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입사 4년 차 직장인 혜선입니다. 제일 못하는 말은 “안 됩니다”였습니다.
누군가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을 착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오래 그렇게 믿었습니다.
친구가 부탁하면 들어주는 사람.
선배가 급하다고 하면 도와주는 사람.
남들이 난처해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 행동들이 점점 저를 만만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혜선 씨는 부탁하면 해주잖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친구들은 제가 약속을 미뤄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관심 없는 남자들이 호감을 표현해도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해 몇 번이나 곤란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배려심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나중엔 알았습니다.
저는 배려한 게 아니라, 미움받는 게 무서웠던 겁니다.
거절 못하는 사람 특징은 착함보다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무너졌습니다. 부탁을 받으면 먼저 내 상황을 보지 않고 상대의 표정부터 살핍니다. 싫어도 “생각해볼게”라고 말하고, 시간이 없어도 “한번 해볼게”라고 답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버겁지만 입 밖으로는 괜찮다고 합니다.
저는 학생 때도 그랬습니다. 친구가 숙제를 못 했다고 하면 제 공책을 빌려줬습니다. 리포트가 어렵다고 하면 자료를 찾아줬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하자고 했던 일이 어느 순간 제가 대신 해주는 일이 됐습니다. 돈도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금방 갚을게”라는 말을 믿었지만 끝내 받지 못한 돈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화를 내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다음에 주면 돼.”
사실 괜찮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제가 속 좁은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거절 못하는 사람은 부탁을 받으면 자신의 일정이나 감정보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걱정합니다. 싫어도 바로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부담스러운 부탁도 웃으며 넘깁니다. 문제는 그 태도가 반복되면 상대가 나를 편한 사람이 아니라 쉽게 써도 되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누군가가 나를 쉽게 대하고 있는지 헷갈린다면 나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 특징을 먼저 확인해보면 좋습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태도가 반복되면 상대의 무례도 조금씩 커질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저는 거절을 잘 못했습니다
입사 4년 차쯤 되면 적어도 내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할 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그 선이 흐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그게 서툴렀습니다.
“혜선 씨, 이것 좀 대신 확인해줄 수 있어요?”
“혜선 씨, 나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해서 이 자료만 거래처에 보내줘요.”
“혜선 씨는 꼼꼼하니까 금방 하죠?”
이 말들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인정받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내가 필요하구나. 내가 잘하니까 부탁하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탁은 조금씩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메일 하나였습니다.
다음에는 자료 수정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점심시간에 택배를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퇴근 직전에 거래처에 대신 가달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 부탁을 한 사람은 지은 선배였습니다.
지은 선배는 제 바로 위 선배였습니다.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늘 밝게 웃었고, 팀장님 앞에서도 말솜씨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급한 일은 자주 제게 내려왔습니다.
“혜선아, 오늘 거래처 미팅 자료만 대신 전달해줄래?”
“오늘이요?”
“응. 나 진짜 갑자기 일이 생겨서. 네가 가면 금방 끝나.”
저는 그날 저녁 약속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잡아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배의 표정이 너무 난처해 보였습니다.
“제가요?”
“응. 너밖에 없어.”
그 말은 참 이상했습니다. 부담스러운데도 듣는 순간 거절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너밖에 없다는 말은 사람을 붙잡습니다. 그 말 안에는 부탁과 칭찬과 압박이 한꺼번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결국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다녀올게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그 거래처에서 제 인생을 더 복잡하게 만들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요.
거래처에서 만난 남자는 저처럼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거래처 사무실은 생각보다 조용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사람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웠고, 회의실 불만 켜져 있었습니다.
저는 안내받은 회의실에서 자료를 꺼내놓았습니다. 그때 한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키가 컸고, 단정한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잘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명함을 건네는 손도 조금 어색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윤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혜선입니다.”
그는 명함을 주고도 한 박자 늦게 앉았습니다. 자료를 보면서도 고개만 끄덕였고, 필요한 질문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이 부분은… 혹시 다음 주까지 확인 가능할까요?”
말은 정중했지만 목소리는 작았습니다. 딱 봐도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미팅은 20분 만에 끝났습니다. 저는 가방을 챙겨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이 바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도 뭔가 말을 하려다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
말하고 나서 제가 더 놀랐습니다. 평소의 저는 그런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습니다. 거래처까지 대신 온 것도 억울했고, 그냥 바로 돌아가면 하루가 전부 남의 부탁으로 끝날 것 같았습니다.
도윤 씨는 당황한 얼굴로 저를 봤습니다.
“커피요?”
“불편하시면 괜찮습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 말투가 낯익었습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의 말투였습니다.
저는 웃음이 나올 뻔했습니다.
이 사람도 나와 비슷하구나.
커피 한 잔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우리는 거래처 건물 1층 카페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일 이야기만 했습니다. 자료 일정, 다음 미팅, 수정 방향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자리에서 말을 잘 못합니다.”
