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가 나에게만 친절한 이유, 무뚝뚝한 그 사람이 제 앞에서만 달라졌습니다

“한 대리님이 누구 일 때문에 퇴근 시간까지 미루는 사람은 아닌데.”

옆자리 지연 씨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저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모르는 척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지, 저에게만 어떻게 다른지 이미 조금씩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로 입사 4년 차가 된 상품기획팀 직원입니다.

생활용품 회사에서 계절별 신제품을 기획하고, 용기 디자인과 향 조합을 고르고, 출시 전 품평회까지 챙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품 하나가 매장에 놓이기까지 수십 번 문구가 바뀌고, 같은 향을 몇 번이나 다시 맡아야 하는 일이라 정신없이 바쁜 날도 많았습니다.

그 사람은 같은 층 품질보증팀의 한재욱 대리님이었습니다.

저보다 한 살 많고 입사는 1년 빨랐습니다.

한 대리님은 회사에서 친절한 사람으로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무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필요한 말만 했고, 부탁을 받으면 감정 없이 처리했으며, 회의가 끝나면 누구보다 먼저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직원이 “이것 좀 같이 봐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는 대체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파일 보내주세요.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투가 차갑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사람이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괜한 농담도 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친한 척하지 않는 사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제 앞에서만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샘플 준비실에서 처음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봄 신제품으로 저자극 핸드크림 3종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출시 전 내부 품평회를 앞두고 저는 하루 종일 샘플 준비실을 오갔습니다. 향별 시제품을 분류하고, 테스트 카드와 설문지를 맞추고, 품평용 상자를 회의실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날 오후, 공급업체에서 도착한 샘플 박스가 생각보다 무거웠습니다.

저는 포장 테이프를 커터칼로 자르다가 손가락 끝을 살짝 베었습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피가 조금 나서 급히 밴드를 붙였습니다.

마침 품질 확인표를 들고 준비실로 들어오던 한 대리님이 제 손을 봤습니다.

“다치셨어요?”
“아, 괜찮아요. 종이 베인 것보다도 작아요.”

저는 웃으며 박스를 다시 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대리님이 제 앞에 놓인 큰 상자를 먼저 들어 작업대 위에 올렸습니다.

“제가 할게요.”
“아니에요. 이거 제 일이에요.”
“손가락에 밴드 붙이고 무거운 박스까지 들 필요는 없잖아요.”

그는 상자 뚜껑을 열어 향별 샘플 수량을 확인하고, 제가 적어둔 분류표대로 제품을 차례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바로 십 분 전, 생산관리팀 직원이 그에게 테스트 수치표를 같이 봐달라고 했을 때 그는 “메일로 보내주시면 확인하겠습니다”라고 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제 샘플 박스 앞에서는 셔츠 소매까지 걷고 서 있었습니다.

“대리님, 진짜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것과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 건 다른 얘기입니다.”

그 말에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제 쪽을 보지 않고 제품 뚜껑만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 끝이 아주 조금 붉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준비실에서 나온 뒤에도, 이상하게 그 문장이 계속 머리에 남았습니다.

제가 부탁한 적도 없는데, 왜 굳이 도와주고 싶었을까.

샘플 제작 전처리실에서 손가락에 밴드를 붙인 여성 직원 대신 핸드크림 샘플 박스를 옮겨주는 남성 동료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움직인 사람은, 이상하게 늘 한 대리님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은 메일로 받던 사람이 제 일은 직접 보러 왔습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습니다.

품질보증팀에서는 출시 전 시제품의 향 지속성, 용기 누액 여부, 라벨 부착 상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원래라면 품질보증팀에서 검토한 결과표만 저희 팀으로 보내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대리님은 자꾸 제 자리까지 직접 왔습니다.

“민서 씨, 이 향은 시간 지나면 끝에 알코올 향이 조금 남습니다. 기획 의도랑 맞는지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료로 보내주셔도 되는데요.”
“향은 자료로 설명하기 어렵잖아요.”

그 말은 맞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제품을 담당하는 다른 기획자에게는 결과표만 메일로 보냈다는 사실을 저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느 오후에는 그가 테스트용 샘플 세 개를 작은 트레이에 담아 제 자리로 가져왔습니다.

“오늘 오후에 품평 다시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향 세 개 중에 하나를 줄여야 해서요.”

그는 트레이 끝에 놓인 작은 생수병과 무향 티슈를 가리켰습니다.

“향 여러 번 맡으면 머리 아프다고 하셨죠. 중간에 이것도 같이 쓰세요.”

저는 놀라 그를 봤습니다.

