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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계단이름이 40계단?…이토록 아픈 사연 간직한 부산 40계단

한국전쟁 애환 부산 40계단 계단 갯수가 40개서 유래

원래 부산 40계단은 민족의 아픔 간직한 만남의 장소




"왜 다른 이름도 많은데 이름이 40계단일까요"
"이곳이 한국전쟁 아픔 간직한 곳이라고요?"

계단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내려가기 쉽도록 만든 건축시설입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면서 삶의 교훈도 되새겨 보곤 합니다. 말하자면 인생의 황금기와 추락기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일종의 인생 반성을 위한 계기로 삼곤 합니다.

사람의 편리함을 위해 만든 건축시설인 계단도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에 따라 색다른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부산에도 40계단이란 독특한 계단이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40계단일까요. 다른 이름도 많은데 40계단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40계단을 만나 보실까요.

 

 

☞ 최근부활의 노래 부르는 부산의 구도심
부산의 중구 등은 한때 번성을 누렸던 구도심입니다. 이들 구도심이 최근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한때는 부산의 중심으로서 번영을 누렸지만 부산 시청이 연제구로 옮겨간 이후 서면과 연산동 일대로 급속하게 중심축이 쏠렸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극복하고 예전의 활로를 되찾기위해 구도심은 테마가 있는 고장으로 거듭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최근 구도심이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심의 활기는 최근 잇따른 축제열기로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구도심의 지자체들은 다양한 테마를 중심으로 화제꺼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테마를 중심으로 한창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테마속에는 40계단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40계단을 찾아가 봤습니다. 




☞ 계단의 갯수가 40개라 40계단
40은 계단의 갯수가 40개라 이름붙여졌다고 합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수많은 우리 동포와 피난민들이 울고 웃었던 삶의 애환이 어린 곳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은 이 계단을 통해 자갈치시장이나 부산항 부두, 부산역, 국제시장 등으로 일을 나갔다고 합니다. 40계단은 지금은 새모습으로 단장되어 기념비가 세워졌고 경상도 아가씨 노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 40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 없어
왜 40계단일까. 40계단이라 이름붙인 사연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40계단은 1909년부터 1912년 사이 당시 부산에 거주한 일본인 거류민단이 쌍산(영선산 및 영국영사관 산)을 평평하게 깎아 내리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인들은 거류지에서 초량방면으로 가려면 쌍산 위의 영선고개를 넘어야 했다'(부산시보)


40이라는 숫자는 비록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오늘날 그 계단을 기념하는 것을 보노라면 예사로운 계단은 아닐 것입니다.


 


40계단 기념비 앞에서 올려다 보면 중간 쯤에 '아코디언 켜는 사람'이 한창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40계단에 오면 한국전쟁을 겪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 당시 40계단 앞은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또 부산항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거래하는 장터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40계단 기념비에는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노랫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러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


☞ 주변 테마거리 조성 다양한 볼거리
40계단 인근엔 옛시절 거리 모양을 본뜬 조형물들이 있습니다. 추억의 뻥튀기를 비롯해 전차신호등, 예전의 전봇대 등을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40계단 기념관' 한국전쟁 역사와 삶의 애환 오롯이
이곳엔 40계단 기념관도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의 역사와 삶의 애환이 담긴 40계단을 테마로 건립된 복합역사문화공간으로 지난 2003년 2월 개관되었습니다.


5층 전시실은 40계단을 중심으로 피난살이를 하던 피난민들의 힘겨웠던 생활상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 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부산에 오시거든 40계단과 40계단기념관을 꼭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면 곧장 가실수 있습니다. 인근엔 용두산공원도 있어 한꺼번에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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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0년 방송3사 특집프로그램 살펴봤더니?

한국전쟁 60주년 방송3사 특집프로그램 '무색'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만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당시에 태어난 전쟁둥이들이 만60세가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60주년이 되었다는 것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세대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바뀜에 따라 한국전쟁의 의미도 잊혀지고 나날이 그 체감정도도 약해집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결코 잊어서도 안될 오늘날 우리가 안고가야할 일종의 과제이자 현실입니다.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분단의 고통과 미래를 위해 남북한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할 지, 외세에 의한 분단과 앞으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어떻게 하면 국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여론의 바로미터라할 방송 3사 특집프로그램을 살펴봤습니다.

KBS 25일자 방송 편성표.
 
