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선배 다정함 오해는 생각보다 작은 순간에서 시작됐습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같은 부서의 여자 선배였습니다. 성격도 차분했고, 말투도 다정했고, 옷차림도 늘 단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선배의 친절이 제 마음속에서 조금씩 사랑으로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렇다고 제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선배였고, 저는 이제 막 회사 분위기를 익혀가던 입장이었습니다.
괜히 말을 잘못 걸었다가 불편한 후배로 보일까 봐 늘 한 걸음 뒤에서만 바라봤습니다.
가끔 그녀 가까이에 서게 되면 저는 괜히 말이 꼬였습니다.
자료 하나를 건네면서도 손끝이 어색했고, 별것 아닌 질문을 하면서도 목소리가 조금 굳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직 신입이라 긴장해서 그래요. 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한 선배라고 생각해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녀에게 저는 아직 서툰 신입 후배였고, 부담 없이 챙겨줘야 할 같은 부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그 선을 조금씩 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좋은 선배처럼 제 곁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제게 잘해줬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그녀는 제 자리로 와서 조용히 파일을 봐주었습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정리하면 돼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제가 놓친 부분을 하나씩 짚어주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있으면 밥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신입 때는 원래 정신없어요. 너무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마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퇴근 후 술을 사준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둘만 마시는 날도 생겼습니다.
그녀는 제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저는 그녀 앞에서만큼은 조금씩 긴장을 풀었습니다.
어느 날은 퇴근 후 강변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일 이야기를 하다가,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걷기도 했습니다.
그때 강물에 비친 불빛을 보면서 저는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이대로 그녀와 연인처럼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둘만 남은 놀이공원에서 마음이 더 흔들렸습니다
또 한 번은 그녀가 갑자기 놀이공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요즘 답답한데, 주말에 놀이공원이나 갈래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놀이공원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이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당일에 한 명씩 빠졌고, 결국 저와 선배만 남았습니다.
저는 그게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붕 떠 있었습니다.
회전목마 앞에서 사진도 찍고, 긴 줄을 기다리며 아이처럼 웃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몰릴 때마다 그녀는 제 팔꿈치 근처를 가볍게 잡고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려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겠지만, 저는 그때마다 괜히 숨이 막혔습니다.
저는 그 손길 하나에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몇 번 더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라는 말에 혼자 설렜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제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가만히 있어봐요.”
저는 무슨 일인지 몰라 그대로 멈췄습니다.
그녀는 제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더니 낮게 말했습니다.
“눈 감아봐요.”
그 말에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습니다.
왜 눈을 감으라는 걸까.
고작 몇 초였는데, 그 순간 머릿속에는 별생각이 다 스쳤습니다.
혹시 입맞춤을 하려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걸 알면서도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숨이 조금 막혔고, 입술 쪽에 괜히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녀가 작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긴장하지 말고요.”
그 말 때문에 더 긴장됐습니다.
잠시 뒤 그녀가 말했습니다.
“됐어요. 눈 떠요.”
저는 잔뜩 굳은 채 눈을 떴습니다.
그녀는 손끝으로 제 눈썹 근처를 살짝 털어내고 있었습니다.
“여기 뭐 묻어 있었어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정말 눈썹 근처에 묻은 걸 닦아준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짧은 순간에 혼자 너무 멀리 가 있었습니다.
민망해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짧은 손목 잡기도 제게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어떤 날은 함께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사람이 몰렸습니다.
그때 그녀가 제 손을 잡은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밀리지 않게 제 손목을 잠깐 잡았습니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놓고 다시 걸었지만, 저는 그 감각을 오래 기억했습니다.
공원을 걸을 때는 장난처럼 팔짱을 낀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오래 이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금방 팔을 풀고 웃으며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짧은 순간을 며칠이나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별뜻 없는 행동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혹시 선배도 나를 좋아하는 걸까.
혹시 나도 고백할 타이밍만 기다리면 되는 걸까.
