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유리문 너머로 그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을 때, 저는 들고 있던 컵을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사람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웃었습니다.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 괜히 대답이 길어졌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마음 한쪽이 조금 밝아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친절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제 동선을 너무 자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저는 그날 처음으로 일부러 다른 복도로 돌아갔습니다.
호감은 상대를 편하게 해야지, 계속 신경 쓰이게 만들면 부담이 됩니다. 상대의 행동이 좋은 신호인지 부담스러운 신호인지 헷갈린다면 직장 동료 호감 신호 15가지를 함께 보면서 선을 넘는 행동은 없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때 저는 회사 3년 차 대리였습니다.
그 사람은 같은 회사 6년 차 선배였고, 직급은 저와 같은 대리였습니다.
입사 연차로는 저보다 훨씬 앞섰지만, 직급이 같아서인지 처음부터 어렵기만 한 선배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붙임성이 좋았습니다.
사람들과 금방 가까워졌고, 회의 분위기가 딱딱해질 때도 조용히 농담 한마디로 공기를 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도 성실했습니다.
회의 때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거의 없었고, 누가 실수해도 사람을 몰아붙이기보다 먼저 수습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좋았습니다.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일은 대단한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회의 자료를 조용히 챙겨주는 손길.
복사기 앞에서 “이거 먼저 하세요” 하고 한 걸음 비켜주는 배려.
야근하는 날 탕비실에서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하고 건네던 낮은 목소리.
그런 작은 순간들이 쌓이면서,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을 조금씩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마음을 티 내지 않았습니다.
회사였으니까요.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곳에서,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좋은 감정은 있었습니다.
분명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안쪽에만 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친절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제 동선을 너무 자주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저는 그날 처음으로 일부러 다른 복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설레던 마음이 조금씩 조심스러워진 것은요.
처음에는 저도 그 사람에게 끌렸습니다
처음부터 불편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그 사람이 꽤 좋았습니다.
한 번은 회의가 길어져 모두 지쳐 있던 날이었습니다.
자료는 계속 수정됐고, 팀장님은 숫자 하나하나를 다시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회의는 커피 두 잔짜리네요.”
사람들이 웃었고,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그 농담보다, 웃고 있는 그의 옆모습이 더 오래 기억났습니다.
붙임성 있는 사람.
성실한 사람.
착한 사람.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그때 저는 그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거래처 자료를 잘못 첨부해 당황한 적이 있었습니다.
팀장님이 화면을 넘기기 직전이었고, 저는 손끝이 차가워질 만큼 놀랐습니다.
그때 그가 제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낮게 말했습니다.
“지은 대리님, 제가 방금 받은 최종본 있어요.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는 남들 앞에서 제 실수를 티 내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파일을 보내주었고,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 일로 제 실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는 그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 사람에게는 아주 잠깐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을 걸어오면 싫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저도 모르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 웃음이 그에게 어떤 신호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설렌 적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둘만 남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노트북 가방과 서류 봉투를 함께 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제 손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무거워 보이는데, 제가 들어드릴까요?”
저는 괜찮다고 하려다가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가 너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그 순간만큼은 그 배려가 싫지 않았습니다.
“그럼 잠깐만요.”
제가 가방을 건네자 그의 손끝이 제 손등에 살짝 닿았습니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까지 그 손끝의 감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우리 둘뿐이었습니다.
층수를 표시하는 숫자가 하나씩 내려가는 동안, 저는 괜히 손잡이 쪽만 바라봤습니다.
그가 옆에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지은 대리님은 항상 혼자 다 들고 다니시더라고요.”
“그냥 익숙해서요.”
“그래도 가끔은 누가 들어줘도 괜찮잖아요.”
그 말이 별말 아닌데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날 밤에는 집에 와서도 그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연락이 오기를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휴대폰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오지 않으면 조금 서운할 것 같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감정을 설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
내가 혼자 들고 있던 무게를 누군가 잠깐 알아봐줬다는 느낌.
그건 분명 사람 마음을 흔드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설렘은 아주 얇은 선 위에 있었습니다.