☞ 한국전쟁 60주년이 뭐기에?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은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60주년이라면 한 사람을 기준으로 헀을때 한 세대가 이미 흘러갔음을 뜻합니다. 그만큼 한국전쟁을 몸소 겪었던 세대가 많이 줄었음을 뜻합니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다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기 한국전쟁을 다시한번 더 환기시키고 이를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산교육이 됩니다. 이러한 시기를 맞아 방송사의 한국전쟁 관련 특집프로그램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 KBS 6.25특집 프로그램 8개 '과연 공영방송?'
25일자 KBS-1TV의 프로그램을 살펴봤습니다. 6.25 프로그램이 참으로 많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6.25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한 듯 보입니다.

6.25 기획 아침마당, 중계방송 제60주년 6.25 기념식, 6.25전쟁 60주년 특집다큐 끝나지 않은 종군일기,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의 약속, 6.25전쟁 60주년 특집 나라사랑 음악회, kbs특별기획 한국전쟁 제8부 정전, 6.25전쟁 60주년특집 우리는 기억합니다. 제2부 60년의 약속, 6.25기획 앙코르 TV문학관이 하루종일 방송됩니다.

방송3사가 모두 중계하는 6.25기념식을 포함해 6.25란 단어가 포함된 프로그램이 모두 8개나 됩니다. 

MBC 25일자 방송 편성표

☞ MBC 6.25 특집 프로그램은?
KBS를 살펴봤으니 이젠 MBC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MBC는 중계방송 6.25전쟁 60주년 기념식, 2010 MBC현대사연속기획 : 6.25특집 '노근리는 살아있다 제1,2부, 2010 MBC 현대사연속기획 6.25특집 '코레아일라' 등 6.25가 들어가는 관련 방송프로그램이 모두 3개입니다.

SBS 25일자 방송편성표.

☞ 월드컵 주관방송사 SBS는
KBS와 MBC에 이어 SBS를 살펴봤습니다. 방송3사가 모두 중계하는 중계방송 제60주년 6.25 기념식과 6.25특집다큐 1,2부가 6.25 단어가 포함된 프로그램의 전부입니다.

☞ MBC와 SBS 방송프로그램의 아쉬움?
MBC와 SBS 방송프로그램은 3개와 2개에 그칩니다. 모두 합쳐도 KBS-1TV의 8개에 미치지 못합니다. 물론, 방송프로그램을 많이 편성했다고 해서 6.25의 의미를 더 깊이 되새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8개를 편성한 방송사와 3개와 2개의 프로그램을 편성한 방송사는 분명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 6.25기념식 중계방송을 제외하고 프로그램 따져봤더니
6.25 기념식은 방송3사 모두 중계방송을 합니다. 따라서 이를 제외하고 6.25가 들어가는 방송프로그램을 살펴봤습니다. KBS-1TV는 모두 7개이고, MBC는 2개, SBS는 1개에 그칩니다. 어떻게 봐야할까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아니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블로그 이웃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블로그 이웃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블로그 관련 글 :  수박을 안먹는 아이?…6.25전쟁과 수박 어떤 사연이 숨어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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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을 안먹는 아이?…6.25전쟁과 수박 어떤 사연이 숨어있기에?

우유 대신 수박먹고 자라…수박 보면 6.25전쟁 상흔이?

한국전쟁으로 모유와 분유 없어 수박먹고 자라난 아이




"올해 생산된 싱싱한 수박 드세요"
"수박 맛있어 보이는데 많이는 못먹겠다"
"수박을 싫어하는 분은 처음이예요"

수박을 싫어하시는 분 보셨나요. 수박을 싫어한다기보다도 더 정확하게 말해 수박을 보면 다른 생각이 자꾸 나신다고 하십니다.


어머님과 이모님은 여름철이면 안좋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내내 말씀하십니다. 수박과 안좋은 기억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연을 듣고보니 수박을 보면서 갑자기 측은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수박-한국전쟁-6·25-휴전선


☞ 수박을 보면 6.25전쟁 상흔이 주마등처럼?

여름철 이모님이 방문하시면 여름과일 중에 가장 대접하기 좋은 게 수박입니다. 그래서 수박을 접시에 담아옵니다. 그런데 어머님과 이모님은 겨우 입에대는 시늉정도만 하십니다.

처음엔 수박이 몸에 안맞아서 안 드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번 지켜보니 일부러 안드시는 것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왜 그러시는 지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특이했습니다.


