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유래 의미 아픈역사 및 설날 세배법 미처 몰랐던 비밀
올 겨울은 여느해보다 유난히 동장군의 기세가 사납습니다. 하지만 윤서원 시인의 '봄은 찾아온다'는 시처럼 따뜻한 봄은 사나운 동장군을 뚫고 반드시 찾아 옵니다. 흔히 설날이 낀 음력 1월을 가리켜 맹춘이라고 합니다.
한자어 맹(孟)은 처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 춘(春)은 말 그대로 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맹춘(孟春)이란 말은 말 그대로 초봄을 뜻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봄철이면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예축적(豫祝的) 의미의 세시풍속이 유독 우리 민족에게는 많습니다. 1월(음력)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은 바로 설날입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역시 한가위와 설입니다. 추석과 더불어 부모를 찾아뵙기 위해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민족에게서 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명절입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흔히 말하는 명절은 세시풍속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기념하는 날을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예로부터 산소에 올라가 제사를 올리는 것을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4대 명절에 행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설날의 의미는 각별했습니다.
설은 새해의 첫 시작을 알리는 날을 기념하는 우리 민족의 크나큰 일종의 행사입니다. 설은 묵은 해를 정리해서 보내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는 첫날입니다.
설날이름 왜 하필이면 설일까?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명절인 설날은 음력 1월1일을 가리킵니다. 흔히 설이라고 할때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는 뜻이 그 의미라고 합니다. 이 때의 '사린다'는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삼가다’ 또는 ‘조심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설날의 의미는 한해 내내 무탈하고 무사하게 지낼 수 있도록 새해 첫날부터 몸과 행동을 조심하며,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입니다.
설날의 역사
우리 민족에 있어서 양력의 도입은 일대 대사건이었습니다. 음력을 폐지하고 양력을 택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때 개화당의 김홍집 내각에 의한 것으로 가히 혁명이라고 할만큼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1895년 당시에는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건양1) 1월 1일이라고 고종황제의 칙명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또한 세력(歲歷)을 태양력으로 바꾸고, 나라에서 쓰는 연호도 양력을 세운다는 뜻의 건양(建陽)이라고 고쳤습니다. 설날은 1985년부터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그 후 민속의 날로 정했던 구정을 1989년부터 ‘설날’로 개명하는 동시에 3일간의 연휴로 한 것입니다.
설날의 유래 어원 어떻게 시작됐을까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습니다. 우선 '섧다'라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선조때 이수광의 '여지승람(舆地胜览)'에는 설날을 '달도일'로 표기했습니다. 이 때 '달'은 슬프고 애달파한다는 뜻이며,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입니다. 한해가 지남으로써 점차 늙어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이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설날의 또 다른 어원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說)입니다. 우리 민족의 각종 가록을 담은 세시기(歲時記)들에는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가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몸과 마음을 바짝 죄여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말뿌리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원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적, 문화적 낯섦의 의미로 생각되여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이를 말하는 즉 '몇 살(歲)' 하는 '살'에서 비롯됐다는 '연세설(年歲說)'도 있습니다. 이 밖에 한해를 새로이 세운다는 뜻의 '서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였다는 설도 있다.
설 또는 설날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정초(正初),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歲初), 년두(年頭), 년수(年首), 년시(年始)'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한자말들은 '설날'만큼 정감어린 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설날의 의미는?
이 ‘설’의 의미에 대해 ‘설날 문화 가족’이란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다.
"설날은 한자로 원일(元日), 세수(歲首)라고 쓰며, 그것은 일 년의 첫째 되는 날이란 뜻이다. 또한 첫 출발일이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날을 삼가는 날(愼日)이라고 하여 중요한 날인 만큼 행동을 경망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밖에 ‘설’의 의미에 대해 처음 날, 비롯함의 날, ‘설다’, ‘낯설다’의 어간 ‘설’에서 온 듯함, ‘선날’에서 왔음, 시단(始旦)이나 원단(元旦)을 설이라 불렀음, 몸을 사리다의 ‘살’에서 옴, 산스크리트 말 ‘살’에서 왔음 등 다양한 해석이 가해졌다."
이를 보면 설날의 ‘설’은 ‘살’에서 왔다고 합니다. ‘살’은 ‘나이’나 ‘해’를 뜻하는 ‘살(歲)’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해마다 세는 명절 ‘설’이란 말은 ‘나이’나 ‘해’를 뜻하는 살(歲)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명절로 지내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隨書)'에는 신라인들이 새해의 아침에 서로 례를 차려 축하하고 왕이 잔치를 베풀며 일월신에게 절하고 례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참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다. 이때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도 비슷하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신라때에도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포함된 큰 제사를 1년에 6번씩 지냈다고 하는데 이를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생겼을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설을 9대 명절의 하나로 즐겼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을 4대 명절의 하나로 지냈는데 이미 이때에는 설이 지금처럼 우리 겨레의 큰 명절로 자리잡았을것으로 보입니다.
설 언제부터 쇠기시작했을까?