저는 점점 그렇게 믿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미 직장 선배 다정함 오해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의 다정함이 호감인지 헷갈린다면, 직장 동료가 나에게만 친절한 이유를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그녀의 다정함은 다른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녀의 다정함이 전부 저를 향한 마음은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녀는 오래 만난 사람과 헤어진 뒤였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무너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있으면 떠난 사람이 생각났고, 집에 들어가면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강변을 걷고, 놀이공원에 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대상이 하필 저였던 이유는, 제가 특별한 남자라서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저는 부담 없는 후배였습니다.
자신을 어렵게 보지만 함부로 다가오지는 않는 사람.
말을 잘 들어주고, 거절하지 않고, 옆에 있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사람.
그녀는 전 애인을 잊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저는 그때 그걸 몰랐습니다.
선배가 애써 웃고 있었다는 것도, 제가 그 웃음을 제 쪽으로만 해석하고 있었다는 것도요.

직장 선배 다정함 오해가 커진 회식이었습니다
그날 회식은 부서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입찰에 성공하면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며칠 동안 다들 긴장한 얼굴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메일 하나가 올 때마다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졌고, 담당자들은 작은 수정 사항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러다 최종 입찰 성공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박수가 나왔고, 팀장님은 그날 저녁 회식을 하자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모두가 마음 놓고 웃는 날이었습니다.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프로젝트가 잘 끝난 기쁨도 있었지만, 그 회식 자리에 그녀가 함께 온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그녀 곁에 앉았습니다.
완전히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 틈을 보다가, 그녀 옆자리가 비었을 때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녀도 그날은 평소보다 많이 웃었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소주잔도 몇 번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이 조금 붉어졌고, 말끝도 조금씩 풀렸습니다.
저는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설렜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사람과 같은 회식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떴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술기운이 올라 있었고, 저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으면 작은 행동도 쉽게 오해가 될 수 있었습니다.
회식이 끝난 뒤, 그녀가 2차를 제안했습니다
1차 회식이 끝났을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택시를 잡거나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팀장님도 먼저 들어가라고 했고, 몇몇 직원들은 “오늘 수고했다”며 서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저도 집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술기운이 꽤 올라온 얼굴이었습니다.
눈은 조금 풀려 있었고, 말투도 평소보다 느렸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맥주 한 잔만 더 마실래요?”
저는 순간 대답을 못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이미 대부분 흩어진 뒤였습니다.
“다른 분들은요?”
제가 묻자 그녀는 손을 가볍게 저었습니다.
“아니요. 그냥… 조금만 더 마시고 싶어서요.”
그때 저는 그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선배가 다른 사람도 아닌 저에게 2차를 제안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먼저 앞섰습니다.
그녀가 2차를 제안한 진짜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날 그녀는 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그런 날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녀는 힘든 날이면 저에게 밥을 먹자고 했고, 가끔은 술을 마시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선배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맥주 한 잔만 더 마실래요?”라는 말도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은 이미 그녀의 모든 행동을 호감 쪽으로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술기운이 오르자 잊고 지냈던 사람이 다시 떠올랐고, 끝났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다시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더 있고 싶었다기보다, 혼자 집에 들어가면 무너질 것 같아서 아무 데나 가고 싶었던 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먼저 앞장섰습니다.
근처에 작은 호프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따라갔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여자 선배와 단둘이 맥주를 마신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오래전부터 혼자 상상만 하던 장면이 갑자기 현실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쪽이 불안했습니다.
이건 데이트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저를 좋아해서 부른 자리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저 술기운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했던 것뿐일 수도 있었습니다.
호프집에서 그녀는 실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호프집 안은 조용했습니다.
테이블 몇 개에만 손님이 있었고, 조명은 낮았습니다.
우리는 구석 자리에 마주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 진짜 힘들었죠.”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맥주잔을 들었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도 잘 끝나서 다행이죠.”
그녀는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맥주가 한 잔, 두 잔 이어지면서 그녀의 말이 조금씩 흐트러졌습니다.
문장이 길어졌다가 끊기고,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 사실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저는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래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은 복잡하게 흔들렸습니다.
솔직히 아주 잠깐은 안도감 같은 감정도 들었습니다.
