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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동 율리 알터유적 맞아?…금곡 율리 알터유적 왜 이토록 괴이할까?

세미예 2010. 12. 12. 09:05

"이게 뭐예요?"

"글쎄다. 그냥 평범한 바위같이 생겼는데?"
"아닌데요? 오래된 나무아래 요상한 바위가 있잖아요?"

"그러게요, 참으로 요상하게 생겼네요."

"에그머니나, 망측한 것 같기도 하네요. 내용이 조금 그렇쵸?"

"알고보니 참 귀중한 자산이네요."




사회복지관 아이들과 쉬는 토요일을 맞아 야외로 함께 나갑니다. 야외수업을 나가다가 오래된 당산나무를 발견하고 잠시 촬영을 하려는데 이상한 바위가 눈길을 끕니다. 아이들은 바위보다도 바위앞에 설치된 표석을 읽어보고 배시시 웃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기도 합니다.

아이들 웃음에 이끌려 바위앞에 설치된 표석으로 눈길이 갑니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 것일까요. 표석을 살펴보다 재밌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터유적-부산 금곡동-원시인-풍요-생산-아들-자손부산 북구 금곡동 율리부락 알터유적은 풍요와다산을 염원하는 유적입니다.


금곡율리 알터유적 키득키득? 알터유적? 그게 뭐예요?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 곳으로 달려가 봅니다. 제법 큰 표석을 읽어보니 요즘 아이들도 참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표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부산 북구 금곡동 율리부락에 위치한 금곡율리 알터 유적은 옛 사람들은 풍요와 생산을 염원하는 것이 생활의 첫번째 일이다. 이곳 금곡동 알터유적은 그러한 것을 잘 대변해주는 원시종교에 관련된 민속으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하여 여인들이 이곳에 찾아와 길쭉한 돌로 구멍을 갈며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 한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성혈(性穴)이라고 부르며 덴마크와 시베리아에서 발견되어 이렇게 명명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원시종교의 유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곡동에는 현재까지 3개가 발견되었는데 2개는 석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깨어 없어지고 1개소만 남아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 중에는 이것에 관하여 언제 만들어 졌는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자세한 내력이 끊어 진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에서 공식적으로 표석을 설치한 것입니다. 표석의 내용을 가만가만 살펴보니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을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필자는 웃음보다는 참 안타깝다는 마음이 더 앞섭니다.

금곡동-원시인-풍요-생산-아들-자손부산 북구 금곡동 율리부락 알터유적은 풍요와다산을 염원하는 유적입니다.


금곡율리 알터유적 의미? 알터유적 알고봤더니?
부산 북구 금곡동 율리부락 입구 사거리에 있는 화단에 보호수인 ‘율리 폭나무’와 함께 알터유적이 있습니다. 이 알터유적은 화강암의 풍화작용과 민속신앙의 풍습으로 바위에 성혈(性穴), 또는 풍혈(風穴)이라고 부르는 구멍이 여러 개 나 있습니다. 이 성혈들은 길죽한 돌로 구멍을 갈며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원했던 흔적들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옛사람들이 다산을 기원했던 성스러운 곳입니다. 


금곡율리 알터유적 후대의 무지로 사라져버린 귀중한 유적?

부산시에서 설치한 표석을 살펴봅니다. 표석을 보니 금곡동에 3기의 알터바위가 발견되었는데 2기는 석재로 사용되고 이것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표석을 살펴보니 안타까움을 넘어서 한심한 마저 듭니다. 혹자는 바위 하나가 뭐가 중요하다고 할 지 모르지만 흔한 바위를 통해 옛 사람들의 생활습성을 알아볼 수 있는 유적이기 때문입니다.





금곡율리 알터유적 재발견? 알터유적의 의미는?
부산 금곡동 율리마을에는 원시종교에 관련된 민속자료가 최근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옛 사람들은 풍요와 다산을 염원하는 것이 생활의 첫번째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온갖 위협으로부터 종족 보존을 보호하고 생활경제 차원에서 그랬을 것입니다. 생활하는데 있어서 풍요와 생산이 끊어지면 사람들은 고생할 수 밖에 없고 자칫 멸종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금곡동 율리마을의 당산나무 아래의 알터유적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여러개 뚫려 있습니다. 이를두고 성혈(性穴=Cup-mark)이라고 합니다. 이는 생산과 풍요를 비는 원시종교의 유적으로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금곡율리 알터유적 옛날 여인들의 간절한 소망은? 
이 큰 구멍의 성혈은 현대까지도 속신(俗神)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골 여인들이 이곳에 찾아와 길쭉한 돌로 구멍을 갈며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금곡율리 알터유적 사라진 2개의 알터유적?
이런 큰 구멍으로 된 성혈이 금곡동에서 현재까지 3개가 발견 되었는데 2개는 암석의 파괴로 없어지고 나머지 1개만 이렇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2개의 없어진 것 중 1개는 율리마을의 율리천 하류의 계곡에 있었는데 역시 호안공사를 할 때에 깨어서 석축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율리마을 옆 동네인 동원마을의 당산밑에 남아 있던 또 하나의 성혈(性穴)유적은 마을 안의 밭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옆집의 담을 쌓는 석재로 사용되어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금곡동-원시인-풍요-생산-아들-자손부산 북구 금곡동 율리부락 알터유적은 풍요와다산을 염원하는 유적입니다.


금곡율리 알터유적 문화재 보존노력 결코 소홀해선 안돼?

알터 유적 2개가 안타깝게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남은 1개의 유적이 많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부산시에서 설치한 표석 상태를 훑어봅니다. 때가 끼고 풍화작용으로 벌써 글들이 조금씩 읽기가 불편합니다.

이 알터유적은 사람들 접근이 너무나도 쉬워서 금방 훼손 우려가 있습니다. 사라지고 난뒤 기록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적을 보존하는 노력도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요.
 




금곡율리 알터유적 아이들에게 뭘 들려주어야할까?
아이들에게 알터유적을 간단하게 소개하려니 참 망설여집니다. 첫 번째 이유는 3개중 2개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성혈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는다고 하지만 유적에 관해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알터유적을 지나오면서 부산시에서 설치한 표석대로 대충 설명을 해주고 다음번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어떠세요? 우리의 문화재 보존노력 괜찮은 것일까요. 가히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