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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1주기…비도 삼켜버린 잊지 않겠다는 약속

1년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픈 사연 가슴속 길이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픈 사연 국민들 가슴속 오래 남았으면




5월23일은 참으로 슬픈 날입니다. 또한 슬프다 못해 감격적인 날입니다. 슬프고 감격적이고 무슨 역설일까요. 23일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들의 마음입니다. 슬픈 날은 노짱을 보내서 슬프고 감격적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잊지않고 다시 찾아줘서 그러할 것입니다.  

하늘이 몹시도 슬펐던 모양입니다. 국민들의 마음도 그랬나 봅니다. 봉하마을은 서거1주기를 앞두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우로 변했습니다. 비도 국민들의 추모의 마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남녀노소,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줄에 줄을 이어 봉하마을로 속속 추모를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이른 아침시간부터 계속된 추모열기는 오후시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부엉이바위로 오르는 추모열기.


노무현 대통령 1주기, 대통령님을 만나러!

봉하마을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추모객들은 봉하마을 입구에서 아예 교통이 통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자 마을 외곽의 주차장과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비를 맞으며 걸어서 추도식 행사장까지 들어왔습니다.
 
이런 추모객들의 행렬은 마을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1주기, 빗속 사진전 사람들은 추억을 되새기고
추모객들은 노짱을 사진전으로 우선 만납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연보와 사진, 유품 등이 전시된 추모전시관에는 길게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또, 노짱을 소재로 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마을회관 등지에는 추모객들이 길게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재단 측은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이 10만 명(경찰 추산 3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임을 위한 행진곡서 상록수로 마무리
노짱의 1주기 추도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해 '상록수'로 마무리되면서 추모객들의 마음을 적셨습니다. 하늘도 슬펐던지 비가 몹시도 추적추적 내립니다. 거칠줄도 모르고 쏟아집니다. 

이날 임을 위한 행진곡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장중한 선율로 불렸고 추모객들도 따라 부르며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추모객들의 눈시울은 갑자기 붉어집니다. 얼굴을 타고 내리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하기도 힘듭니다.



노무현 대통령 1주기, 노란 리본과 노란 플래카드
추도식이 열리던 23일 김해 봉하마을에는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노란 리본과 플래카드가 물결쳤습니다.

리본과 플래카드에는 '그 시절을 다시 만듭시다', '사랑합니다', '당신의 뜻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못할 나의 캡틴', '당신이 그립습니다' 등 고인을 그리워하는 한줄짜리 글귀가 담긴 노란 리본이 마을 입구부터 행사장 일대 곳곳에 수만 개가 내걸렸습니다.

또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등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문구가 들어간 플래카드도 비에 젖은 채 추모객을 맞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잊지 말고 내년에도!
올해의 추도 열기는  부산대 공연을 끝으로 조용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는 마무리가 아니고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마음들이 중요합니다. 그분이 남긴 그 평범한 뜻을 조용하게 되새기면서 내년에도 추도열기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오늘은 그 분이 남긴 그 뜻을 생각하면서 이번 한 주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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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짱과 민주주의, 8일간의 이야기 이곳서?…민주공원에 노무현 전대통령 흔적이?

노짱과 노무현 대통령님, 노무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 어떤 단어가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까. 노짱의 영결식이 5월29일 치러졌습니다. 그 뜨겁던 추모열기는 채 3주도 안돼 서서히 가라앉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노짱에 대해 거친 언변을 마구 토해냅니다. 정가에서조차도 노짱의 거룩한 정신을 당리당략으로 혹은 정쟁으로 치고 받습니다. 그러는 사이 노짱의 추모열기도, 그 분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숙제도 서서이 익혀져 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역사가 변해도 그 분이 남긴 흔적과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비록 일부 사람들과 일부 언론의 엉뚱한 재평가 속에서도 그분은 영원히 우리곁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의 발자취가 그리워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1. 노무현과 민주주의-그 8일간의 이야기
부산민주항쟁을 기념해 만든 기념관이 있습니다. 바로 부산민주공원입니다. 이곳은 그래서 민주주의 정신이 흘러 넘쳐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을 기리는 기획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는 7월5일까지 계속될 이 ‘노무현과 민주주의-그 8일간의 이야기(Roh, Moohyun and democracy - that the story of eight days) ’ 기획전은 부산민주공원 기획전시실에서 열립니다.


