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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사상식…에코 3리터 하우스·롱테일 이론이 뭐야?

롱테일 법칙, 잘팔리는 상위상품 20%가 전체 매출의 80% 능가 전략

에코 3리터 하우스가 최근 고유가 시대를 맞아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생존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경영전략을 펼칩니다. 오늘은 사시상식으로 '에코 3리터 하우스'와 경영이론인 '롱테일 이론'을 선정했습니다.

에코 3리터(ECO-3L) 하우스 :지금까지 지어진 아파트가 냉.난방을 위해 ㎡당 연간 16ℓ의 기름(등유)을 사용하는 데 반해 풍력,태양광,지열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3ℓ만 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기술이 상용화할 경우 기름값,전기값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생기게 되는 셈입니다. 최근 고유가로 인해 국내 한 건설업체가 이런 아파트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롱테일(long tail) 이론 : 이 말은 2006년 온라인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롱테일(The Long Tail)'이란 책에서 들고나왔습니다. '긴 꼬리 현상'이라고 불리는 이 용어는 크리스 앤더슨이 구글, 애플, 아마존, 이베이 등 사업적으로 성공을 이룬 유명 IT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만든 단어입니다.

롱테일 이론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돼야 할 이론이 파레토의 법칙입니다. 사실, 롱테일 이론과 파레토의 법칙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파레토의 법칙은 20%의 상품이 매출의 80%를 발생시킨다는 이론으로 전통적인 마케팅에서 흔히 이용되는 방법입니다.

미국의 서적판매 사이트 아마존은 실제로 잘 팔리는 상위 20%의 책 매출이 나머지 80%를 능가할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죠. 불특정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몇 권의 책 매출보다 불특정 소수의 사람들이 찾는 수 많은 책의 매출이 그것을 능가한다는 것이죠. 이게 롱테일 이론입니다.

이와함께 블록버스터(blockbuster)전략도 함께 언급되곤 합니다. 이 말은 잘 나가는 히트 상품 몇 개가 회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죠. 또 틈새(Niche)상품도 곧잘 언급되곤 합니다. 이 말은 소수 애호가를 타킷으로 삼는다는 경영 전략이죠. 최근 기업들이 경영전략을 내세우면서 회자되고 있는 용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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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맞아?…전신대의 화려한(?) 변신, 전신주가 하나의 예술품?

전신주 칭칭감은 덩굴나무 보니 식물에대한 색다른 감흥

덩굴나무의 치열한 생명력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볼만

"전신주의 화려한 변신 참으로 대단하네요"
"담쟁이덩굴이 전봇대를 화려하게 만들었네"
"전신주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요"
"대단한 한폭의 예술품 같아요."
"그러게요. 정말 멋지군요."
"전신주가 예술작품이 되었네요."
"참으로 자연은 대단한 예술가이군요."
"그렇군요. 자연은 참 대단하네요."




전신주는 참으로 삭막합니다. 이런 전신주도 꾸미기 나름에 따라 색다르게 보입니다. 도시의 전신주가 새로운 모습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전신주가 담쟁이덩굴로 인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이 칭칭감고 올라간 모습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사실상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될듯 합니다. 자연은 거대한 예술가이자 거대한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주역입니다.

전봇대-전봇대의 변신-담쟁이덩굴-전신주


식물의 감고오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칭칭 몇 m까지 감고 오를 수 있을까요.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주말, 인간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전신주에서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도시의 주택가 인근서 색다른 맛을 선사하기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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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주 같습니까?  잘 조형된 조각작품 같지 않으셔요!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자연은 아름다움과 새로운 멋을 선사하고 있었답니다. 철길 인근이라 사람의 손이 거의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별로 멋있지 않은 전신주를 멋있게 만들어준 주인공은 담쟁이덩굴이었습니다. 사전을 뒤져보니 담쟁이덩굴은 지금상춘등(地錦常春藤)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담쟁이덩굴은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에 붙어서 자랍니다. 덩굴손은 잎과 마주나고 갈라지며 끝에 둥근 흡착근(吸着根)이 있어 담 벽이나 암벽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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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도  담쟁이 덩굴은 전신주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졌나 봅니다.