그녀에게 아직 누군가가 있다면 저는 아무 자리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지금 그녀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게 아니었습니다.
오래 참아온 상처를 술기운에 겨우 꺼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많이 힘들었겠네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더니 혀가 조금 꼬인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별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전 애인에 대한 원망으로 넘어갔고, 다시 자기 탓을 하다가, 또다시 그 사람이 너무했다는 말로 돌아왔습니다.
말은 두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녀는 아직 많이 아팠습니다.
그녀가 울고, 저는 흔들렸지만 선을 지켰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러다 손등으로 눈가를 닦더니, 결국 고개를 숙이고 울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휴지를 건넸습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지금 말 안 해도 돼요.”
그녀는 계속 울면서 떠난 애인을 원망했습니다.
저는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습니다.
괜히 조언을 하거나, 그 사람을 욕하거나, 잊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녀가 울 수 있게 기다렸습니다.

너무 취한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자 그녀는 제대로 앉아 있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말은 더 느려졌고, 잔을 잡는 손도 불안했습니다.
저는 더 마시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마시는 게 좋겠어요.”
그녀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하지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녀도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살짝 휘청거렸습니다.
그때부터는 제 마음보다 걱정이 먼저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단둘이 있다는 설렘은 사라졌고, 이 사람을 안전하게 집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만 남았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집이 어디예요? 택시 태워드릴게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저었습니다.
눈은 거의 풀려 있었고, 목소리도 평소의 그녀 같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저는 순간 말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집에는 가셔야죠. 어디 사세요?”
그녀는 제 말을 제대로 듣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허공을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아무 데나 데리고 가요.”
그 말이 이상하게 제 가슴을 세게 쳤습니다.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만 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술에 취한 얼굴로 아무 데나 데리고 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아주 잠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건 설레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저를 선택한 순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너무 취해 있었고, 많이 아파 있었고, 자기 말을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요. 아무 데나는 안 돼요. 집이 어디예요?”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다시 말했습니다.
“그냥… 아무 데나…”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그녀에게 묻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휴대폰을 꺼내 부서의 다른 여직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망설였지만, 혼자 판단하는 것보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한데요. 혜인 씨가 많이 취하셔서요. 혹시 사는 동네만 알 수 있을까요?”
다행히 그 직원은 그녀가 어느 동네에 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집 주소까지는 아니었지만, 택시를 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위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택시를 잡아 그녀를 조심스럽게 태웠습니다.
택시 안에서 그녀는 창문에 기대 앉았습니다.
가끔 눈을 뜨고 저를 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진짜 아무 데나 가도 되는데…”
그 말이 또 한 번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제가 해야 할 일은 그녀의 말에 설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다음 날 후회하지 않도록 집으로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동네에 도착해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택시가 그녀의 동네 근처에 도착했을 때, 저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이제 집 근처예요. 집이 어디쯤이에요?”
그제야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익숙한 골목과 가로등을 알아본 듯했습니다.
그녀가 조금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아무 데나 데리고 가랬는데… 우리 동네잖아요.”
그 말투가 원망인지, 안도인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골목 안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너무 가까이 붙지도 못하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못한 채 뒤에서 따라갔습니다.
어느 빌라 앞에서 그녀가 멈췄습니다.
비밀번호를 누르려다 몇 번이나 손을 헛디뎠고, 결국 인터폰을 눌렀습니다.
잠시 뒤 문이 열렸고,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놀란 얼굴로 나왔습니다.
“어머, 얘가 왜 이렇게 취했어?”
저는 급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회사 회식이 있었는데 많이 취하셔서요. 혹시 몰라서 데려다드렸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기대면서도 잠깐 저를 돌아봤습니다.
“오늘… 고마워요.”
그 말이 작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잠깐, 제 팔을 붙잡았습니다.
안기듯 기대는 순간이 있었지만, 저는 바로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그녀가 너무 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을 제 마음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저는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좋아하던 사람과 단둘이 맥주를 마셨고, 그녀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마지막에 들은 “고마워요”라는 말과 제 팔을 잠깐 붙잡던 손끝의 감각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모든 장면이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녀는 너무 취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날 그녀가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미 제 마음은 조금 앞서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그녀는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출근길부터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그녀는 어제 일을 기억할까.
