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다정하던 직장 동료, 마지막 촬영 날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첫 촬영 날부터, 김 대리님은 카메라보다 제 쪽을 더 자주 봤습니다.

제가 조명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면, 그제야 긴장을 푼 듯 대사를 이어갔고, 촬영이 끝나면 늘 제 표정을 먼저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담당자라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없는 날에도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고, 업무 메시지 끝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붙이지 않을 것 같은 한 문장이 자꾸 남았습니다.

저도 모르는 척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 사람도 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 대리님은, 한 걸음만 더 가까워지면 될 것 같은 순간마다 먼저 멈췄습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저 회사라서, 우리 둘 다 조심스러운 줄만 알았습니다.

사내 교육 영상 촬영 현장에서 대본을 든 박 대리와 마주 선 김 대리
그때는 촬영이 끝난 뒤에도, 그 사람을 계속 볼 이유가 생기기를 바랐습니다.

회사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물류서비스 회사 인재교육팀 입사 3년 차 박 대리입니다.

그해 봄,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교육 영상을 새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고객 응대와 현장 안전교육 내용을 실제 직원이 출연하는 짧은 영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저는 대본과 촬영 일정을 맡았고, 김 대리님은 고객지원팀에서 출연자로 추천받았습니다.

입사 9년 차 김 대리님은 처음부터 쉽게 가까워질 만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말수가 적었고, 회의에서는 필요한 말만 했습니다. 누군가 농담을 던지면 예의상 한 번 웃고 다시 자료로 시선을 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첫 대본 회의 때도 그는 종이를 한참 넘기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제가 카메라 앞에서 이걸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신입사원 교육 많이 하시잖아요. 카메라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직원 한 명 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렌즈만 보고 말하려니까 더 어색할 것 같습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촬영할 때 제 쪽 보세요. 제가 카메라 옆에 서 있을게요.”

김 대리님은 대본에서 눈을 들어 저를 봤습니다.

“그래도 됩니까?”

“네. 제가 괜찮다고 고개 끄덕여드릴게요.”

그날은 그 말이 별것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첫 촬영 날, 김 대리님은 정말 카메라보다 제 쪽을 더 자주 봤습니다.

제가 조명 옆에서 천천히 하라는 손짓을 하면 말의 속도가 차분해졌고, 장면이 잘 끝났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그제야 어깨에 힘을 풀었습니다.

촬영 보조를 맡은 정 사원이 모니터를 보며 웃었습니다.

“김 대리님, 박 대리님 쪽 볼 때만 표정이 훨씬 자연스러운데요?”

저는 괜히 대본을 정리하는 척 고개를 숙였습니다.

김 대리님은 물병 뚜껑만 만지작거리며 말했습니다.

“담당자가 앞에 있으니까 그렇죠.”

그는 그렇게 넘겼지만, 저는 그날 퇴근길에 그 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던 사람이 제 쪽을 볼 때만 편해진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촬영이 길어질수록, 서로 기다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교육 영상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습니다.

현장에서 쓰는 표현과 본사에서 원하는 표현이 달랐고, 촬영 대본은 매주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장면 하나를 다시 찍기 위해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교육장 불을 켜두는 날도 있었습니다.

김 대리님은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촬영이 길어져 죄송하다고 하면, 그는 늘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박 대리님이 책임지실 일이잖아요. 제대로 하고 끝내는 게 낫습니다.”

어느 날은 일정이 밀려 팀장님에게 지적을 받은 뒤, 제가 빈 회의실에서 혼자 수정 대본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촬영이 끝난 김 대리님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제 맞은편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다시 드리기로 했어요. 끝내고 가야 해요.”

“그러면 현장 표현 들어가는 부분만 제가 먼저 보겠습니다.”

“김 대리님 일도 아닌데요.”

그는 제가 들고 있던 대본을 조심스럽게 받아 넘겼습니다.

“이제는 제 일 같아서요.”

저는 그 말을 듣고도 웃지 못했습니다.

업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업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 말이 다른 뜻처럼 들렸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수정본 때문에 메신저를 주고받았습니다.

3번 영상 후반부 표현 다시 수정했습니다.
내일 보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보내면 김 대리님은 꼭 그날 안에 답을 주었습니다.

지금 확인했습니다. 이번 문장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오늘도 늦게까지 계신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업무 메시지 끝에 붙은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 한 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촬영본을 보내고도 괜히 메신저 창을 다시 열어봤고, 그의 이름 옆에 초록색 접속 표시가 뜨면 이유 없이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촬영이 없는 날 복도에서 마주치면,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편집 확인 있으시죠?”

“네. 오후에 한 번 더 볼 것 같아요.”