수박을 보면 6.25의 상흔이 절로 생각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수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 태어나자 맞은 한국전쟁
이모님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그해 5월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바로 그 다음달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한국전쟁둥이들이 다 그렇듯 이모님도 갓난아기라 무척이나 힘든 나날이었다고 합니다. 전쟁기간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제일 힘들다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납니다. 당시의 아이들은 전쟁을 모르면서도 전쟁을 배우고 자랐다고 합니다.


☞ 우유 대신 수박을 먹고 자라다보니
이모님은 전쟁터라 우유고 분유고 먹일게 없었다고 합니다. 외조모님이 제대로 먹지를 못했으니 우유가 제대로 나올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분유가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분유도 없던 시대이다보니 신생아에게 먹일 것이라곤 농촌에서 수박밖엔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생아였던 이모님에게 어머님이 수박을 떠먹여 배고픔을 달래면서 신생아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수박을 얼마나 많이 먹였는지 당시 신생아였던 이모님은 어느날부터인가 수박을 먹여도 먹지않고 울기 시작헀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님은 그래도 먹일게 없어 수박을 먹인다고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 수박을 따러 들판으로 가다가?
당시는 전쟁터라 이곳 저곳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장정들은 북한군 눈에  띄면 곧바로 끌려가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산속 토굴속에 숨어지내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북한군이 마을에서 물러가면 잠시 집에 들렀다가 이내 토굴로 도망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당시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머님이 밭에 수박을 따러가는 임무가 주어졌다고 합니다.


하루는 수박을 따서 낑낑거리며 겨우 들고왔는데 들익은 수박이었다고 합니다. 외조부님께 제대로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초등생이 제대로 수박을 따올리가 없습니다. 그날은 설익었거나 덜익은 수박을 이모님께 먹여야 했다고 어머님은 회상하십니다.


또 하루는 수박을 따서 들고오다가 그만 북한군한테 들켜 수박은 그대로 두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무조건 도망친 일도 있었다고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들려주십니다.



수박-한국전쟁-6·25-휴전선


☞ 수박후유증이  참으로 오래 지속?
한국전쟁이 3년동안 지속되었지만 그래도 수박이 있었기에 이모님은 신생아시절을 그럭저럭 지낼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생긴 것입니다.


자라면서 이모님이 수박을 잘 안먹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처음엔 설마 아이가 수박맛을 기억할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지켜봤더니 이상하게 수박을 잘 안먹었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신생아시절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는 알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이모님은 수박을 잘 안드십니다.    


☞ 전쟁이 끝난후 피폐한 세간살이속 지난한 가난이?
3년여간 지속된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외가의 세간살이는 참으로 피폐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피폐한 세간살이는 아마도 당시의 우리나라 가정들이 모두 겪는 하나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꿈을 품고 외조부님은 여름이면 수박을 이곳 저곳 심었다고 합니다. 산에도 심고, 밭고랑 사이에도 심어 배고픈 시절을 이겨보려 했다고 합니다. 이모님이나 어머님 모두 어린시절 수박을 무척이나 많이 먹고 자란 세대라 지금도 수박이라면 진저리가 날 정도라고 하십니다. 


☞ 그때 그 시절 그 아이들은 어디에?
한국전쟁이 벌써 60주년이 되었습니다. 6.25전쟁 60주년 기념일이 다가옵니다. 한국전쟁에 관해 다양한 평가와 여러가지 교훈을 되새겨 봐야할 시기입니다. 더불어 오늘날 미래지향적인 남과북의 관계 등에서도 곰곰이 생각해야할 시기입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그 지난한 삶을 살았던 그 아이들은 벌써 머리에 서리가 내렸습니다. 하나 둘 사라져갑니다. 역사속 한 장면으로 사라져갑니다.

더군다나 올해는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점점 퇴색되어만 갑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전쟁에 관해 의미없이 흘려보내도 되는 것인지 참으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때 그 시절,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오늘은 이런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그래도 수박을 보면 살가운 마음이?

어머님이나 이모님 모두 수박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수박을 보면 어린시절 지난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또다른 한편으론 어린시절 그 가난하고 못살았던 옛시절이 추억처럼 살갑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역설입니까. 아마도 당시엔 지질이도 가난했지만 인정만큼은 오늘날보다 훨씨 좋았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메말라가는 인정을 보시면서 당시의 소박한 정이 생각난 것입니다. 부모님 세대의 지질이도 가난하고 아찔했던 한국전쟁의 상흔, 이제는 오늘날 우리가 보듬고 껴안아 다시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 우리민족의 힘이 약해서 강대국들의 놀이판에 일종의 희생양이 된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국력을 키워 민족을 모으고 우리민족의 자존과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한민족의 저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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