은 말에는 꾸짖음보다 웃음이 먼저 섞입니다.

제주도 사투리는 한 지역의 오래된 생활과 역사가 깊이 남은 말입니다. 단어 하나만 들어도 다른 지역 사람이 쉽게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고유성이 강합니다.

서울 사투리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사투리일 수 있습니다. 표준어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투리라고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흥미롭습니다. 사투리는 멀리 있는 지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표준어라고 믿고 쓰던 말 가까이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제야 고향의 말을 다시 들었습니다

바닷가 벤치에 나란히 앉았을 때,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예전처럼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먼저 말했습니다.

“나, 네 말투가 싫었던 게 아니야.”

그는 바다만 바라봤습니다.

“그럼 뭐가 싫었는데.”

“내가 들킬까 봐 무서웠어. 서울에서 나만 촌스러운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니 말도 버리고, 나도 버렸나.”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미안해.”
그는 한참 뒤에야 대답했습니다.
“나는 니가 서울말 써서 싫었던 게 아니다.”
“그럼?”
“니가 니 말을 부끄러워하는 게 싫었다.”

그 말에 그녀는 결국 울었습니다.

바닷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파도 소리와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거 들고 다녀?”
“니가 맨날 휴지 없다 했잖아.”

그 말에 그녀는 울다가 웃었습니다.

손수건을 받아드는 순간, 그의 손끝이 그녀의 손에 닿았습니다. 둘 다 바로 손을 빼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당연하게 잡을 수는 없었지만, 완전히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손끝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 말없이 손목을 잡아주던 손, 겨울 바닷가에서 차갑다며 제 주머니 속으로 끌어 넣던 손이었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손끝 하나에도 사람이 남아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녀가 낮게 말했습니다.

“나 이제 서울말 흉내 안 낼래.”

그가 대답했습니다.

“서울말 써도 된다. 경상도 말 써도 되고. 니 말이면 된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사투리가 사라지는 이유

사투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학교에서는 표준어를 중심으로 교육합니다. 방송과 뉴스, 공공문서도 표준어를 기준으로 합니다. 사람들은 취업이나 사회생활을 위해 말투를 고치려고 합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지역 말의 경계도 흐려졌습니다.

또 사투리를 쓰면 촌스럽다거나 거칠다거나 무식해 보인다는 편견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말투를 감추고, 고치고, 지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투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 몇 개가 사라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 말을 쓰던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도 함께 희미해지는 일입니다.

“정구지 찌짐 묵으러 온나”라는 말에는 부추전 한 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 오는 날 할머니 집 부엌, 프라이팬 소리, 가족을 불러 앉히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정구지 이야기는 정구지 뜻과 정구지 찌짐 이야기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소풀 베어온나”라는 말에도 부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물가 옆 작은 밭, 어머니의 심부름, 몰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던 핑계까지 담길 수 있습니다. 소풀 이야기는 소풀 뜻과 부추 사투리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찌짐 먹을래?”라는 말도 단순히 부침개를 먹자는 뜻만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끝난 줄 알았던 사랑을 다시 마주 앉힌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찌짐 이야기는 찌짐 뜻과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마주 앉힌 파전 이야기에서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 시골집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지역 사투리를 젊은 남녀가 휴대폰에 기록하는 모습
사투리를 기록한다는 것은 단어만 남기는 일이 아니라, 그 말을 쓰던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함께 남기는 일입니다.

사투리를 그냥 사라지게 두어도 될까

사투리는 억지로 모두가 써야 하는 말은 아닙니다. 표준어도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정확하게 소통하려면 공통의 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표준어가 필요하다고 해서 사투리가 부끄러운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투리는 고쳐야 할 흠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지역의 역사와 정서가 담긴 언어이고, 가족의 목소리가 남아 있는 말입니다. 어떤 말은 사전보다 밥상에서 더 잘 설명되고, 어떤 말은 논문보다 할머니의 한마디로 더 오래 이해됩니다.

그래서 사투리를 지키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할머니가 낯선 말을 하시면 물어보는 것. 부모님이 쓰던 말을 메모장에 적어두는 것. 아이들에게 “그 말은 이런 뜻이야” 하고 알려주는 것. 사투리를 웃음거리로만 쓰지 않는 것. 어느 지역 말을 낮추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이 됩니다.

그날 두 사람은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바닷가에서 돌아오는 길, 그는 차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 익숙해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습니다. 그녀는 잠깐 멈춰 섰습니다.

“나 아직 너한테 미안한 게 많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화난 게 많다.”
“그럼 우리 안 되는 거야?”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차 문을 닫고 그녀 앞에 섰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쉽게 못 하겠다.”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은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다시 사랑하자는 말보다, 당장 오늘 무너지지 않게 데려다주겠다는 말이 더 깊게 들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차에 타기 전, 그녀가 작게 말했습니다.

“고맙다.”

그는 피식 웃었습니다.

“서울말 다 어디 갔노.”

그녀도 웃었습니다.

“내 말이 이거다. 와.”

그가 그녀를 바라봤습니다. 그 말 하나에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조금 풀렸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녀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손이 닿았습니다. 예전처럼 뜨겁고 겁 없던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한 번 잃어본 사람들이 다시 만질 때의 조심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습니다.

그는 낮게 말했습니다.

“춥나.”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이제 좀 괜찮다.”

사투리 뜻을 찾는 분들에게

정리하면, 사투리특정 지역에서 쓰이는 말과 말투입니다. 표준어와 다른 단어, 발음, 억양, 표현이 사투리에 포함됩니다.

사투리는 지방 사람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서울말 안에도 표준어와 다른 표현이 있을 수 있고, 경상도·전라도·충청도·제주도에도 각자의 말맛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투리를 낮춰 보지 않는 태도입니다. 누군가의 사투리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고, 가족의 말이며, 사랑하던 사람의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그녀가 뒤늦게 알게 된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서울말을 따라 한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고 덜 세련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쓰느냐보다, 그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음에 누군가의 사투리가 귀에 들어온다면, 웃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누구의 목소리를 닮았을까. 그리고 나는 내 말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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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확인: 이 글은 사투리와 표준어의 관계, 서울 방언의 존재, 지역 방언의 의미를 바탕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서울말은 표준어의 바탕이 되었지만 서울 사람이 쓰는 모든 말이 곧 표준어는 아닙니다. 서울 사투리로 제시한 표현은 연구 자료와 언론 보도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를 참고했으며, 지역과 세대에 따라 쓰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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