도윤 씨가 먼저 말했습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많이 연습한 겁니다. 원래는 누가 부탁하면 거절도 잘 못하고요.”
그 말에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도 그래요.”
그는 처음으로 제대로 웃었습니다.
“정말요?”
“네. 오늘도 선배 부탁 거절 못해서 여기 왔어요.”
그 말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도윤 씨는 웃지 않았습니다.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그런 부탁 많이 받아요. 할 수 있냐고 묻는 말인데, 사실은 해달라는 뜻일 때가 많잖아요.”
그 말에 마음이 조금 풀렸습니다.
그날 우리는 커피 한 잔으로 끝내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비슷한 성격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절 못해 손해 본 이야기, 부탁을 들어주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 이야기, 싫은데 싫다고 말하지 못해 집에 와서 혼자 후회한 이야기.
도윤 씨는 조용했지만 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속도가 느릴 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편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늘 빠르게 답해야 했고, 선배들 앞에서는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도윤 씨와 있을 때는 말이 조금 늦어도 괜찮았습니다. 침묵이 생겨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카페를 나설 때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부탁을 들어주면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고맙다고 했습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문제는 그 사람이 선배가 점찍어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회사에서 지은 선배가 제 자리로 왔습니다.
“어제 잘 다녀왔어?”
“네. 자료 전달했고, 일정도 이야기했습니다.”
“도윤 씨 봤어?”
그 이름이 나오자 저는 잠깐 멈췄습니다.
“네.”
지은 선배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습니다.
“어땠어?”
“네?”
“그 사람 어땠냐고.”
그때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지은 선배는 머그잔을 손에 쥔 채 웃었습니다. 평소처럼 가벼운 웃음이었지만 눈빛은 달랐습니다.
“사실 나 그 사람 좀 괜찮게 보고 있었거든.”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아…”
“근데 내가 좀 부끄러워서. 어제 네가 대신 가면 자연스럽게 분위기 볼 수 있을 것 같았어.”
저는 순간 말을 잃었습니다.
대신 거래처에 가달라는 부탁은 단순한 업무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선배는 제가 거절을 잘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이용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 부끄러워서, 저를 먼저 보낸 것입니다.
“그럼 어제 제가 간 건…”
“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자료 전달도 할 겸.”
지은 선배는 웃었습니다.
“도윤 씨가 혹시 내 얘기 안 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부터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도윤 씨는 제게 연락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업무 이야기였습니다. 자료 확인, 일정 조율, 수정 방향. 그런데 메시지는 점점 조금씩 길어졌습니다.
“오늘도 늦게까지 일하세요?”
“커피는 드셨어요?”
“저번에 말씀하신 거절 못하는 성격 이야기, 자꾸 생각났습니다.”
저는 답장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도 조심스러웠고, 저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은 선배가 자꾸 물었습니다.
“도윤 씨랑 연락해?”
“업무 때문에요.”
“그 사람 원래 답장 느린데 너한텐 빨리 하네?”
그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거절 못하는 사람은 호감도 쉽게 떠안습니다
저는 도윤 씨가 싫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 사람이 보낸 메시지를 바로 지우지 못했고, 답장을 쓰기 전에 괜히 문장을 몇 번 고쳤습니다. 그 정도면 이미 마음이 조금 움직인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답을 늦게 해도 재촉하지 않았고, 제가 곤란해 보이면 먼저 물러났습니다. 그 조심스러움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저는 그게 좋았습니다.
문제는 지은 선배였습니다.
선배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혜선아, 도윤 씨 좋아하는 사람 있는지 한번 물어봐줄래?”
“제가요?”
“너희 업무 때문에 연락하잖아.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되지.”
또 그 말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잠깐만.
네가 해주면 되잖아.
저는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도윤 씨에게 메시지를 쓰다가 지웠습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
이걸 제가 왜 물어봐야 하는지 모르겠었습니다. 물으면 선배를 돕는 것이고, 묻지 않으면 선배를 배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윤 씨에게 마음이 가는 제 자신도 미웠습니다.
그때 도윤 씨에게 먼저 메시지가 왔습니다.
“내일 점심시간 괜찮으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한참 화면을 봤습니다.
거절해야 할까요. 만나야 할까요.
결국 저는 답했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이 대답도 저다운 대답이었습니다. 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점심시간, 도윤 씨는 처음으로 제 눈을 똑바로 봤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회사 근처 작은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도윤 씨는 평소보다 더 긴장해 보였습니다. 물컵을 몇 번이나 만졌고, 메뉴판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제가 원래 이런 말을 잘 못합니다.”
“네.”
“그래서 늦었습니다.”
저는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제 눈을 똑바로 봤습니다.
“저는 혜선 씨가 좋습니다.”