어색해하지는 않을까.
혹시 저에게 따로 말을 걸어올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마주친 그녀는 평소와 똑같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평소보다 더 아무렇지 않아 보였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는 짧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어제 호프집에서 울던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어제 실연 이야기를 털어놓고, 집 앞에서 고맙다고 말했던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어제 일이 그녀에게는 별일 아니었나.
아니면 기억을 못 하나.
그것도 아니면 기억하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가.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먼저 어제 괜찮았냐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묻는 순간, 오히려 제가 그 일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 들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녀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회식 2차에서 있었던 일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사라졌습니다.
회식 다음 날 상대가 어색하게 군다면, 회식 다음 날 피하는 여성 동료의 심리도 함께 보면 좋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조금씩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녀가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전에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예쁘고, 일할 때 집중하는 얼굴이 좋아서 자꾸 눈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녀가 아프다는 걸 알고 나니, 그냥 바라만 보고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회사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있어도, 저는 자꾸 전날 밤 호프집에서 울던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씩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커피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그녀가 자주 마시던 라테를 하나 더 샀습니다.
직접 건네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녀가 자리에 없을 때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두었습니다.
메모를 붙일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괜히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잠시 뒤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모니터를 보는 척했지만, 사실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커피를 보고 조금이라도 웃어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제가 기대한 것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커피를 한참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제 쪽을 봤습니다.
“이거 혹시 주신 거예요?”
저는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아, 네. 그냥 지나가다가 생각나서요.”
그녀의 얼굴이 조금 굳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건 안 주셔도 됩니다.”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급히 덧붙였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그냥 힘들어 보여서…”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커피를 책상 한쪽으로 조용히 밀어두었고, 끝내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더 서 있을 수 없어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 저는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커피가 부담스러웠다면, 업무적으로 도와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녀가 처리해야 할 자료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엑셀 파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았고,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그거 제가 한번 봐드릴까요?”
예전 같으면 그녀는 웃으면서 “아, 감사합니다”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바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빛이 차가웠습니다.
“안 도와주셔도 돼요.”
저는 멈칫했습니다.
“아니, 제가 전에 비슷한 자료 해본 적이 있어서…”
그녀는 조금 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어요. 굳이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그 말에는 분명한 선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물러났습니다.
자리로 돌아오는데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본 것도 아닌데, 괜히 모두가 알아차린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다정함을 저는 사랑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녀가 제 손을 잡았던 순간도, 팔짱을 꼈던 날도, 눈가를 닦아주던 장면도 저는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순간들은 사랑의 고백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잊기 위해 누군가와 웃고 싶었던 시간.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가까운 후배에게 기대었던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모든 장면을 제 마음에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했습니다.
처음에는 서운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억울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나는 나쁜 의도로 커피를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을 대신해주겠다고 억지로 나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힘들어 보이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제가 생각한 위로와 그녀가 받아들인 위로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그날 밤, 자신만 알고 묻어두고 싶었던 아픈 이야기를 제게 해버렸습니다.
떠난 사람을 원망했고, 술에 취해 울었고,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도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그 밤은 위로받은 기억이 아니라, 후배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무너진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을 겁니다.
그녀가 차가워진 이유를 뒤늦게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차가워진 건 저를 미워해서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후배에게 보인 약한 모습을 지우고 싶어서, 더 선배답게 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업무에서도 저에게 더 깐깐했는지 모릅니다.
그녀 입장에서는 거리를 두려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저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다음 날부터는 차갑게 대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속으로는 억울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해놓고 왜 이제 와서 선을 긋지?’
그때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녀가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아파서 무너졌고, 저는 그 무너진 모습을 사랑의 신호로 착각했던 겁니다.
그 뒤로 그녀는 저를 조금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는 했지만 오래 눈을 맞추지 않았고, 업무 이야기도 가능하면 메신저로 끝냈습니다.