“늦어지면 말씀하세요. 제가 확인할 부분은 먼저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업무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 하루 중 가장 사적인 순간들이, 그 업무 이야기 속에서 생기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이미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촬영을 일주일 앞둔 날, 인터뷰 장면 리허설이 있었습니다.

김 대리님은 흰 셔츠 차림으로 촬영 자리에 서 있었고, 저는 무선 마이크를 손에 들고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마이크 먼저 드릴게요. 옷깃에 다신 뒤 소리 확인하겠습니다.”

제가 마이크를 내미는 순간, 김 대리님도 같은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손끝이 아주 잠깐 닿았습니다.

그저 장비를 건네는 일이었는데, 둘 다 바로 손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교육장 밖에서는 누군가 장비 상자를 끄는 소리가 들렸고, 조명 팬이 낮게 돌아가는 소리만 계속 이어졌습니다.

저는 먼저 시선을 내리고 마이크 줄을 그의 손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습니다.

“이제 착용하시면 돼요.”

그는 제 얼굴을 잠깐 보다가 대본 쪽으로 시선을 내렸습니다.

“박 대리님.”

“네.”

“촬영이 끝나면, 이제 이렇게 같이 있을 일도 별로 없겠네요.”

펜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웃으며 넘기려고 했습니다.

“수정이 많이 나오면 계속 보시겠죠.”

그는 웃지 않았습니다.

“수정이 없어도…… 아쉬울 것 같습니다.”

그 말은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는 알았습니다.

그 사람도 저와 같은 쪽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도 아무렇지 않은 척 대본을 넘기며 대답했습니다.

“저도요.”

그 두 글자를 말하고 나니 더 이상 업무 이야기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김 대리님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주 낮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그가 왜 그렇게까지 물러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저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물러나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사내 교육 영상 촬영 전 김 대리에게 무선 마이크를 건네는 박 대리
한 걸음만 더 가까워지면 달라질 것 같았지만, 그는 늘 마지막 순간에 물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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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촬영 날, 모두가 아는 사실을 저만 몰랐습니다

마지막 촬영은 토요일 오전에 잡혀 있었습니다.

평일보다 회사는 조용했고, 임시 스튜디오로 바꿔둔 교육장에는 촬영팀 몇 명과 저, 김 대리님만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유난히 긴장했습니다.

촬영이 정말 끝나면, 더 이상 대본이나 일정표를 핑계로 그 사람을 볼 이유가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지난번 그가 했던 말도 자꾸 떠올랐습니다.

수정이 없어도 아쉬울 것 같습니다.

그 말 뒤에 이어지지 못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저도 묻고 싶었습니다.

오전 촬영이 절반쯤 끝났을 때, 고객지원팀 이 차장이 교육장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김 대리, 여기 있었네. 촬영 잘돼 가?”

김 대리님이 무선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네. 오늘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잘됐네. 그럼 다음 주 가족 초청 행사 때는 마음 편하게 오겠네.”

김 대리님의 표정이 잠깐 멈췄습니다.

저는 대본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그대로 둔 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 차장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을 이었습니다.

“아드님이 아빠 영상 찍는다고 좋아한다면서? 부인도 이번에는 같이 오신다며. 지난번엔 인사를 못 해서 아쉬웠어.”

교육장 안의 소리가 순간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닦는 소리도, 조명 장비가 돌아가는 소리도, 정 사원이 케이블을 접는 소리도 모두 들렸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대본을 들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 사람이 촬영이 끝난 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던 손으로요.

김 대리님이 저를 봤습니다.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피하지도 못한 채 아주 짧게.

그 눈빛 하나로 알았습니다.

제가 들었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박 대리님, 다음 장면 들어갈까요?”

감독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본을 꼭 쥔 채 대답했습니다.

“네. 진행하겠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제가 낯설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제 쪽을 보지 않았습니다

촬영은 끝까지 진행됐습니다.

조금 전까지 김 대리님은 대사를 시작할 때마다 습관처럼 제 쪽을 한 번씩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족 이야기가 나온 뒤부터, 그는 한 번도 제 눈을 찾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만 바라보고, 필요한 대사만 말하고, 컷 소리가 나면 즉시 대본으로 시선을 내렸습니다.

저는 큐 사인을 보내면서도 계속 손끝을 말아쥐었습니다.

그가 결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픈 건, 그가 왜 늘 마지막 순간에 물러났는지 이제야 이해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대사를 시작할 때마다 제 쪽을 찾던 사람이, 그 뒤로는 한 번도 저를 보지 않았습니다.

시선이 마주칠까 봐 피하는 사람처럼, 그는 카메라와 대본만 번갈아 바라봤습니다.

저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도 지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요.

마지막 장면이 끝나자 감독이 박수를 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영상 정말 잘 나왔어요.”

정 사원이 장비를 정리하며 제게 물었습니다.

“박 대리님, 편집본은 월요일에 확인하시면 되죠?”

