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네 시 십 분, 저는 6층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윤 대리님과 세 번째 눈이 마주쳤습니다.
첫 번째는 엘리베이터 안이었고, 두 번째는 구내식당이었습니다.
두 번까지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 얼굴이 익은 사람과 시선이 닿는 일쯤은 흔하니까요.
그런데 세 번째는 달랐습니다.
저는 회의실 앞에서 발표 시안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안쪽 자리에서 회의 자료를 보고 있었습니다. 분명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제가 유리문 옆에 서자 기다렸다는 듯 시선이 올라왔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번에는 그도 바로 피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짧게, 정말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게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저는 괜히 들고 있던 파일을 가슴 앞에 더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저를 불렀는데도, 제 마음은 아직 그 사람의 눈빛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로 입사 5년 차가 된 회사원입니다.
본관 5층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 홍보자료를 만들고, 사내 캠페인 이미지를 검토하고, 때로는 채용 페이지에 올라갈 직원 인터뷰 콘텐츠도 기획합니다.
윤 대리님은 바로 위층, 6층 인사팀에서 조직문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한 살 많고 입사는 1년 빨랐습니다. 사내 행사나 조직문화 캠페인을 준비할 때면 저희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과 협업할 일도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서로 이름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저 5층과 6층 사이를 오가다가 한두 번쯤 얼굴을 봤을 사람.
처음에는 정말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그 사람이 안에 있는지 먼저 보게 됐습니다.
직장 동료와 눈이 자주 마주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호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눈빛이 반복되고, 그 시선이 나를 불편하게 하기보다 이상하게 기다려진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5층에서 내리기 직전, 그 사람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윤 대리님을 제대로 의식한 건 월요일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였습니다.
저는 출근 시간보다 아슬아슬하게 늦게 도착해 로비를 거의 뛰다시피 지나왔습니다. 한 손에는 사원증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밤새 수정한 캠페인 시안 출력물을 끼고 있었습니다.
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안쪽에 서 있던 남자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타세요.”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숨을 고르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6층 버튼을 눌렀습니다. 저는 바로 아래인 5층 버튼을 눌렀습니다.
출근 시간의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습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텀블러 뚜껑을 열고 있었습니다.
저도 아무렇지 않은 척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벽면에 비친 그의 사원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사팀. 윤도현 대리.
‘바로 위층 사람이었구나.’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췄습니다.
제가 내리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들고 있던 시안 출력물 한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졌습니다.
제가 몸을 숙이기도 전에 그가 먼저 주워주었습니다.
표지에는 아직 외부 공개 전인 사내 캠페인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종이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 문구, 좋네요.”
“보셨어요?”
제가 조금 민망해져 묻자, 그가 웃었습니다.
“떨어진 첫 장만요. 나머지는 안 봤습니다.”
별말도 아닌데, 이상하게 표정이 부드러웠습니다.
저는 출력물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무심코 엘리베이터 안을 돌아봤습니다.
윤 대리님은 이미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살짝 웃었고, 저는 순간 당황해 시선을 내렸습니다.
그날 오전 회의 내내, 이상하게도 떨어뜨린 시안보다 문이 닫히기 전 그의 눈빛이 더 자주 떠올랐습니다.

구내식당 건너편 자리에서도 자꾸 눈이 마주쳤습니다
화요일 점심에는 구내식당에서 윤 대리님을 다시 봤습니다.
저는 같은 팀 직원들과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는 인사팀 사람들과 반대편 긴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팀원이 주말에 본 영화 이야기를 하며 웃었고, 저도 따라 웃다가 무심코 시선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윤 대리님은 젓가락을 들고 있다가, 들킨 사람처럼 물컵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저도 괜히 국을 한 숟갈 떠먹었습니다.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몇 분 뒤, 제가 냅킨을 집으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다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번에는 둘 다 바로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웃을 듯 말 듯한 얼굴로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습니다.
옆자리 동료가 물었습니다.