우리가 오늘날 쇠고 있는 설은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사서에서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을 배례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 민족에 있어서 그 역사가 무척이나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설은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만큼 이 날을 아무 탈 없이 보내야 1년 365일이 평안하다고 하여 지극히 조심하면서 가만히 들어앉는 날이란 뜻에서 설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설은 다른 이름으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보통 우리가 부를때 설이라고 합니다.
설은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묵은 1년은 지나가고 설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데,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작은 설 '아치 설'이 뭐길래
흔히 설날이 다가오면 '아치 설'이란 말을 듣게 됩니다. 예전에는 작은설을 ‘아치 설’이라 했습니다. 순수한 우리나라 말에 ‘아치’는 ‘작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치’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어 ‘아치 설’이 ‘까치설’로 되었다고 합니다.
설날이 되면 듣게되는 대표적인 ‘까치까치 설날’ 의 동요 속의 그 ‘까치’와는 뜻이 전혀 다릅니다. 옛날에는 섣달 그믐날에 아치 설이라고 하는 작은 설을 지내고 또 정월초하루에도 설을 지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설 차례를 실제로 따로 두 번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설날인 섣달 그믐날 밤 해시(亥時)에 진설을 해 놓고 차례의 일부 순서만 지내고 자정이 넘기를 기다렸다가 자정이 넘으면, 즉 해를 넘기고 나서 그 차례 상에서 그대로 나머지 순서대로 정월초하루 설 차례를 지내습니다.
설날 세배와 덕담문화
설날 아침과 정초에 어른에게 하는 큰절을 세배라고 합니다. 새해 첫날 큰절을 하면 어른은 덕담을 내려 줍니다. 덕담의 법도는 어른이 먼저하고, 어른이 아랫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전에는 "올해 과거시험에 급제했다"며, "올해는 시집 갔다"며, "올해 득남했다"며, "올해 큰 부자가 됐다"며, "복 많이 받았다"며 등등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여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웃 어른에게 세배를 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덕담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하는 데, 이것은 전통 예의에 어긋납니다. 큰 절을 올리는 사람은 겸손하고 조용하게 큰절을 하고, 어른이 곧바로 덕담을 하면 아랫 사람은 그제서야 '올해도 건강하시고, 보살펴 주십시오' 정도로 답례하면 됩니다.
설날 왜 떡국을 먹을까
설날이면 “새해의 시작인 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떡국을 먹는 전통이 생간 것으로 짐작됩니다. 떡국 속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했고, 썬 떡의 둥근 모양은 화폐를 형상화하여 재물도 많이 들어오길 바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을까요. 떡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나와 있는 문헌은 없습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담은 '열량세시기(1819)'와 '동국세시기(1849)'에는 제례음식으로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떡국을 꼽고 있습니다. 정조차례(正朝茶禮, 정조는 설 아침을 뜻하는 말임)와 세찬(歲饌, 세배하러 온 손님을 위한 음식) )으로 꼭 필요한 음식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사학자로 문인으로 활동했던 최남선이 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따르면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아주 오래 된 것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된 것으로 떡을 주식(主食)으로 하던 우리 민족의 관습이 지속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백의민족의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설이 있을까?
중국에도 우리민족의 설에 해당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봄의 절기를 뜻하는 '춘절'이 라는 중국 최대의 명절입니다. 올해 춘절 기간은 2월 15일부터 21일까지지만, 고향길 행렬은 2월 1일부터 40여 일간 계속됩니다.
춘절 기간에는 빨간 옷을 입고, 빨간색 종이에 행운을 상징하는 글귀 또는 복(福)을 적어 거꾸로 문에 걸어놓기도 합니다. 이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고, 한 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전에는 설날을 음력으로 쇘지만, 지금은 양력 1월 1일만 쇤다고 합니다. 3~4단 찬합에 새우와 검정콩 등 의미가 담긴 여러 가지 음식을 조려 보기 좋게 담아낸 '오세치 요리'를 먹습니다. 설에 우리나라처럼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있는데 '당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멕시코에서는 집안에 돈을 숨겨 가족과 함께 찾은 뒤, 모은 돈으로 맛있는 식사를 즐긴다고 합니다. 식사 후에는 1년 12달을 의미하는 포도 12알을 먹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고 합니다.
불가리아는 '포카치오'라는 빵을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동전을 넣어 굽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빵을 잘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동전이 있는 빵을 받은 사람이 한 해 행운이 깃든다고 합니다.
설날은 근심되는 일은 삼가는 날의 의미
우리 조상들은 설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겨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매년 첫 해일․ 자일․오일에는 온갖 일을 꺼리며 조심하여 감히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를 '달도'라 하여 근심되는 여러 일을 금했다고 합니다. 설날이라는 말의 유래는 '섧다' '슬프다'에서 나온 것으로 몸을 사린다는 신일(愼日)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설날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차분하고 조용하고 올해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지면서 가족과 친지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로 설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요. 설날의 의미처럼 근심되는 일에 삼가 주의를 기울이며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