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변또 도시락… 그날 버린 도시락이 계속 떠오르는 이유

아버지 변또 도시락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집에서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소풍 날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 저는 변또를 천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도시락통이었습니다.

네모난 금속 도시락,

우리가 당시 ‘벤또’, 혹은 ‘변또’라고 부르던 그것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빈 변또를 다시 천에 싸서 들고 다닐 때면

안에 넣어둔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혀

👉 딸랑딸랑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그 소리를 떠올리는 순간,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아버지 변또 도시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싸주던 변또 도시락을 떠올리는 모습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 도시락이, 아버지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때 우리 집은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아직 도시화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고, 우리는 시골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도시에서 작은 사업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빚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사업을 접게 되셨습니다.

아버지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동업자가 회사 재산을 빼돌려 도주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상황은 더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빚 독촉이 이어지자

도시에 있던 집과 세간살이를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하루 종일 집에 계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는 빚을 갚겠다며

새벽마다 다른 집 일을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집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제 도시락은 아버지가 싸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락 반찬은 늘 비슷했습니다

김치, 오이무침, 나물 등 그날그날 밭에서 따온 채소로 만든 반찬이었습니다.

대부분 집 주변에서 키운 것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을 나가셨고,

집안 형편도 늘 빠듯했습니다.

그래서 반찬을 따로 준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생선이나 고기 같은 반찬은

도시락에 쉽게 올라올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도시락은 가장 건강한 밥상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달랐습니다.

👉 늘 비슷한 채소 반찬이 지겨웠습니다.

👉 그리고 그게 괜히 창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루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제가 소도 아닌데 왜 맨날 풀만 먹어요.”

친구들의 도시락은 달라 보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반 친구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요즘처럼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던 때였습니다.

도시락을 아예 못 싸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교실에서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시락은 제 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계란말이, 삶은 달걀, 멸치볶음.

어떤 날에는 시골에서 보기 힘든 생선 반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형편이 더 나은 집 아이들의 도시락에는

고기 반찬이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반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제 눈에는 달라 보였습니다.

👉 계란 하나조차 쉽게 먹기 힘든 집이었습니다.

👉 그래서 더 부러웠습니다.

생선이나 고기는

아예 도시락에 들어갈 수 없는 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날, 도시락을 버렸습니다

점심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반 친구들이 하나둘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금속 도시락 뚜껑 여는 소리,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교실 안에 가득했습니다.

저도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지 못하고 한참을 그대로 들고 있었습니다.

괜히 주변 눈치가 보였습니다.

친구들 도시락 사이에 제 도시락을 펼치는 순간

괜히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교실에서 변또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 모습
친구들 도시락 사이에서, 제 도시락은 유난히 작아 보였습니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부담스러운 시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그날은 결국 참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없는 학교 뒤편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도시락을 그대로 버렸습니다.

뚜껑을 닫는 소리조차 크게 들릴까 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돌아섰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밥 다 먹었어?”

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응, 맛있게 먹었어.”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오늘 도시락은 어땠냐.”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맛있었어요.”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배는 부르지 않았지만,

속은 더부룩했습니다.

👉 밥을 먹지 않아서가 아니라

👉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새벽에 변또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는 모습
그날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제 도시락을 싸고 계셨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집 일을 돕느라 늦어져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처럼 아버지가 밥을 차려주셨습니다.

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도시락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도시락이 어땠는지, 반찬이 어땠는지

평소라면 한 번쯤 물어보셨을 텐데

그날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괜히 밥을 먹는 손이 어색해졌습니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크게 들렸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날 아침, 아버지는 분명 도시락을 싸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녁에 가져온 도시락은

너무 깨끗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밥풀이나 반찬 자국이 조금은 남아 있었을 텐데,

그날은 마치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말끔했습니다.

수돗가에서 일부러 여러 번 씻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걸 보면서도

아버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더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변또 도시락은 그저 그런 밥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자라서 고향을 떠나 살게 되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키우게 되었습니다.

먹고사는 형편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예전처럼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그 시절의 가난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어린 시절의 일들은

그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던 시절 대신

편의점 음식과 외식이 익숙해졌습니다.

나라 전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귀하던 음식들이 이제는 흔해졌습니다.

그렇게 세상도, 삶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시절의 기억도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 가득 퍼지던 도시락 냄새와,

친구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던 그때의 분위기.

그 시절 함께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겠지만,

👉 어쩌면 저처럼

👉 그때를 한 번쯤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른 이유

어린 시절 소풍 날 찍었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반 친구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고,

그 사이에 어린 시절의 제가 서 있었습니다.

변또를 천에 싸서 몸에 둘러맨 채,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 도시락… 누가 싸줬더라.”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곧바로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그 순간, 가슴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마치 막혀 있던 물이 터지듯 밀려왔습니다.

아침마다 조용히 부엌에 서 계시던 모습,

서툰 손으로 반찬을 담으시던 모습,

아무 말 없이 도시락을 내밀던 그 손까지.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 그 도시락은 아버지 변또 도시락이었고,
그냥 밥이 아니었다는 걸,

👉 말없이 건네던 마음이었다는 걸.

그 도시락에 담겨 있던 것

그건 단순한 도시락이 아니었습니다.

김치와 나물 몇 가지가 담긴 평범한 반찬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는 다른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빚에 쫓기던 상황에서도

아침마다 시간을 내어 준비했던 마음,

익숙하지 않은 부엌에서

서툰 손으로 하나씩 담았을 정성,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 시간을 버텨내고 있던 아버지의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그걸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시락 속 반찬만 보았습니다.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시간,
아버지의 침묵,
아버지의 마음은 보지 못했습니다.

반찬이 풀투성이라며 투덜거렸고,

도시락을 들고 가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 앞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순간이 두려워

괜히 자리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가장 소중한 것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때 몰랐을까요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시락을 보며
무엇이 더 좋은지, 무엇이 더 부족한지만 따지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귀해 보이는 반찬,

조금 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도시락을 보면서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부끄러워했고,

👉 그래서 외면했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저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가장 소중한 것을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 변또 도시락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늘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잊게 되고,
그래서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제가 버렸던 건
김치와 나물이 담긴 도시락이 아니었습니다.

새벽마다 말없이 일어나던 아버지의 시간,
서툰 손으로 반찬을 담던 아버지의 정성,
그리고 무너진 마음을 숨기고도 자식을 챙기려 했던 아버지의 하루였습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밥상 앞에서,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주었던 한 끼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그 기억 속에 부모님의 시간이 있다면,
“밥 드셨어요?” 하고 한 번쯤 안부를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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