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꿈, 헌신짝처럼 버렸지 복수해주마"…껌의 복수가 시작? 껌의 복수가 무서워?

세미예 2010. 2. 3. 08:19

"어휴, 짬찜해. 이 좋은 옷을 다 버렸네 어떡하지."

"아참, 구두 바닥이 왜이래. 이 일을 어떡한다?"

"누가, 이렇게 더럽게 거리에 껌을 버렸어요."

"껌을 왜 거리에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참 답답한 사람들이네요."

"공중도덕 시민의식이 아직 바닥이네요."

"그러게요, 이런 게 참 안 좋네요."




거리를 가다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맣게 점으로 얼룩진 자국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껌자국입니다. 껌은 누구나 부담없이 즐기는 기호식품입니다. 


용도도 다양해서 졸음도 방지해 주고 입냄새도 제거해 줍니다. 최근엔 두뇌기능을 활성화 시킨다는 기능성 껌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씹고 버리고 나면 그야말로 혐오식품이 되고 맙니다.



주마등 같은 껌에 대한 안좋은 추억 

거리를 걷다보면 발밑에 딱 달라붙은 껌에 대한 안좋은 기억은 없으세요. 연인과 기분좋은 데이트 도중 공원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는데 껌님이 딱붙어서 단벌 신사복을 망가뜨린 아픈(?) 추억은 없나요.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다가 시내버스 좌석에 버려진 껌이 옷에 달라붙어 낭패를 본 적은 없나요. 


학창시절 졸다가 그 벌로 교내 바닥에 붙은 껌을 제거해본 적은 없나요. 껌에 대한 안좋은 추억은 껌에 대한 이미지를 흐려 놓습니다. 





멋있게 껌을 씹으려면?

고등학교 시절 학교내 일부 불량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학생들은 학교내에서 아이들에게 겁을 주려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취하는 행동엔 껌을 질겅질겅 씹고 신발을 접어신고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다닙니다. 그 당시 그들이 씹던 껌을 보면서 에티켓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껌 왜 떼어내기 어려울까

껌이란 놈은 한번 착 달라붙으면 도대체 떨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연인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아쉬워하는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껌의 이러한 특성은 지독한 괴로움입니다. 


껌은 왜 떼어내기 힘들까요. 바닥이나 옷에 붙은 껌을 떼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끈적끈적하게 접착하는 특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껌의 특성이 사람에게 씹는 묘한 기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껌제거 사회경제적 비용 막대

바닥에 딱 달라붙은 껌을 효과적으로 떼어낼 방법은 없을까. 해마다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인력을 동원해 끌개 같은 도구로 껌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도로 곳곳에 손상을 입히고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합니다. 외국에서는 껌을 제거하기 위해 뜨겁거나 차가운 물을 고압으로 살포하거나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을 이용해 껌의 화학적 결합력을 낮춘 후 고압의 물을 살포하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거리 곳곳에 붙은 껌은 시커멓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껌을 제거하는 데 드는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거리미관을 망치는 껌. 이쯤되면 '껌과의 한판 전쟁'이라도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껌제거 방법은 자신의 껌을 스스로 처리해야

거리의 껌 제거에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은 껌을 씹고나서 거리에 버리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와 처리하는 것입니다. '나 하나쯤이야'라느 생각으로 도로에 마구 버린 껌들이 오늘도 도로를 시커멓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거리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껌을 버리는 모습을 어린 학생들이 본다면 뭘 보고 배울까요. 껌껌껌, 안버리고 없애 깨끗한 거리를 꿈꾼다면 지나친 희망사항 일까요.


껌에도 에티켓 필요

껌의 매력은 질겅질검 씹는 맛에 있습니다. 특히 최근엔 기능성 껌까지 등장해 씹는 맛은 색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때나 질겅질겅 씹거나 마구 소리내어 씹다간 온통 껌씹는 소음으로 참 괴로운 삶이 되겠지요. 


껌도 에티켓을 지켜야 합니다. 공공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가급적 삼가해야 합니다.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라고 하겠지만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에 앞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