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남의땅 불법경작한 농작물 훔치면 절도죄 성립될까 안될까

세미예 2008. 9. 2. 08:24

"남의 땅에서 불법으로 경작한 농작물 훔치면 절도죄가 안될것 같아요."

"어차피 남의 땅에서 불법으로 경작한 농작물인데요."

"불법 경작한 농작물 가져갔다고 해서 뭐 대수겠어요."

"아닌데, 그래도 남의 것을 가져가면 그 자체가 절도죄가 성립할텐데요."

"어차피 불법이니 피장파장 아닐까요."



남의 땅에 불법으로 경작한 농작물 훔치면 절도죄 성립될까요 안될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최근 부산 온천천을 산책하다가 어르신들의 싸움현장을 우연히 지나게 되면서 품게된 궁금증입니다. 남의 땅에서 불법으로 경작한 농작물을 따갔다고 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속사정 속으로 떠나 볼까요.


재개발 지역.


사용자 삽입 이미지앙상한 건물에 비해 농작물의 푸르름이 그나마 삭망함을 잊게해준다.


한 재개발지역서 생긴 일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한 재개발 현장은 재개발사업이 표류된 채 장기간 방치돼 있습니다. 이곳엔 철조망도 엉성하게 쳐놓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인근 주민들이 그 넓은 땅 곳곳을 경작해 고추, 호박, 고구마를 심는 등 여러가지 농작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땅이 넓다보니 경작규모가 제법 큽니다. 


철조망 치고 표지판 무시하고 불법 경작

이곳 철조망 표지판엔 농사를 지으면 안된다고 되어있습니다.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빈땅이라 여기고 재미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지을 만한 공간이 없다보니 자연을 가까이 하고픈 도시민들의 욕구같은 게 있나봅니다.  아니면 웹빙시대를 맞아 무공해 농작물을 먹기위해서 인것 같습니다.


현재 이곳의 농작물은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서인지 잘자라 풍성합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며 제법 탐스런 호박이며 무성한 고구마며 농촌을 방불케 합니다. 



남이 키운 농작물 탐낸 것이 화근

문제의 발단은 한 어르신이 그 농작물을 탐을 낸 것이죠. 그 어르신이 인근 주민들이 경작한 곳에 들어가 이것 저것 따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농작물 주인한테 들킨 것이죠.


곧이어 싸움이 시작된 것이죠. 농작물 주인은 남의 것을 훔쳤으니 절도라는 것이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 어르신은 처음엔 원래 땅주인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 농작물은 주인이 없는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중에 싸움의 농도가 짙어지니까 남의 땅에 불법으로 농사를 지어놓고 무슨 큰소리냐고 말씀하시더군요. 경찰에 가도 서로가 잘못했으니 피장파장이라는 식이었습니다. 


필자는 듣다보니 이 분의 말씀도 저 분의 말씀도 다 일리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남의 농작물을 주인의 허락없이 딴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밭을 일군 정성과 그동안 기른 노력은 비록 남의 땅이라도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철조망 너머로 농작물들이 제법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농작물을 경작하거나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경고문.


남의 땅에 불법으로 농사 지어도 농작물 가져가면 절도죄 성립

집에 돌아와 궁금증이 생겨 평소 친분이 있는 경찰과 변호사에게 문의했습니다. 이 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비록 남의 땅에 불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농작물 주인의 허락없이 가져간 것은 절도죄가 성립된다고 합니다. 농작물은 농사를 지은 사람의 소유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신에 땅주인은 그 농작물 주인을 상대로 재물손상죄를 물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이 있더군요. 만약, 땅주인 허락없이 심은 수목의 경우 농작물과 달리 수목을 심은 사람이 그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서로 화해하고 끝낸 보기좋은 어쩌면 싱거운 결론

어르신들의 싸움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궁금하시죠. 싸움이 길어지자 주변의 다른 어르신들이 싸움을 말리시더군요. 그러면서 농작물을 딴 어르신에게 농작물 주인한테 술한잔이나 밥한끼 사라고 중재를 하시더군요. 두 분은 중재를 받아들여 악수하고 밥을 함께 먹기로 약속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싸움의 결론은 서로 화해하고 끝났습니다.


싸움치고는 싱거운 결론이었지만 마지막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우리 주변엔 사소한 다툼만 생겨도 법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많은 데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오늘까지도 이날의 아름다운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덕분에 법공부와 더불어 좋은 인생공부 했습니다. 이래서 우리 사회는 살만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