“왜 혼자 웃어?”
저는 급히 물컵을 들었습니다.
“아니야. 아까 영화 이야기 생각나서.”
그날 점심 이후부터는 제가 더 이상 순수하게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퇴근 직전 자료를 들고 복도를 걷다가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도, 사내 카페 앞을 지나갈 때도 저는 저도 모르게 윤 대리님을 찾았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도 비슷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목요일 오전, 제가 5층 회의실에서 보고를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 끝에 윤 대리님이 서 있었습니다.
인사팀 사람이 굳이 5층 회의실 앞에 있을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제 시선을 느꼈는지 들고 있던 서류를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팀장님께 전달드릴 게 있어서 내려왔습니다.”
“아, 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설명하는 사람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사팀과 함께 맡은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그 주 금요일, 팀장님이 새 협업 업무를 알려주었습니다.
인사팀에서 준비하는 하반기 조직문화 캠페인에 저희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이 참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직원 인터뷰 영상, 사내 포스터, 행사 공간 디자인을 함께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윤 대리님이 이미 노트북을 열어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도 저도 모르는 척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습니다.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에서 오셨죠. 윤도현입니다.”
사원증으로 이미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처음 듣는 사람처럼 웃으며 명함을 받았습니다.
“김서연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명함을 받는 손끝이 아주 잠깐 닿았습니다.
그 순간 윤 대리님이 저를 보았고, 저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회의는 예상보다 길었습니다.
윤 대리님은 조직문화 캠페인 방향을 설명했고, 저는 문구와 비주얼 구성에 대해 의견을 냈습니다. 같은 자료를 보며 문장을 고치고 색상을 맞추다 보니, 처음으로 그 사람과 한 시간 넘게 한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업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너무 자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제가 의견을 말할 때면 그는 노트북보다 제 얼굴을 오래 보았고, 다른 직원이 발언할 때도 가끔 시선이 제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제가 시안 파일을 넘기다가 실수로 이전 버전을 화면에 띄웠습니다.
제가 당황해 마우스를 움직이자 윤 대리님이 작게 말했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지금 문구도 괜찮은데요.”
그 말이 실수를 덮어주려는 배려라는 걸 알았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그가 제게만 따로 물었습니다.
“오늘 많이 긴장하셨습니까?”
“티 났어요?”
“조금요.”
“회의 때문에요?”
제가 장난처럼 되묻자, 그는 대답 대신 아주 잠깐 웃었습니다.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저만 그 회의가 신경 쓰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업무보다 조금 더 오래 5층에 머물렀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윤 대리님이 5층으로 내려올 이유는 충분해졌습니다.
포스터 문구 확인, 행사 동선 체크, 인터뷰 촬영 일정 조율, 배너 출력본 검토.
모두 업무였습니다.
그런데 업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는 필요한 자료를 전달한 뒤에도 바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제 자리 맞은편 벽에 붙여둔 시안 보드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습니다.
“이 문구는 서연 씨가 쓰신 거예요?”
그가 처음으로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대리님이라는 호칭 없이, 서연 씨.
그 짧은 부름에 제가 먼저 긴장했습니다.
“네. 너무 딱딱한가요?”
“아니요. 따뜻해서 좋습니다.”
그는 시안 보드를 보는 척했지만, 말끝에는 분명 다른 마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제가 촬영 장소 답사를 나갔다가 늦게 돌아왔습니다.
제 자리 위에는 윤 대리님이 검토한 출력 교정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맨 위에 작은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4페이지는 오전에 말씀하신 문장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 표현이 더 서연 씨답습니다. – 윤도현’
저는 ‘서연 씨답습니다’라는 말을 한참 보고 있었습니다.
업무 메모인데도 이상하게 개인적인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퇴근 무렵, 제가 먼저 메신저를 보냈습니다.
“교정지 봤습니다. 그런데 제 문장이 어떤데요?”