그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했습니다.

며칠 전 회의 중, 제가 동료에게 “향을 계속 맡았더니 머리가 띵하다”고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대리님과 직접 대화하던 순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기억하셨어요?”

“듣긴 했으니까요.”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저는 그날 오후 제품 향보다 그 사람의 말투를 더 오래 기억했습니다.

옆자리 지연 씨가 제가 받은 트레이를 보더니 작게 웃었습니다.

“품질보증팀이 원래 이렇게 세심하게 서비스까지 해줘?”
“제품 때문에 그런가 보지.”

제가 애써 대답하자 지연 씨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던데. 아까 내 샘플은 결과표만 던져주고 갔어.”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 애써 우연이라고 여겼던 행동들이 한꺼번에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실패한 품평회 뒤, 그는 위로보다 먼저 제 일을 다시 붙잡아주었습니다

신제품 1차 품평회 날은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했던 향이 임원 평가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습니다. “향이 너무 평범하다”, “기억에 남지 않는다”, “굳이 이 제품을 다시 살 이유가 약하다”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회의실에서는 표정 관리를 했습니다.

팀장님이 “보완해서 다시 가져오면 된다”고 말했을 때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난 뒤 혼자 샘플 준비실로 돌아오자 갑자기 힘이 빠졌습니다.

제가 고른 향이었습니다.

몇 주 동안 수정했고, 협력업체와 여러 번 조정했고, 누구보다 괜찮다고 믿었던 제품이었습니다.

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시제품 라벨을 하나씩 떼어내며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그는 위로 대신 다시 시작할 자료를 들고 왔습니다

그때 문이 열렸습니다.

한 대리님이 들어왔습니다.

“여기 계실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애써 웃었습니다.

“제품이 망했으니까, 다시 처음부터 해야죠.”

그는 바로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괜찮다거나, 다음에는 잘될 거라거나, 임원들이 보는 눈이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들고 온 서류철을 제 앞에 펼쳤습니다.

“품질 데이터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평가가 낮았던 향은 지속 시간보다 첫 향의 인상이 약한 쪽이 문제였습니다. 베이스를 바꾸지 않고 첫 향만 조정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서류를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이거 언제 하셨어요?”
“회의 끝나고요.”
“대리님 일도 아니잖아요. 결과표까지만 주시면 되는 거잖아요.”

그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 손에 쥐어진 뜯긴 라벨을 보며 말했습니다.

“민서 씨가 오늘 혼자 여기서 다 엎어버릴 것 같아서요.”

저는 피식 웃었다가, 금방 시선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저 오늘 좀 창피해요. 회의실에서는 괜찮은 척했는데, 사실 많이 속상해요.”

한 대리님은 괜찮다는 말을 서둘러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업대 맞은편에 서서 떨어져 있던 라벨 한 장을 주워 들며 말했습니다.

“그럼 제 앞에서는 괜찮은 척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흩어진 라벨을 모으는 척 손만 움직였고, 그는 제가 진정할 때까지 맞은편에서 조용히 자료를 정리해주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동안 떠오른 것은 평가표보다, 그가 제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샘플 제작 전처리실에서 핸드크림 시제품 옆에 서서 여성 직원에게 수정된 품질 자료를 보여주는 남성 동료
모두가 다음 일정만 이야기하던 날, 그는 제가 속상해하는 마음부터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한 대리님, 원래 네 일 아니면 저렇게 안 남아”

다음 날 오전, 저는 전날 한 대리님이 정리해준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정 기획안을 만들었습니다.

팀장님은 예상보다 빠르게 보완 방향을 정리했다며 다행이라고 했고, 저는 한 대리님이 도와줬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그 사람의 마음을 제 입으로 먼저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알아차렸습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길에 지연 씨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너 한 대리님이랑 뭐 있어?”

저는 순간 걸음을 멈췄습니다.

“뭐가 있어. 같이 프로젝트 하는 거지.”
“프로젝트 하는 건 우리도 똑같아.”

지연 씨는 장난스럽게 말하다가도, 제 표정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근데 한 대리님, 네 일 아니면 저렇게 오래 안 남아. 어제도 퇴근하려고 가방 들고 나왔다가 네가 샘플실 들어가는 거 보고 다시 돌아간 거야.”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저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보다, 다른 사람이 그 차이를 이미 봤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습니다.

회사에서는 아주 작은 일도 금방 이야기가 됩니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두 사람이 자주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말이 생길 수 있고, 한 사람이 유독 다른 한 사람을 챙기면 더 쉽게 눈에 띕니다.