취업난에 불경기에 감원소식과 구조조정 등 연일 들려오는 경제의 적신호에 낙담하셨나요. 멋있게(?) 변신한 전신주를 보면서 잠시나마 우울했던 기분을 전환해 보시면 어떨까요. 



자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모든 게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자연이 준 선물을 예쁘게 받아들이면 거대한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이 되지만 그저 그렇게 별것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냥 아무 것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전신주가 빚은 아름다운 모습. 자연의 생명력이 낳은 재밌는 모습. 이런 것들이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줍니다. 인간은 생경함에 다시금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어떠세요. 자연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느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삶은 의미있고 색다른 경험과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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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도로 규칙을 어기고도 되레 큰소리 왜?

잘못 들어온 일방통행 도로 규칙 어긴사람이 큰소리?

일방통행도로에 불법으로 들어와놓고 오히려 후진하라는 운전자?


일방통행로는 한쪽방향으로만 차를 몰아야만 하는 도로입니다. 필자가 거주하는 인근 마을엔 일방통행로가 적잖게 있습니다. 일방통행로엔 반대편 차량이 진입해서는 안되며 잘못 진입했을땐 비상등을 켜고 다시 돌아가줘야만 통행이 원활합니다.



오전에 아이를 태우고 처가 가는 길에 일방통행로를 달렸습니다. 주택가 도로다보니 양 옆으로 차들이 주차돼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방통행로를 빠져나가는 것도 아슬아슬했습니다.

그런데 저쪽방향에서 이쪽으로 차가 한 대 달려오더군요. 필자는 경적을 짧게 넣어 그 운전자에게 진입을 잘못했다는 신호를 했습니다. 그런데 글쎄 이 운전자는 막무가내로 달려오더군요. 어느새 필자의 앞쪽에 차를 세우고선 필자더러 후진을 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더군요. 자기 집앞이 조금만 가면 된다고 말하더군요. 

필자는 내키지 않았지만 후진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뒷차들이 연속으로 후진을 해야 했기 때문에 후진을 못하겠다면서 경적을 울리더군요.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뒤를 보니 이미 차가 여러대 진입해 있더군요.

하는 수 없이 일방통행을 잘못해 진입한 운전자한테 후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게 버럭 화를 내더군요. 조금만 양보하면 자기 집앞인데 배려해 주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그래도 후진하지 않자 육두문자를 사용하더군요. 이 사람의 이론은 이랬습니다. 내가 후진을 하게되면 뒷차들도 알아서 후진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애당초 이번 일의 잘못은 진입을 거꾸로 한 그 분한테 있고 화를 내도 내가 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옆자리에 아이가 있어 참고 또 참았습니다. 또 진입을 잘못했으면 내게 양해를 구하는 게 우선이고 그 양해는 필자의 뒷차들에게도 일일이 구해야 하는 게 올바른 예절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이 운전자는 내게만 화를 내더군요. 아마도 평소 자기 집앞이라 일방통행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달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적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울렸습니다. 육두문자가 곳곳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이 운전자는 후진할 생각을 않더군요. 참다못한 필자의 뒷 운전자 한분이 그 황당(?)한 운전자에게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하니까 그제서야 그 진입을 잘못한 운전자가 후진하더군요.

진입을 잘못한 운전자는 일방통행 법칙을 따르면 많이 돌아야 하기 때문에 화를 낸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사소한 것은 어겨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을 어기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러 사람한테 피해를 끼쳤습니다.

그 분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봤습니다. 집앞을 두고 멀리 돌아온다는 것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편하다고 해서 여러 사람에게 불편을 줘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일방통행로로 지정했으면 이를 지킬 의무도 있지 않을까요.

일요일 오전부터 육두문자를 듣게 되고 시끄런 경적소리까지 들으니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질서를 지키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질서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글로써 오전의 찜찜했던 기억을 지워버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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