읽음 표시가 뜬 뒤 한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습니다.
“따뜻합니다. 그래서 자꾸 읽게 됩니다.”
저는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둔 채 한참 답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날부터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전처럼 모른 척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먼저 찾는다는 것도, 그가 5층에 내려오면 제 자리부터 바라본다는 것도 둘 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둘만 남은 다목적홀에서 그가 제 팔을 붙잡았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세 주쯤 지난 금요일, 조직문화 캠페인 본행사가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습니다.
1층 다목적홀에는 안내 배너와 인터뷰 부스가 설치돼 있었고, 직원들은 점심시간마다 들러 사진을 찍거나 메시지 카드를 남겼습니다.
저는 행사장 한쪽에서 디자인 출력물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했고, 윤 대리님은 참가자 명단과 진행 시간을 계속 점검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상하게 시선은 자꾸 닿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를 찾듯 고개를 들면, 윤 대리님이 먼저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행사 진행자가 인터뷰 시작을 알리는 바람에 제가 급히 부스 뒤로 뛰어가야 했습니다. 지나가는 순간 윤 대리님이 낮게 말했습니다.
“천천히 가세요. 넘어집니다.”
저는 걸음을 늦추지도 못한 채 뒤돌아 웃었습니다.
“걱정돼요?”
그가 잠깐 말을 잃었습니다.
“네. 걱정됩니다.”
행사 소음 속에서 나온 말인데도, 저는 그 말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행사장에 둘만 남았습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야 행사가 끝났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먼저 올라가거나 퇴근했고, 다목적홀에는 저와 윤 대리님만 남아 현수막과 안내판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무대 옆에 남아 있던 배너 거치대를 접어 들고 아래로 내려오려 했습니다.
“무거워요. 제가 들게요.”
윤 대리님이 바로 제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괜찮아요. 이것만 옮기면 끝나요.”
제가 한 걸음 내려서는 순간, 구두 굽이 무대 턱에 살짝 걸렸습니다.
몸이 흔들리자 윤 대리님이 재빨리 제 팔을 받쳐주었습니다.
저는 바로 균형을 찾았지만, 그가 너무 가까이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도 곧바로 물러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런데도 그의 손은 잠깐 제 팔 곁에 머물렀고, 저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지 못했습니다.
다목적홀의 조명은 절반만 켜져 있었고, 정리하다 만 행사 카드들이 바닥에 몇 장 흩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가득했던 공간이 갑자기 너무 조용해졌습니다.
그가 천천히 손을 놓으며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아니요.”
저는 제 팔에 남아 있는 그의 손 온기를 의식하며 대답했습니다.
“안 잡아주셨으면 더 놀랐을 것 같아요.”
그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이번에는 둘 다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식당 건너편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저를 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잠깐 깨물었습니다.
제가 먼저 웃었습니다.
“윤 대리님.”
“네.”
“요즘 저 자주 보고 있는 거 알아요.”
그는 숨을 짧게 들이쉬었습니다.
“많이 티 났습니까?”
“이제는요.”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테이프 조각을 괜히 접었다 폈습니다.
“죄송합니다. 불편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누가 불편하다고 했어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더 하면 무언가가 시작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이 시작된 뒤 같았습니다.

옥상 휴게정원에서 그는 처음으로 솔직해졌습니다
행사 물품을 창고에 넣고 나오자 밤 여덟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당장 퇴근해도 됐지만, 둘 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윤 대리님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잠깐 바람 쐬고 가실래요?”
회사 건물 옥상에는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종종 이용하는 작은 휴게정원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시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화단 옆 나무 벤치에 앉자 멀리 도로 불빛과 사무실 건물 창문이 내려다보였습니다. 바람이 세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던 몸이 조금 식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윤 대리님은 제 옆에 앉지 않고, 벤치 끝에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습니다.
그 거리가 그 사람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먼저 말했습니다.
“저한테 할 말 있으셨던 거 아니에요?”