그날 오후 한 대리님이 수정 샘플 결과를 가져왔을 때, 저는 일부러 딱딱하게 말했습니다.

“자료는 메일로 보내주셔도 됩니다.”

그가 서류를 내려놓던 손을 잠시 멈췄습니다.

“제가 불편하게 했습니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지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업무는 업무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정말 필요한 일 외에는 제 자리로 오지 않았습니다.

자료는 메일로 왔고, 테스트 결과는 공용 폴더에 올라왔으며, 제가 샘플실에 혼자 있어도 그는 문 앞을 지나칠 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한 거리였는데, 막상 그가 그대로 물러나자 하루가 이상하게 길어졌습니다.

저는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친절이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그 친절이 사라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최종 품평 날, 그 사람이 없는 자리가 먼저 보였습니다

수정한 핸드크림 시제품의 최종 품평회가 열리던 날, 저는 아침부터 준비실과 회의실을 오갔습니다.

처음 평가에서 지적받았던 향은 첫 인상을 가볍게 바꾸고, 잔향은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보완했습니다. 결과가 어떨지 몰라 긴장이 됐지만, 이번에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품평회가 시작됐습니다.

임원들은 시제품을 차례로 사용해보고 평가표를 작성했습니다. 저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표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한참 뒤, 팀장님이 결과를 들고 웃었습니다.

“이번 수정안으로 갑시다. 향도 좋아졌고, 제품 콘셉트랑도 맞아요.”

회의실 안에서 작게 박수가 나왔습니다.

저는 안도감에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기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팀장님도, 함께 고생한 공급업체 담당자도 아니었습니다.

한 대리님이었습니다.

그가 이 결과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저는 품질보증팀 자리부터 찾았습니다. 그런데 한 대리님은 자리에 없었습니다.

“한 대리님이면 아직 품평실 정리하고 있을 거예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저는 다시 회의실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문을 열자 조금 전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던 품평실은 조용해져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아직 ‘핸드크림 신제품 최종 품평’이라는 제목이 떠 있었고, 긴 테이블 위에는 승인된 제품과 평가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한 대리님은 제품 진열대 앞에서 최종 샘플 수량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대리님.”

그가 돌아봤습니다.

“결과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말투는 평소처럼 정중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그 거리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문을 닫고 그가 서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대리님, 잠깐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평가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네.”

왜 저한테만 그렇게 잘해주세요?

품평실은 조금 전까지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했는데, 지금은 냉방기 소리만 작게 들렸습니다.

화면 아래 진열대에는 조금 전 최종 승인을 받은 핸드크림 세트가 놓여 있었고, 저는 그 제품보다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더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 준비했던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습니다.

먼저 거리를 두자고 한 사람도 저였고, 이제 와서 다시 붙잡으려는 사람도 저였기 때문입니다.

한 대리님이 먼저 말했습니다.

“제가 요즘 조심하는 게 더 편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 더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하지 않았어요.”

그의 표정이 아주 조금 달라졌습니다.

저는 손에 쥔 사원증 줄을 만지작거리며 물었습니다.

“대리님, 왜 저한테만 그렇게 잘해주세요?”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말을 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부탁은 메일로 받으면서 제 샘플은 직접 들고 오고, 제가 힘든 날에는 퇴근하려다가 다시 돌아오고, 제가 거리 두자고 하니까 정말 한 발 물러나고.”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리님은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한 대리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모르는 척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뭘요?”
“민서 씨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보게 되는 거요.”

제 가슴이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작업대 끝에 손을 올린 채 말을 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일은 제가 해야 하는 만큼만 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민서 씨 일은 끝났다고 해도 자꾸 신경이 났습니다. 오늘 결과가 괜찮았는지,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혼자 또 다 떠안고 있는 건 아닌지.”

그가 제 눈을 바라봤습니다.

“좋아해서 그랬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바라고 있던 말이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마음이 너무 빨리 뜨거워졌습니다.

제가 겨우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저만 눈치 없는 사람이었네요.”
“아닙니다. 제가 겁이 많았습니다.”
“무슨 겁이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민서 씨에게는 부담일까 봐요.”

그 말에 저는 며칠 전 제가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업무는 업무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던 말.

그 말을 듣고도 이유를 캐묻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던 사람.

저는 한 걸음 가까이 갔습니다.

“부담이었던 게 아니에요.”

그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소문날까 봐 겁났어요. 그런데 대리님이 정말 멀어지니까, 그게 더 싫었어요.”

그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잠시 뒤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럼 제가 이제는 물러나지 않아도 됩니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대신 저만 모르게 잘해주지는 마세요.”