“네. 월요일에 보겠습니다.”

저는 일부러 평소처럼 대답했습니다.

김 대리님도 촬영팀 전체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 말이 제게는 오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옥상 정원에서, 우리는 끝내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촬영이 끝난 뒤, 저는 장비 정리표를 들고 교육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김 대리님이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손에 들고 있던 사원증 줄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잠시 뒤 그가 아주 낮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올라가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를 따라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옥상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난간 앞에 나란히 섰지만, 서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회사 옥상 정원에서 서로 떨어져 앞을 바라보는 박 대리와 김 대리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날 우리는 옥상 정원에서 끝내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김 대리님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까 들으셨죠.”

한참 뒤에야 대답했습니다.

“네.”

그 한마디를 하고 나니, 목이 꽉 막혔습니다.

김 대리님은 제게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낮은 화단과 난간 사이에 몇 걸음 떨어져 서 있었습니다.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저는 손에 들고 있던 장비 정리표 끝을 꾹 눌렀습니다.

“언제요?”

그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요? 아니면 제가 김 대리님 메시지를 기다리게 되기 전이요?”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멈췄어야 했습니다.”

그 말이 맞아서 더 아팠습니다.

저는 화를 내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제게 변명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김 대리님도…… 힘들었어요?”

물어놓고 바로 후회했습니다.

그가 힘들었다는 대답을 들으면, 저는 그 사람을 미워할 이유 하나를 잃게 될 것 같았습니다.

김 대리님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 침묵이 대답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습니다.

“말하지 마세요.”

그가 저를 바라봤습니다.

“저를 좋아했는지, 지금도 좋아하는지,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들으면 제가 더 못 돌아갈 것 같으니까.”

김 대리님은 주머니에 넣지 못한 손을 천천히 쥐었다가 풀었습니다.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서로가 무슨 말을 삼키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차라리 모르는 것보다 괴로웠습니다.

저는 겨우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몰랐던 동안 좋아했던 마음까지, 전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가 고개를 아주 조금 숙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도 하지 마세요.”

저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김 대리님이 저를 위로하면, 제가 또 그 위로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좋아한 마음까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해가 기울어가는 옥상 정원에서 우리는 한참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손을 뻗지 않았습니다.

김 대리님이 먼저 시선을 내렸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먼저 거리를 두겠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로 무언가가 끝나는 것 같아 숨이 막혔습니다.

저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좋아한다는 말도, 잘 지내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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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저는 한동안 불을 켜지 못했습니다.

소파에 앉아 가방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촬영이 끝나면 김 대리님과 차를 한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제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생각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김 대리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는 저보다 먼저 알았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 사람인지, 어떤 말이 저를 흔들 수 있는지, 그 마음이 어디까지 가면 안 되는지.

그런데도 저를 바라봤고, 제 메시지에 한 줄을 더 붙였고, 촬영이 끝나면 아쉬울 것 같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 사실만 생각하면 화가 났습니다.

마지막 촬영에서 끝내 제 쪽을 보지 못하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옥상 정원에서 제가 말하지 말라고 했을 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표정도 떠올랐습니다.

그가 조금만 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미워하기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다정하게 굴면서도 끝까지 다가오지는 않는 사람.

마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마음을 확인시켜주지는 않는 사람.

제가 돌아설 수 있도록 물러나는 것 같으면서도, 그 물러남마저 마음에 남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말하면 아마 친구는 바로 끊으라고 할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 사람에게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 마음은 제 고민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문이 될 것 같았습니다.

김 대리님이 그날 어떤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는지는 모릅니다.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궁금해졌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기 시작하면, 제가 다시 그 사람에게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더 겁이 났습니다.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아버린 뒤에는, 모르는 척하는 일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아침, 메신저 대신 업무 메일이 왔습니다

월요일 아침 저는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님과 복도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를 보면 원망스러울지, 반가울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메신저부터 확인했습니다.

김 대리님 이름은 어디에도 떠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회사 메일함에, 그가 보낸 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교육 영상 최종 촬영본과 수정 의견 전달드립니다.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항은 정 사원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는 일부러 메신저가 아닌 메일을 선택한 것 같았습니다.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사적인 말이 붙을 자리가 없는 문장으로요.

늦게까지 남아 있지 말라는 말도 없었고, 제 컨디션을 묻는 한 줄도 없었습니다.

그가 정말 선을 긋기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맞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메일 창을 닫는 데는 오래 걸렸습니다.

점심 무렵 복도 끝에서 김 대리님을 봤습니다.

그는 정 사원에게 자료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 짧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박 대리님, 최종본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 말뿐이었습니다.

저도 최대한 평범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확인하겠습니다.”

그가 지나가고 난 뒤, 저는 자리로 돌아와 한동안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저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저보다 훨씬 먼저 마음을 정리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하면 안 되는 일 같았습니다.