그는 한참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착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뭘요?”
“서연 씨랑 자꾸 눈이 마주치는 거요.”
제 이름이 그의 입에서 다시 나오자, 심장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그는 조금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식당에서 마주친 것도, 회의실 앞에서 마주친 것도 우연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먼저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5층에 내려갈 일이 생기면 괜히 하루가 괜찮아졌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그날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행사 준비하면서는… 제가 너무 티 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가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멈추기가 어렵더군요.”
바람이 머리카락을 조금 흐트러뜨렸습니다.
저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다가 작게 웃었습니다.
“저도 멈추기 어려웠어요.”
그가 제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습니다.
“저도 엘리베이터 문 열리면 윤 대리님 있는지 먼저 봤어요. 점심시간에는 인사팀 자리부터 찾았고요. 회의 때는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도 자꾸 대리님 쪽을 봤어요.”
그가 처음으로 제 마음을 물었습니다
그는 저를 바라보다가 아주 낮게 물었습니다.
“그럼 제가 조금 더 솔직해져도 됩니까?”
저는 대답 대신 그의 눈을 바라봤습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좋아합니다. 생각보다 많이요.”
이미 짐작하고 있던 말인데도, 막상 그의 입으로 듣자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웃으려다가 괜히 눈가가 뜨거워져 잠깐 고개를 숙였습니다.
“왜 이제 말해요?”
“회사에서 자꾸 마주치니까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괜히 제가 먼저 선을 넘었다가 서연 씨가 불편해질까 봐요.”
그 사람이 끝까지 제 불편함부터 걱정하는 것이 이상하게 좋았습니다.
저는 벤치 위에 올려둔 손을 조금 움직였습니다.
그의 손과 제 손 사이에 손가락 두 마디쯤의 거리가 남았습니다.
그가 그 작은 움직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잡아도 될까요?”
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손이 제 손 위로 아주 조심스럽게 포개졌습니다.
처음 닿은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생각보다 많이 떨렸습니다.
저는 손가락을 움직여 그의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그가 짧게 웃었습니다.
“저만 떨리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그래요.”
그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저를 오래 바라봤습니다.
눈이 자주 마주친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가까이 데려올 수 있다는 걸, 저는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으로 회사 밖에서 만난 토요일, 그가 제게 입을 맞췄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사귀자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날 회사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서로 눈이 마주치자 웃기는 했지만 평소처럼 조심스럽게 인사했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여전히 서로의 일이 있었고, 동료들의 시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윤 대리님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내일 회사 사람이 아닌 상태로 만나도 될까요?”
문장을 읽자마자 웃음이 났습니다.
저는 일부러 조금 늦게 답했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만날까요?”
토요일 오후, 우리는 회사에서 두 정거장쯤 떨어진 작은 전시 공간 앞에서 만났습니다.
평일에는 늘 셔츠와 사원증 목걸이 차림으로 보던 윤 대리님이, 그날은 짙은 남색 니트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입던 단정한 옷 대신 조금 더 신경 써 고른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말없이 웃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웃어요?”
“회사에서 뵐 때와 달라서요.”
“별로예요?”
그가 바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너무 예뻐서 잠깐 말을 못 했습니다.”
대놓고 들은 칭찬이 민망해 저는 괜히 가방 끈만 만졌습니다.
전시를 보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서로를 의식했습니다.
그가 작품 설명을 읽을 때면 저는 그의 옆얼굴을 보았고, 제가 진열장 앞에 오래 서 있으면 그는 작품보다 제 표정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그 사실을 눈치채고 물었습니다.
“지금 작품 안 보고 저 보고 있었죠?”
그가 조금도 부정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네.”
“왜요?”
“오늘은 봐도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 말에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온 뒤 우리는 근처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회사 이야기도 했고, 서로 입사 초기에 얼마나 서툴렀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쉬는지도 이야기했습니다.