그가 처음으로 편하게 웃었습니다.

“그럼 알게 해드리겠습니다.”

고백을 들은 뒤, 제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바로 제 손을 잡지 않았습니다.

제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손등이 닿을 만큼만 손을 가까이 두었습니다.

저는 먼저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손에 조심스럽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손을 잡고도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평가표와 제품만 보이던 품평실에서, 그 순간만큼은 그의 손에 들어온 작은 힘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낮게 물었습니다.

“안아도 괜찮습니까?”

저는 대답 대신 한 걸음 더 가까이 갔습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저를 안았습니다.

복도 쪽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리자 우리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방 떨어졌습니다.

짧은 포옹이었지만 저는 충분했습니다.

그 사람이 왜 저에게만 다정했는지,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짐작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핸드크림 신제품 최종 품평실에서 제품 진열대 앞에 서서 손을 맞잡고 서로 바라보는 남녀 직장 동료
제가 왜 저에게만 잘해주느냐고 묻던 날, 그는 더 이상 업무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첫 데이트는 우리가 만든 제품을 사러 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한 대리님은 퇴근 직전에 제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먼저 가시고, 주말에 시간 되시면 제가 저녁 사겠습니다.”

저는 화면을 보며 웃었습니다.

“왜 주말이에요?”

잠시 뒤 답장이 왔습니다.

“회사 사람 아닌 상태로 민서 씨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은 뒤 답했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괜찮아요.”

마침 토요일은 우리가 준비한 핸드크림이 일부 매장에 처음 진열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꽤 떨어진 복합쇼핑몰 1층 생활용품 매장 앞에서 만났습니다.

평일에는 늘 셔츠와 슬랙스 차림으로 보던 한 대리님이 그날은 짙은 회색 니트에 단정한 재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입던 블라우스 대신 허리선이 예쁘게 잡힌 원피스를 골라 입었습니다.

한 대리님은 저를 보자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왜요? 이상해요?”

제가 물으니 그가 바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회사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예뻐서요.”

너무 솔직하게 말해버린 사람이 오히려 더 당황한 얼굴을 해서, 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한 대리님, 회사 밖에서는 말이 좀 더 많아지네요.”
“오늘은 품질 검토하러 온 게 아니니까요.”

우리는 매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진열대 한쪽에 제가 기획하고 그가 검토했던 핸드크림 세 가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실제로 매대 위에 놓인 제품을 보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일정이 갑자기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품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습니다.

“진짜 나왔네요.”
“민서 씨가 끝까지 안 놓아서 나온 겁니다.”

“대리님이 다시 데이터 정리해주지 않았으면 못 나왔어요.”

그는 제 손에 들린 핸드크림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날 제가 다시 돌아간 건 제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제 알아요.”

그 말에 그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늘 주변부터 살피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한참 동안 제 얼굴만 보았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제 손을 먼저 잡았습니다

우리는 제품 하나를 사서 쇼핑몰 밖 작은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해가 진 뒤라 조명이 켜져 있었고, 주말 저녁을 보내는 사람들이 천천히 주변을 오갔습니다.

저는 쇼핑백 안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포장을 열었습니다.

“향 다시 맡아볼래요?”

제가 묻자 한 대리님이 웃었습니다.

“그 향은 너무 많이 맡아서 이제 설명서보다 더 잘 압니다.”
“그럼 어떤 향인데요?”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한데, 오래 남습니다.”

저는 그 말이 제품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손등에 핸드크림을 조금 바르고 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저도 써봐도 됩니까?”

저는 튜브를 건네려다가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직접 가져가세요.”

그가 제 손에 들린 튜브를 받으려다 손가락이 닿았습니다.

이번에는 둘 다 손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튜브 대신 제 손을 천천히 잡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못 하겠지만.”

그가 말했습니다.

“퇴근하고 나면, 제가 먼저 잡아도 됩니까?”

저는 그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습니다.

“저한테만 그러는 거면요.”

그가 웃었습니다.

“민서 씨한테만 그러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눈앞이 따뜻해졌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광장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주변 소리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첫 입맞춤은 오래 망설인 사람답게 조심스러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 승강장 쪽으로 걷다가, 저는 문득 아쉬워 걸음을 늦췄습니다.

한 대리님도 제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늘 즐거웠어요.”

제가 말하자 그가 웃었습니다.

“저는 아직 보내드리기 싫습니다.”

그 말이 너무 솔직해서,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조명이 낮은 화단 옆에 잠깐 멈춰 섰습니다.

그는 여전히 제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한 대리님.”
“네.”