저는 그의 메일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촬영본 확인하겠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거기서 손이 멈췄습니다.

앞으로는 업무 외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고 써야 할까요.

앞으로는 제가 담당을 바꾸겠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가 이미 한 걸음 물러났으니, 저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맞을까요.

저는 답장창을 열어둔 채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보내기 버튼은 누르지 못했습니다.

사무실 책상 옆에서 노트북 이메일 화면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박 대리
선을 지켜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음까지 한 번에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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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만의 고민일까요?

좋아하는 직장 동료가 유부남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은 저뿐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회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함께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서로의 성실함을 보고, 힘든 날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다 보면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나에게만 조금 더 조심스럽고, 내가 힘든 날이면 한 번 더 머물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순간이 반복된다면 단순한 동료로만 보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직장 동료의 반복되는 배려가 단순한 친절인지, 나에게만 달라진 호감인지 먼저 살펴보고 싶다면 직장 동료 호감 신호 15가지, 친절과 관심을 구분하는 법에서 행동의 차이를 확인해보세요.

다만 제가 이번에 알게 된 것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 받아도 되는 관계인지 먼저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좋아하는 직장 동료가 유부남이었습니다, 모르고 생긴 마음까지 탓하지 마세요

저는 김 대리님이 결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 이미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가 제 대본을 진지하게 봐주던 모습이 좋았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제 일을 걱정해주던 말이 고마웠고, 수정이 없어도 아쉬울 것 같다는 말에는 분명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시간까지 모두 잘못이었다고 몰아세우면, 감정은 정리되기보다 더 깊이 다칠 수 있습니다.

모르고 생긴 마음까지 자신을 벌주듯 미워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상대가 결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같은 방식의 가까움을 이어가서는 안 됩니다.

상대도 힘들어 보인다고 해서, 책임까지 흐려지게 두지는 마세요

김 대리님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오래 시선을 피하지도, 하고 싶은 말을 삼키지도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괴롭다는 사실이, 결혼한 사람이 먼저 선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는 책임까지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마음이 있다는 걸 알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업무 외 연락을 줄이고, 단둘이 남는 시간을 피하고, 감정을 확인하려는 대화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유독 나에게만 다르게 대하는 직장 동료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경험이 있다면 직장 동료가 나에게만 친절한 이유, 호감인지 배려인지 구분하는 법도 함께 읽어볼 수 있습니다.

고백을 듣는다고 마음이 정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한때는 김 대리님에게 분명한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나를 좋아했는지, 언제부터였는지, 왜 말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면 마음이 조금은 정리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옥상 정원에서 그의 침묵을 마주하고 나니 알 것 같았습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이에서 고백은 해답이 아니라, 더 깊은 미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역시 끝내 말하지 않았습니다.

끝내야 하는 관계에서는 사랑한다는 확인보다, 더 이상 그 마음을 키우지 않겠다는 행동이 먼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계속 마주쳐야 한다면, 마음보다 먼저 방식을 정해보세요

같은 회사에 다니면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서 다음 날부터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자료를 주고받아야 할 수도 있고, 회의에서 마주쳐야 할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인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최소한의 기준을 정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 개인적인 메시지는 보내지 않기
  • 업무 연락은 공식 메신저나 메일로만 주고받기
  • 굳이 단둘이 오래 남게 되는 상황은 만들지 않기
  • 감정이 너무 커져 업무가 힘들다면 담당 조정을 검토하기
  • 상대가 경계를 무시하거나 압박한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도움을 구하기

호감이 생긴 뒤 상대가 갑자기 멀어져 혼란스럽거나, 좋아했던 마음이 부담으로 바뀐 상황이라면 직장 동료가 갑자기 차가워진 이유, 호감이 부담으로 바뀐 순간도 함께 참고해보세요.

좋아하는 마음이 진짜라는 이유만으로, 시작해도 되는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그 답장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김 대리님은 그날 이후 정말 업무 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필요한 인사만 했고, 수정 사항은 정 사원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조심하는 모습이 맞는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는 그 모습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흔들렸습니다.

그가 계속 다정하게 굴었다면 차라리 화를 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변명을 했다면 조금은 미워하기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제가 사실을 안 순간부터 정확히 물러났습니다.

저 역시 그가 다시 다가오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 메일 임시보관함에는 아직도 보내지 못한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촬영본 확인하겠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저는 아직 그 뒤를 쓰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하겠다고 써야 할지, 더는 가까이 오지 말아달라고 써야 할지, 아니면 이미 물러난 사람에게 아무 말도 보태지 않는 편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마음이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좋아한다는 감정과 가까워져도 된다는 선택은 서로 다르다는 것만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도 아직 완벽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이제는 압니다.

누군가의 다정함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보다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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