상대가 한 걸음만 더 빨리 다가오면 쉽게 부담으로 바뀔 수 있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마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저보다 훨씬 전부터 제게 마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회의 때 메모를 꼼꼼히 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실수하고도 바로 정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고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조금 설렜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오래 봐왔다는 사실은 사람 마음을 흔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빨리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우리 사이에 뭔가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제가 탕비실에 가면 비슷한 시간에 들어왔고, 복사기 앞에 서 있으면 어느새 옆에 섰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도 제 근처 자리를 찾았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제 자리 근처를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지은 대리님, 오늘은 어디서 드세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메신저가 왔습니다.
“오늘도 늦게 가세요?”
처음 한두 번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반복되자 제 하루의 동선이 그에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저를 좋아한다는 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제 마음보다 먼저 앞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천천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앞으로 한참 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가까워지는 속도가 부담스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불편하다고 느낀 건 그 사람이 제 거리 안으로 너무 쉽게 들어왔을 때였습니다.
프린터 앞에서 출력물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람이 제 뒤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거 뽑으시는 거예요?”
그는 제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려고 했습니다.
순간 몸이 굳었습니다.
너무 가까웠습니다.
나쁜 의도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먼저 반응했습니다.
저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 놀라셨어요?”
저도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서류를 건네며 손끝이 오래 닿았습니다.
회의실에서 지나가다가 제 의자 등받이를 잡았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봐준다며 제 옆으로 너무 가까이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늘 장난처럼 넘겼습니다.
“제가 좀 급해서요.”
“아, 미안해요.”
“불편했어요?”
그렇게 물으면 저는 더 곤란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네, 불편했어요”라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상대가 민망해질까 봐.
회사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봐.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저는 매번 괜찮은 척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은 척한다고 마음까지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까이 오면 예전처럼 설레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제가 먼저 주변을 보게 됐습니다.
누가 보고 있지 않을까.
또 누가 오해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알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건 더 이상 설렘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담이었습니다.

호감이 부담으로 바뀌는 순간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저는 몇 번이나 제 손등을 내려다봤습니다.
그가 제 가방을 받아주다가 손끝이 살짝 스쳤을 뿐이었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감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의 조용한 공기, 층수를 표시하던 작은 불빛, 옆에서 낮게 웃던 그의 목소리까지 자꾸 떠올랐습니다.
“가끔은 누가 들어줘도 괜찮잖아요.”
그 말이 그날 밤까지 마음에 남았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도 저는 한동안 손등을 바라봤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려 했습니다.
회사 선배가 후배의 짐을 잠깐 들어준 것뿐이라고요.
그런데 마음은 그렇게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휴대폰을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연락이 오기를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지 않으면 조금 서운할 것 같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싫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좋았습니다.
회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괜히 자세를 고쳤고, 탕비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커피를 조금 더 천천히 따랐습니다.
복도에서 눈이 마주치면 먼저 시선을 피했지만, 마음은 그쪽에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고 있다는 걸요.
천천히 가까워졌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천천히 가까워졌다면, 우리는 정말 다른 사이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점심을 같이 먹고, 퇴근길을 함께 걷고, 언젠가는 회사 밖에서 서로를 조금 더 편하게 부르는 사이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연인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막 마음속 문고리에 손을 올린 정도였습니다.
문을 열까 말까, 이 감정이 정말 호감인지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그 안으로 들어온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저는 아직 “조금 더 가까워져도 괜찮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우리는 뭔가 있는 사이”처럼 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설렘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가까이 오면 여전히 가슴은 뛰었습니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은 더 이상 설렘만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보고 있을까.
또 누가 오해할까.
이번에는 어떤 말이 회사 안에 돌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감정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흔들리는 마음은 분명 제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이성이었습니다.
제 감정은 아직 그에게 끌리고 있었고, 제 이성은 계속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너무 빠르다.
이건 내 속도가 아니다.
이 사람은 내 마음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
그때부터 저는 웃으면서도 조금씩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가 다가올수록, 제 안의 설렘은 조심스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러움이 반복되자, 결국 부담이 됐습니다.
가장 아픈 건 그 부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싫었다면 쉬웠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한때 정말 그 사람에게 끌렸습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더 실망했습니다.