작가는 2009년 5월23일 노짱께서 봉화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서거하신 그날부터 7일간의 국민장과 그 다음날까지를 기점으로 8일간 국민들에 의한 노짱과 민주주의에 대한 표현을 담았습니다.







2. 작가의 눈에 비친 노무현과 민주주의
작가는 “자료를 준비하면서, 대다수의 국민들과 누리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한국 민주주의의 죽음과 동일시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작가가 본 그들은 이 동일시되는 2가지의 죽음에 대한 애통과 분노 그리고, 자신들이 지키지 못한 미안함을 내보이기도 합니다. 추모와 혼재된 이 짧은 기간에 그들에겐 곧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어 졌고, 노무현이란 한 인간사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담론을 각각 표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국민적인 참여 예술품들은 창작자들이 짧은 순간 솔직히 드러낸 자신들의 감정과 생각의 표현들이므로 더욱 생생하게 관람자들에게 전달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3. 블로그가 작품 중심으로!
이번 기획전의 전시물들은 노짱의 서거 당일인 5월 23일부터 국민장 다음날인 5월 30일까지 블로그를 중심으로 “민주주의”란 단어 검색을 하여 일자 별로 채집한 것입니다.

작가는 블로그에 게재된 작품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자발적인 감정의 표출일 뿐 더러 대중의 밑바닥에서 분출하는 감정들의 모음들이라고 말합니다. 유명한 블로그도 있고 그렇지 못한 블로그도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도 있고 다음과 네이버 사이월드 블로그들이 골고루 망라돼 있습니다.



4. 8일간 종이신문 1면도 작품으로

8일 동안의 대표적인 국내 종이신문의 1면을 모아 작품화시켰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실제 쓰이기도 했던 시각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사진들과 8일간 우리 국민들이 추모하면서 남겼던 글들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추모열기가 오롯한 곳입니다.




5. 노짱의 흔적과 작가의 열정이 서려 있는 곳
노짱의 서거로 갑작스럽게 닥친 공동체의 슬픔 앞에 우리는 ‘노무현’과 ‘민주주의’란 화두로 온 국민이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오늘날 우리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살 것이냐고. 그 분이 남긴 과제를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고. 어떠세요. ‘노무현’이란 단어가 지금 현재는 어떤 느낌으로 와 닿습니까. 한때의 슬픔인가요, 아니면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조타수인가요?


오늘 하루는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해 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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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짱, 이곳이 당신의 또다른 고향 아시죠…이곳 꼭 보세야죠

노짱에겐 고향이 두 곳 있습니다. 한 곳은 태어나 자란 김해 봉하마을입니다. 또다른 고향은 정치적 고향입니다. 그곳은 다름아닌 부산 동구지역입니다.




이제 대통령님과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조금씩 다가옵니다. 대통령님에게 고향마을 못지않게 정치적 고향도 꼭 보시고 가시라고 부산 동구지역을 다녀봤습니다.


노짱, 잘 보세요. 이곳 부산 동구가 한명의 변호사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그리고 대통령으로 키워낸 곳입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정치를 시작하셨습니다. 골목골목을 성능 안좋은 메가폰을 메고 누비기도 하고, 때로는 마이크 없이 목소리로 외치다 목이 쉬기도 했던 그때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부산 동구 일대. 부산역과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1. 노짱을 제13대 국회 초선의원으로 키워낸 곳 부산 동구

1988년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됩니다. 1971년 제8대 국회이래 17년만의 소선거구제에 의한 선거였습니다. 부산 동구에서도 1명만을 뽑았습니다.


노짱은 이곳에서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이 되었습니다. 중선거구제 시절엔 중구와 동구 영도구가 한 선거구였습니다. 이 3개의 구에서 2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었습니다. 박찬종, 김정길 전 의원 등도 모두 이곳을 통해 배출된 국회의원입니다.
 