머릿속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말은 크지 않았습니다. 멋진 고백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진심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지은 선배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선배가 제게 거래처에 대신 가달라고 하던 얼굴. 도윤 씨가 선배가 점찍어둔 사람이라는 말. 그리고 제가 거절하지 못해 여기까지 온 모든 장면.
“저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윤 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부담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그 말에 저는 오히려 더 흔들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거절하지 못하는 걸 알면 더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먼저 말했습니다.
거절해도 괜찮다고.
그 말 하나가 제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클라이맥스는 고백이 아니라, 선배 앞에서 처음으로 거절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지은 선배가 제 자리로 왔습니다.
“혜선아, 오늘 도윤 씨 만났다며?”
저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알지. 그래서 뭐래?”
선배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날카로웠습니다. 저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님.”
“응?”
“저 이제 도윤 씨 관련해서 선배님 부탁은 못 들어드릴 것 같습니다.”
지은 선배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뭐?”
제 손이 떨렸습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옆자리 사람이 들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말했습니다.
“처음 거래처에 대신 간 것도 업무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개인적인 마음 때문에 저를 보낸 거라면, 그건 제가 감당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혜선아, 너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예민하다.
변했다.
이기적이다.
그동안 저를 붙잡았던 말들도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저는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예민한 게 아니라, 이제 제 기준을 말하는 겁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지은 선배는 한참 저를 보더니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전처럼 가볍지 않았습니다.
“너 변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전 같으면 그 말이 무서웠을 겁니다. 변했다는 말이 미움받는 것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저는 정말 변한 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변화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전은 도윤 씨가 저를 선택했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퇴근 후 도윤 씨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오늘 괜찮으셨습니까?”
저는 한참 고민하다가 답했습니다.
“괜찮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처음으로 거절했습니다.”
답장이 조금 늦게 왔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 짧은 문장을 보고 저는 울었습니다.
고백보다 그 말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잘했다는 말이 더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날의 반전은 도윤 씨가 저를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건 고백이 아니라 제가 처음으로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았다는 기쁨보다, 처음으로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더 큰 반전은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평생 거절하면 관계가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관계는 거절해야 비로소 진짜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지은 선배는 제가 거절하자 “너 변했다”고 했습니다.
도윤 씨는 제가 거절했다는 말을 듣고 “잘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차이가 답이었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거절할 권리까지 존중합니다.
나를 이용하던 사람은 내가 거절하는 순간 본색을 드러냅니다.

거절 못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 5가지
예전에는 거절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관계가 깨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거절은 싸우자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말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강하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래 문장부터 연습해도 됩니다.
| 상황 | 대답 예시 |
|---|---|
|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았을 때 | “지금 바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일정 확인 후 말씀드릴게요.” |
| 개인적인 부탁이 부담스러울 때 | “그건 제가 대신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
|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 “미안하지만 금전 거래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 관심 없는 호감 표현이 부담될 때 | “고맙지만 저는 그런 마음으로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
| 상대가 서운해할까 봐 불안할 때 | “서운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제 입장은 여기까지입니다.” |
저처럼 거절을 어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설명이 길어집니다. 그런데 설명이 길어질수록 상대는 다시 설득할 틈을 찾습니다.
짧게 말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나를 잃지 마세요
저는 아직도 거절이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한 번만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여전히 듭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를 압니다.
내가 무리해서 들어준 부탁은 언젠가 원망이 됩니다.
내가 싫다고 말하지 못한 관계는 언젠가 나를 지치게 합니다.
내가 착한 사람으로 남으려고만 하면, 누군가는 나를 편한 사람으로만 기억합니다.
거절은 나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정직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말해야 상대도 나를 제대로 압니다. 내가 무엇이 불편한지 말해야 관계도 더 건강해집니다.
거절했을 때 떠나는 사람은 어쩌면 나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내가 거절하지 않는 태도를 좋아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내가 거절해도 남아 있는 사람은 나를 더 정확히 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결론, 거절은 관계를 끊는 말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말입니다
저는 오래도록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숙제를 대신해줬고, 돈을 빌려줬고, 약속을 미뤘고, 선배의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그러다 거래처에서 도윤 씨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난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 일은 제가 처음으로 저를 지키는 연습을 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도윤 씨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은 선배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저는 더 이상 모든 부탁에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할 겁니다.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면 정중히 거절할 겁니다.
누군가는 저를 변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조금 덜 무섭습니다.
사람이 변했다는 말은 때로 나쁜 뜻이 아닙니다. 드디어 자신을 함부로 내주지 않게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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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인간관계와 직장 내 경계 설정에 관한 경험담 형식의 글입니다. 실제 직장 내 괴롭힘, 반복적인 부당 지시, 금전 요구, 원치 않는 호감 표현이 계속된다면 혼자 감당하지 말고 기록을 남기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나 공식 상담 창구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