예전처럼 가볍게 웃으며 말을 붙이는 일도 줄었습니다.
저는 더 난처해졌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날 일을 꺼낸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
혹시 내가 혼자 의미를 크게 둔 걸까.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강변 공원에서 저는 결국 마음을 묻고 말았습니다
그녀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저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에는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강변길을 걷고, 놀이공원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저를 선명하게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먼저 내게 다정하게 대해놓고, 이제 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러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강변길을 걷고, 놀이공원까지 갔던 시간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제 눈가를 닦아주던 손끝도, 길을 건너며 잡았던 손도, 공원에서 장난처럼 팔짱을 끼던 순간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게 저에게는 분명한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선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잠시 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회사 근처 강변 공원으로 걸어갔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난 강변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고, 바람은 조금 차가웠습니다.
저는 한참을 걷다가 결국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왜 저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세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침묵을 참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선배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녀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그러다 그녀는 겸연쩍은 듯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예전처럼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한마디에 제 착각이 무너졌습니다
“후배님은 사랑과 친절도 구분 못 해요?”
그 말에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강변 쪽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지금 괜찮은 척하고 있는 거예요. 오래 만났던 사람 잊으려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거라고요.”
저는 숨이 막혔습니다.
그녀는 계속 말했습니다.
“그날 술자리에서 제가 너무 무너졌죠. 후배님한테 하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도 했고,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도 보였어요.”
그녀는 손끝을 꼭 쥐었습니다.
“그래서 민망했어요. 부끄러웠고요. 회사에서 후배님 볼 때마다 그날의 제가 떠올랐어요.”
저는 그제야 그녀가 왜 차갑게 굴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저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무너진 모습을 본 사람 앞에서 다시 선배처럼 서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를 봤습니다.
“후배님이 조금만 더 아무렇지 않게 대해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냥 모르는 척해주고, 부담 없이 옆에 있어줬다면요.”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습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랬다면, 제가 먼저 후배님을 좋아하게 됐을지도 몰라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더 아팠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겠어요. 후배님이 저한테 친절했던 게 그냥 위로가 아니었다는 걸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저는 그때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후배님은 그 시간을 전부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던 거잖아요.”
저는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아니라고, 처음부터 그런 마음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도 늦은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이제 저한테 더 친절하게 하지 않아도 돼요.”
그 말은 차가웠습니다.
“앞으로 회사에서는 그냥 선후배로 지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강변길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혼자 남았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데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조금만 더 아무렇지 않게 대해줬다면.
그녀의 아픔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정말 다른 관계가 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빨랐습니다.
그녀가 아직 상처를 정리하기도 전에, 저는 제 마음부터 앞세웠습니다.
그녀가 보여준 다정함을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고, 그녀가 내게 기대던 순간을 고백의 신호처럼 붙잡았습니다.
결국 일을 그르친 건 그녀의 차가움이 아니었습니다.
제 조급함이었습니다.

그녀를 잃고 나서야 제 조급함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녀를 위로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처 위에 제 마음을 얹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새 남자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선배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대신 채워주는 시간이 아니라, 혼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날 시간이요.
그런데 저는 그녀가 외로워 보인다는 이유로, 제가 들어갈 자리가 생겼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때는 계속 이유를 찾았습니다.
선배가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건지,
기억하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제가 혼자 너무 앞서간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변에서 선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선배의 차가움이 아니라,
그 차가움을 견디지 못한 제 조급함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빨리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로 저는 더 이상 선배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짧게 인사했고, 업무 이야기는 필요한 만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했습니다.
왜 나를 헷갈리게 했을까.
왜 그렇게 다정했을까.
왜 손목을 잡고, 왜 팔짱을 끼고, 왜 나와 술을 마셨을까.
그런 생각이 한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너무 빨리 다가가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이라면 좋아하는 직장 동료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는 법도 참고해보세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선배가 보여준 다정함은 거짓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저 무너지지 않으려고 누군가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손길을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 차이를 몰랐던 게, 제가 가장 크게 놓친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선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제 마음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더라면,
그녀의 상처가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줬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다른 결말을 맞았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