부산 동구지역은 대대로 야당성향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여당 후보가 별로 선전한 적이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전국구를 포함 민주정의당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을 획득했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이 과반수에 미달하는 이른바 여소야대국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짱은 초선의원 금뱃지를 처음으로 다셨습니다.


노짱은 당선사례를 하시려고 트럭을 타시고 손을 흔들며 달동네를 돌아다니셨습니다. 동구 곳곳엔 노짱의 감사 플래카드가 내걸렸습니다.

하지만 노짱은 1992년 3월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애석하게도 낙선하셨습니다. 그래도 노짱은 트럭을 타시고 동구지역을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에게 성원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부산역 대합실. 이곳을 통해 노짱을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부산역 광장. 이곳에서 노짱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호소하셨다.

초량동 산복도로. 산복도로는 높은 곳에 도로가 뚫려 있다.

초량동 일대의 올망졸망하게 붙은 집들.


2. 노짱이 선거운동 했던 부산역과 초량동 일대

초량동 일대는 부산역과 부산항이 인접해 있습니다. 부산의 많은 곳이 바다를 끼고 있지만 초량동 일대는 부산항이 손에 잡힐듯 한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노짱은 이곳에서 1988년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1992년 3월24일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1995년 6월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선거때마다 이곳 부산역에서 정견발표를 하셨고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부산역에서 시작, 차이나타운 거리(일명 텍사스촌), 초량동 주택가, 초량시장, 초량동 산복도로를 누비면서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동일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린 후보자 정견발표회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노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정동 산복도로와 수정동 일대.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 전경.

동구 수정동일대. 부산항과 저멀리 영도가 보인다.

수정동 산복도로와 수정산.


3. 노짱이 누비던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는 노짱이 초선이 되기 위해, 또 재선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던 시절 달동네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집을 짓고 살아 일명 하꼬방집이 참 많았습니다. 그곳을 일일이 누비시면서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선거운동을 하시다가 연탄을 나르는 주민을 보면 돕기도 하셨습니다. 요즘이야 소방도로도 개설되고 차로 움직이면 금방이지만 그 좁디좁은 곳을, 높은 동네를 선거운동 하시면서 돌고돌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렇게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수성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린 후보자 정견발표회엔 노짱의 인기는 단연 높았습니다.


범일동 일대. 저 멀리 안창마을도 보인다.

범일동 일대. 부산진시장과 좌성대가 보인다.

범일동과 좌천동 일대. 저 멀리 부산항이 들어온다.


4. 노짱이 지지를 호소하던 범일동일대

범일동 일대도 산복도로들 낀 동네라 선거운동 하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안창마을까지 다녀가려면 다리가 후들거릴만큼 피곤합니다. 좁디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걸어서 일일이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셨습니다. 

좁은 골목길이 많은 지역이라 범일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리는 후보자 정견발표회가 참 중요했습니다.
당시 노짱은 특유의 날카로움과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5. 오늘의 부산 동구

노짱 보이세요. 부산의 동구는 초량1동, 초량2동, 초량3동, 초량6동, 수정1동~수정5동, 좌천1동과 좌천4동, 범일1동, 범일2동, 범일4동, 범일5동으로 모두 14개동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당시와 비교해서 동이 많이 줄었죠. 인구가 줄어 통폐합되어 그렇습니다.


골목골목 누비던 당시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어떠세요.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요. 아니면 많이 변했나요.


6. 노짱을 기억하는 부산 동구 주민들

세월이 흘러 부산 동구지역도 많은 사람이 이사를 가고 왔습니다. 필자 역시 16년간 살아온 동구를 떠나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노짱 이야기를 꺼내자 주민들은 금방 기억해냅니다. 선거때마다 강한 인상을 남긴 특유의 제스처도 지어 보입니다. 식당을 운영하시던 분들은 소탈하게 먹성좋은 이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노짱을 배출한 정치적 고향 부산 동구 주민들은 노짱의 서거소식이 더 슬프게 와닿습니다.


노짱 보셨나요. 기억나세요. 이렇게 살가운 국민들을 뒤로 하시고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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