“회사에서는 저한테 잘해주면서도 늘 눈치를 봤죠?”

그가 작게 웃었습니다.

“많이 봤습니다.”
“지금은요?”

그가 제 손을 잡은 채 조금 가까이 왔습니다.

“지금은 민서 씨만 보려고요.”

그는 바로 입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피하지 않는지 먼저 바라봤고, 제가 손을 놓지 않자 그제야 아주 조심스럽게 얼굴을 가까이했습니다.

입술이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습니다.

너무 짧아서 오히려 더 떨렸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인 채 웃었습니다.

그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괜찮습니까?”
“네.”

저는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조심스러워요.”

그가 잠시 멈췄다가 웃었습니다.

“그럼 다시 해도 됩니까?”

이번에는 제가 먼저 한 걸음 가까이 갔습니다.

그의 손이 제 손을 놓지 않은 채 조금 더 단단히 감싸왔고, 두 번째 입맞춤은 처음보다 조금 더 길었습니다.

회사에서 저에게만 다정하던 이유를 확인한 날, 저는 그 사람이 회사 밖에서도 제게만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주말 저녁 쇼핑몰 야외 광장에서 핸드크림 제품을 들고 손을 맞잡은 남녀 직장 동료
회사에서는 숨겨야 했던 마음을, 첫 데이트에서는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여전히 저에게만 조금 달랐습니다

연인이 되었다고 해서 회사에서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대리님은 여전히 다른 직원들에게는 필요한 말만 했고, 회의가 끝나면 빠르게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저에게도 사람들 앞에서는 업무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민서 씨, 품질 결과표 공유드렸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남들이 듣기에는 평범한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공용 메신저 알림 아래에는, 가끔 그가 따로 보낸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늘 점심은 드셨습니까?”
“손가락 상처는 이제 괜찮아요?”
“퇴근하고 잠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다정함이 왜 저에게만 향하는지 몰라 혼자 헷갈렸습니다.

이제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특별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제게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직장 동료가 나에게만 친절하다면 무엇을 봐야 할까요

직장 동료가 나에게만 유난히 잘해준다고 해서 곧바로 호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업무 역할상 더 자주 도울 수도 있고, 단순히 성격상 편한 상대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친절이 반복되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와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업무가 끝난 뒤에도 내 감정과 상황을 챙기려 한다면 관심일 가능성은 조금 더 커집니다.

살펴볼 행동 호감에 가까운 경우 업무상 배려일 수 있는 경우
도움의 차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도움을 나에게만 먼저 제안합니다. 담당 업무상 필요한 범위에서만 도와줍니다.
기억 내가 지나가듯 말한 불편함이나 취향까지 기억합니다. 업무 일정이나 공식 요청사항만 기억합니다.
시간 자기 업무가 끝난 뒤에도 내가 힘든 순간에는 곁에 남습니다. 일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관계도 끝납니다.
거리 조절 내가 부담스러워할 때는 물러나고,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내 반응과 상관없이 친절이나 접근을 계속 이어갑니다.

저의 경우에는 한 대리님의 친절이 단순한 업무 배려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행동을 제게만 반복했고, 제가 힘든 날에는 자기 퇴근 시간을 미루면서까지 제 곁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거리를 두자 이유를 따지기보다 조용히 물러나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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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나에게 다정하던 남자 동료가 어느 순간 갑자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면 좋아하는 남자 동료가 나를 피하는 이유, 갑자기 차가워진 그 사람의 진짜 마음에서 다른 가능성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만 친절했던 이유는 결국 마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 대리님은 처음부터 거창하게 다가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손가락에 밴드를 붙인 제 대신 샘플 상자를 들어준 일, 제가 무심코 했던 말을 기억해 무향 티슈를 챙겨준 일, 품평회가 끝나고 혼자 무너져 있던 제게 다시 시작할 자료를 들고 와준 일.

그때는 그 모든 친절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혼자 여러 번 마음을 접었다 펼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누군가가 나에게만 다르게 대한다는 것은 단순히 잘해준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내가 힘들어지는 순간을 먼저 보고, 내가 물러서면 억지로 따라오지 않고, 그래도 다시 마음을 물었을 때는 도망가지 않고 대답해주는 일입니다.

직장 안에서 시작되는 마음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소문이 걱정될 수도 있고, 혹시 내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다정함을 내게만 반복하고 있다면, 너무 오랫동안 혼자 추측만 하지는 마세요.

저처럼 어느 날은 직접 물어봐도 괜찮습니다.

“왜 저한테만 그렇게 잘해주세요?”

어쩌면 그 대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곁에 머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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