직장 동료의 호감 신호가 헷갈린다면 아래 글도 함께 읽어보면 좋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음이 닫힌 건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음이 닫힌 건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팀원 몇 명과 식당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동료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은 대리님, 요즘 그 선배랑 사귄다면서요?”
처음에는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네? 누가 그래요?”
동료는 장난스럽게 웃었습니다.
“아니에요? 다들 직장 내 커플인 줄 알던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확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애써 웃으며 넘기려고 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런 사이 아니에요. 일 때문에 몇 번 이야기한 것뿐이에요.”
하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소문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더 심한 말을 들었습니다.
휴게실 앞을 지나가는데 여자 직원 여러 명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둘이 이미 사귀는 거 맞대요.”
“회사 구석에서 진하게 키스하는 걸 본 사람도 있다던데요?”
순간 발이 멈췄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사귄 적이 없었습니다.
연인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습니다.
회사 밖에서 단둘이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키스는커녕 손을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는 이미 제가 그 사람과 몰래 사귀는 사람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지도 않은 스킨십 이야기까지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가장 속상했던 건 단순히 소문이 났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은 아직 제 안에서도 정리되지 않았는데, 회사 사람들 입에는 이미 우리 관계가 먼저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조차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제가 이미 그 사람과 깊은 관계가 된 것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너무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 소문을 그가 직접 낸 것인지, 누군가가 멋대로 부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었습니다.
그가 제 마음의 속도를 조금만 더 조심스럽게 봤다면, 그가 회사 안에서 제 주변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맴돌지 않았다면, 이런 말이 이렇게 쉽게 돌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은 더 이상 고백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 사람들 앞에 놓인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좋게 보였던 그 사람의 관심이 그 순간부터 전부 다르게 보였습니다.
커피를 챙겨준 것도 부담스러웠고, 제 자리 근처를 맴돈 것도 의식됐고, 회의 때 도와준 일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이 닫히자 모든 장면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휴게실 문 앞에서도 한 번씩 멈칫하게 됐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그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달라졌습니다.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 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나갔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칠 것 같으면 일부러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왔습니다.
탕비실에 그 사람이 있으면 물을 마시고 싶어도 그냥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업무 메신저에는 필요한 말만 짧게 답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전달드렸습니다.”
“수정해서 공유하겠습니다.”
이 세 문장만으로도 하루 업무는 충분히 굴러갔습니다.
문제는 퇴근 후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처음에는 받지 않았습니다.
업무 시간도 아니었고, 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조금 뒤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습니다.
메시지가 왔습니다.
“혹시 제가 뭐 실수했어요?”
퇴근 후 연락이 단순한 예의인지, 아니면 부담스러운 관심인지 헷갈린다면 아래 글도 함께 읽어보면 좋습니다.
그 문장을 보고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봤습니다.
실수했냐고 묻는 사람이 정말 모르는 것 같아서 더 답답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마세요.”
“저는 그게 불편했습니다.”
이 말들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보내는 순간 회사에서 더 큰 이야기가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결국 저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번호를 차단했습니다.
그 사람을 망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을 벌주고 싶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 하루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출근 전부터 휴대폰을 보며 긴장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사 복도에서 누구와 마주칠까 걱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싫다고 느끼는 감정을 더 이상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며칠 뒤, 그는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려가고, 엘리베이터 앞에는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지은 대리님, 요즘 저 피하시죠?”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왔습니다.
“제가 뭐 잘못했으면 말해줘요. 갑자기 이렇게 차갑게 굴면 저도 힘듭니다.”
그 말에 저는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봤습니다.
한때는 그와 둘만 남은 엘리베이터 앞이 설렜습니다.
그가 제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던 날, 손끝이 스쳤던 순간을 혼자 오래 떠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같은 엘리베이터 앞이었지만, 저는 더 이상 설레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그와 단둘이 남는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는데, 그날은 도망칠 곳이 없는 좁은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올수록, 저는 한 걸음 물러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 예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그와 둘만 남았던 엘리베이터 앞.
그가 제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밀던 순간.
손끝이 스쳤던 짧은 감각.
그날 밤 휴대폰을 확인하던 제 모습.
