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옷차림때문에 생긴 황당한 해프닝…저분 혹시?

세미예 2009. 1. 9. 02:29

옷은 몸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나아가 외양을 꾸며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복장과 어떤 차림새를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직업이나 취미 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어떤 복장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회사내 부서를 옮김에 따라 출근시간대가 달라졌습니다. 출근시간대가 달라지다 보니 밤에 다소 늦게 퇴근하고 대신 오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러다보니 해프닝이 생깁니다. 해프닝은 웃고 끝낼 수 있지만 두고두고 웃픈 사연으로 남습니다. 따라서 이런 웃픈 사연이 남지 않도록 조심하고 이웃이라도 서로 유의하는 게 필요합니다. 


청바지-복장문제가 된 청바지.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 저분 혹시?

최근 오전에 가까운 곳에 볼 일이 있어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외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몇 번 그런 차림으로 바깥 볼일을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인가 아파트 아줌마들이 소곤거리곤 했습니다. 필자는 처음엔 설마 그게 내 얘기이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몇 번 마주쳤지만 필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줌마들이 '최근 실직해 오전에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이 늘어나 걱정이다'라고 말하더군요. 필자는 '방송뉴스에 나오는 사람들 얘기겠지'라고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필자는 '경제난 여파가 바로 우리 주변까지 미쳤구나'라는 안타까운 생각으로 그 말들을 듣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얘기는 바로 필자를 두고 한 것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아줌마들이 오해를 한 것이죠.


이웃의 걱정에 아찔?

"○○엄마 괜찮슈?"


하루는 집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한 아주머니가 "아이도 자라는데 남편 벌이가 적어서 고생이 많죠?"라고 하더랍니다. 집사람은 흔한 얘기이고 안부 삼아 하는 말인줄 알고 그저 아무런 감정없이 대충 듣고 대충 흘렸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계속 말을 걸더랍니다. 살림이며 생계며 꼬치꼬치 묻더랍니다. 집사람은 대충 건성으로 대답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엄마 괜찮슈?"라고 묻더랍니다. 집사람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뭐가요?"라고 물었더니 "생활이 제대로 되유?"라고 되묻더랍니다.


집사람은 하도 이상한 질문에 왜 그러는 지 영문을 모른채 필자에게 아줌마가 이상한 말들을 자꾸 하더라는 말을 하더군요.


우리 부부는 그때까지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습니다. 아니 알 수도 없었죠. 왜 그런 질문을 하는 지 묻기도 뭐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세야죠?

하루는 1층으로 나와 잠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아파트의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을 불쑥 걸더군요.  

"아이들을 생각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슈?" 

"아, 예. 그래야죠."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지 않겠슈?"

"무슨 말씀이신지?"

"벼룩시장 뒤져보면 새로운 직장 구할때까지 아르바이트 자리 많던데."

"무슨 말씀이신지?"

"매일 오전 돌아다니는 게 안쓰러워 그래요."


그제서야, 그 분이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랬구나. 사람들이 소곤거렸는 게 바로….  그제서야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화도 나고 무안했습니다. 그분께 여차여차해서 오전에 그런 복장으로 다녔다는 말을 꺼내자 오히려 무안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건 그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코미디의 한 장면을 겪고보니 이건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난감했습니다. 





복장이 부른 오해… 복장이 무슨 죄?

누구나 복장을 자유롭게 입을 권리가 있습니다. 입어서 편하고 보기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중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타인이 보기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이젠 남의 시선까지 고려해서 복장을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옷은 누구나 자유롭게 입을 수 있건만 왜 옷에 의해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이 파악돼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번 일로 사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옷과 예의,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심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해가 부른 해프닝 그러나… 11년전 악몽이 주마등처럼

해프닝이었지만, 실제 필자는 11년전 실직의 경험을 했습니다. IMF 파고로 말미암아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어면서 그때의 아픈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보니 출근할 직장이 없었습니다. 출근 복장으로 무턱대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곳 저곳을 하염없이 걸어다녔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느냐는 고민거리'를 하다가 하루가 훌쩍 흘러갔습니다. 등산도 다니고 숱한 이력서를 쓰서 보내는 게 일과의 전부였습니다.


가족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 발버둥쳤었습니다.  집을 나설땐 정장차림에 서류봉투를 들고 다녔습니다. 당장이라도 취직할 곳이 있다면 곧장 이력서를 넣기 위해서였죠. 그런 악몽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주위에 어려움을 당한 분이 있다면 따뜻한 말 먼저 건네자

경제난이 날로 심해져갑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만큼 추락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들려옵니다. 구조조정 얘기만 들려올 뿐 새로 취업했다는 얘기는 뜸합니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해야할 판에 무슨 신규채용을 하겠습니까.


이런 살벌한 시기에 혹시 주위에 어려움을 당한 분이 있다면 호기심과 재미삼아 화젯거리로 올릴 것이 아니라 서로 아파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