이상하게 대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산책로 끝에서 그는 더 이상 시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전시 공간 뒤편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늘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던 사람이 그날은 제 옆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습니다.
제가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먼저 잡으시네요.”
그가 웃었습니다.
“회사 밖이니까요.”
“회사 안에서는요?”
“회사에서는 조심하고, 퇴근하고 나면 제가 먼저 기다릴게요.”
그 말이 너무 윤 대리님다워서, 저는 웃으면서 그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습니다.
산책로 끝 작은 계단 앞에서 우리는 잠깐 멈췄습니다.
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가 제 얼굴을 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서연 씨.”
“네.”
“지금도 제가 너무 오래 보고 있습니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이번에는 피하지 않을게요.”
그는 한 걸음 가까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제 손을 잡고 있던 손가락에만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다른 손으로 제 머리카락 끝을 아주 조심스럽게 정리해주었습니다.
제가 물러나지 않자, 그가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했습니다.
입술이 닿기 직전까지도 그는 제 눈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게,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습니다.
그가 한 걸음 물러난 뒤에도 저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며칠 동안 눈만 마주쳐도 먼저 피하던 사람이, 방금 제 앞에서 입을 맞췄다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났습니다.
그가 조금 떨어진 뒤, 민망한 듯 웃었습니다.
“괜찮으세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윤 대리님은 꼭 중요한 순간마다 그 말부터 하네요.”
그도 웃었습니다.
“괜찮으신지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저는 다시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그 말 하나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회사에서 눈이 마주치는 순간도 달라졌습니다
월요일 아침, 다시 출근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사람이 저를 보는지 아닌지 혼자 고민했는데, 이제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윤 대리님이 안쪽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우리는 평소처럼 인사만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게 전부였는데도, 둘 다 웃음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5층에 도착해 제가 내리자 문이 닫히기 직전 다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처음 눈이 마주쳤던 월요일 아침과 똑같은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먼저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아주 작게 웃었습니다.
그날 오후, 윤 대리님은 캠페인 수정안을 들고 5층에 내려왔습니다.
후배들이 곁에 있어 우리는 업무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가 시안 보드 위 수정 문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부분, 이 표현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문구를 보다가 그를 바라봤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남들이 듣기에는 그저 업무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업무보다 먼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요.
직장 동료와 눈이 자주 마주친다면 눈빛 뒤의 행동을 보세요
직장 동료와 눈이 자주 마주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같은 엘리베이터와 식당을 이용하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습니다.
다만 눈맞춤 뒤에 행동이 따라온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눈맞춤만 반복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윤 대리님은 제가 있는 5층에 내려올 이유를 만들었고, 제가 말한 문장을 기억했고, 둘만 남은 순간에도 제 마음을 서두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시선과 작은 배려가 함께 반복된다면 직장 동료 호감 신호 15가지와 친절을 구분하는 기준도 함께 확인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상대가 나에게만 유독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직장 동료가 나에게만 친절한 이유에서 상황별 차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좋아하던 남자 동료가 갑자기 차갑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면 좋아하는 남자 동료가 나를 피하는 이유도 함께 읽어보세요.
눈맞춤은 말보다 먼저 시작된 마음이었습니다
윤 대리님과 제가 처음 가까워진 건 거창한 고백이나 특별한 선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잠깐 마주친 눈빛, 구내식당 건너편에서 들켜버린 시선, 5층과 6층을 오가며 만들어낸 사소한 이유들, 행사장을 정리하다 너무 가까워져 더 이상 피하지 못했던 순간.
그렇게 쌓인 작은 장면들이 결국 우리를 서로 앞에 세웠습니다.
누군가와 자꾸 눈이 마주치고, 그 시선이 하루가 끝난 뒤에도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면 무조건 착각이라고 밀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 눈빛 뒤에 나를 향한 배려가 있었는지,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몰아붙이지 않는지,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천천히 보세요.
마음은 생각보다 조용히 시작됩니다.
어쩌면 이미,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