한때는 그 모든 게 설렘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 앞에 서 있는데도 제 마음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가 한 걸음 가까이 오면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제는 그가 한 걸음 가까이 오면 숨이 막혔습니다.
이게 더 아팠습니다.
좋아했던 마음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데, 그 마음보다 먼저 몸이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알았습니다.
이제는 감정만 보고 움직이면 안 된다고요.
아직 남아 있는 호감 때문에 또 웃어주면, 그는 또 괜찮다고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조금만 부드럽게 말하면, 그는 다시 기대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더 차가워져야 했습니다.
저는 가방끈을 더 세게 잡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선배님, 저는 이 상황이 불편합니다.”
그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저는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선배님과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제 이름이 선배님 감정과 같이 오르내리는 게 너무 불편해요.”
“저는 그냥…”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제가 먼저 끊었습니다.
“그냥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하셔도, 저는 불편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 한쪽이 아팠습니다.
정말 아무 감정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를 좋게 봤던 시간이 있었고, 설렜던 순간도 있었기 때문에 더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직도 제 마음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싫었습니다.
업무 외 연락은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더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업무 외 연락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는 입술을 다물었습니다.
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그 눈을 마주치면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날은 일부러 더 똑바로 봤습니다.
제가 흔들리면 또 이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사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그게 제일 불편했습니다.”
저는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손끝은 떨렸지만, 말은 끝까지 흐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다만 더 이상 제 마음이 그 사람의 속도에 끌려다니게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저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더는 웃으며 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참 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매몰차게 돌아섰습니다.
뒤에서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보면 또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저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저를 좋아했다면, 그날 제 말을 아프게 듣는 것보다 먼저 제가 왜 이렇게까지 말하게 됐는지를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차가워진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차가워진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싫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때는 그 사람을 보면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싫지 않았고, 그가 제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이름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보다, 그 목소리를 누가 들었을지가 먼저 신경 쓰였습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보다, 제가 어디로 피해야 할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남아 있었지만, 제 이성은 계속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너무 빠르다.
이건 내 속도가 아니다.
이 사람은 내 마음을 기다리고 있지 않다.
처음부터 아무 감정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괴롭지도 않았을 겁니다.
처음부터 싫은 사람이었다면 그냥 피하면 됐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한때 제 마음을 흔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미웠습니다.
내가 흔들렸던 마음을, 그가 너무 쉽게 자기 확신으로 바꿔버린 것 같아서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 표정을 봤어야 했습니다.
제가 웃고 있는지보다, 그 웃음이 정말 편한 웃음인지 봤어야 했습니다.
제가 답장을 했는지보다, 그 답장이 왜 점점 짧아지는지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제가 피하고 있다면, 이유를 캐묻기 전에 먼저 멈췄어야 했습니다.
사랑은 감정만으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감정으로 흔들렸습니다.
그 사람의 다정한 말투가 좋았고, 조용히 도와주던 손길이 고마웠고, 엘리베이터에서 스친 손끝 하나에도 마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건 분명 호감이었습니다.
그건 분명 설렘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정만으로 사랑이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아무리 커도, 상대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압박이 됩니다.
호감이 아무리 뜨거워도, 상대의 불편함을 모른 척하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 욕심이 됩니다.
제가 그때 바랐던 건 대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 걸음 물러났을 때, 같이 멈춰주는 것.
제가 웃고 있어도 정말 편한지 한 번쯤 살펴주는 것.
제 이름을 다른 사람들 앞에 먼저 올리기 전에, 제 마음부터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것.
제가 힘들어 보이면 “왜 피하냐”고 묻기 전에 “내가 불편하게 했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것.
그게 배려였고, 그게 존중이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어긋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거의 시작될 뻔한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마음을 말하는 데만 급했고, 저는 제 불편함을 너무 늦게 말했습니다.
결국 우리 사이에 남은 건 고백이 아니라 거리였습니다.
저는 그 거리 안에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지나고 나서야 저는 알았습니다.
사랑은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편안히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지켜내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예전처럼 쉽게 웃어주지 못하게 됐습니다.
누군가를 밀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 마음을 더는 아무렇게나 넘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