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어버이와 이별보다 더 슬픔?…부모님 1주기 기일에 와락 슬픔이?

세미예 2011. 7. 5. 06:00

"어제인듯 생생한데 벌써 1주기가 다가왔어요."

"어버이 살아신제 제 섬기기 다하여라."
"아버님을 보내고 나니 더 그리움이 간절하네요."
"살아 계실때 효를 더 많이 했어야 했는데."
"어버이 보내고 나니 정말 아득하네요.

숱한 선현들의 가르침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버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사람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어버이가 떠나고 나면 그 그리움과 사무침은 뭐라 표현할 길이 없을만큼 애잔합니다.

아직도 현실같고 너무나도 생생한데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은 뭐라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그 빠른 세월속에 우리의 기억들과 추억들도 스러져갑니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
아버님 1주기 기일을 맞았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천붕을 겪고 보니 막막함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또 어떻게 지내야할 지 답답했었는데 어느새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슬픔속에서도 1년은 또 그렇게 흘렀고, 어버이에 대한 사랑은 세월의 무게앞에 조금씩 흘러 내립니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아버님은 지난해 이맘때 다시는 못오실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아버님 유품을 정리하면서 당시 가슴이 메어짐을 느꼈습니다. 마지막까지 고통이 짓누를텐데도 손자손녀들 줄 용돈 목록과 생일 등을 깨알같이 일일이 당신손으로 마지막까지 챙기신 그 사랑을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당신의 가없는 내리사랑에 차마 슬픔을 느껴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효도하려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버님에 대한 1주기 기일을 맞아 착잡함과 동시에 마음의 번요가 밀물처럼 다가섭니다. 공자의 樹欲精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가만 두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한 자 한 자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아픔과 동시에 슬픔, 회한이 밀물처럼 다가옵니다.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나셨을까?
"조금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다면"

아버님은 말년에 갑자기 병환이 찾아오셨습니다.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날 것 같았는데 다시는 못오실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지금도 회한으로 다가오는 게 큰 병원에서 치료를 해드리지 못했다는 죄스런 마음입니다.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다면 '혹시나 기적처럼 일어나지 않으셨을까'라는 무거운 마음이 평소 생활속에 비수처럼 박혀 가슴이 무겁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아이들은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1주기 기일날, 왜 기일을 맞고 보내야 하는 지 이해를 못합니다. 할아버지가 어디로 떠났는지 아직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귀여워 하셨건만 당신의 손자손녀들은 남아있는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아, 불러보고픈 어버이!
이제는 불러도 다시는 대답할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저 세상에 계시는 아버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회한과 아픔이 동시에 교차되어 가슴속을 짓누릅니다. 이것이 사람이란 동물이 느끼는 가족애의 발로였을까요? 1주기 기일날을 맞으니 새삼 당신의 존재가 큰 산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