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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파랑,노랑 거짓말?…거짓말에도 색깔이 다 있었네

사람은 8분에 한번, 하루에 200번 거짓말 해

새빨간 새하해얀 새파란 거짓말 등 거짓말 다양




"빨리 죽어야지. 오래 살기 싫어…"
"민간인 사찰은 예전부터…"
"장가가기 싫어…시집가지 싫어…"
"밑지고 팔지만…"
"어이구, 내 손주 미워 죽겠네"

사람들은 하루에도 대략 200번 정도의 거짓말은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거짓말은 일상화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거짓이 악의가 있느냐 혹은 악의가 없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거짓말을 악의적인 것과 악의가 없느냐에 따라 나누지만 거짓말에 색깔이 있다는 사실 아셨나요.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어떤 색깔일까요. 색깔로 본 거짓말을 살펴봤습니다. 올해의 만우절은 색깔로 본 거짓말을 통해 보다 유쾌하게 보냈으면 합니다.


만우절-거짓-거짓말-참말-위선사람은 8분에 한번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 사람은 8분에 한번, 하루 200번 거짓말을 한다?
지난 1997년 4월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제럴더 제리슨은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는 지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의 조사결과 사람은 8분에 한번꼴로, 하루에 200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연구대상인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하고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1위는 약속시간에 늦었을때 "차가 막혀서"였다고 합니다. 그의 연구결과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은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리학자 순이었다고 합니다.


이 조사를 실시한 심리학자 제럴드 제리슨은 "사람들이 참말만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참 끔찍한 세상이 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거짓말엔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거짓말엔 어떤 색깔이 있을까요.

☞ 새빨간 거짓말은?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이야기'라는 수필에서 "나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재밌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약간 하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거짓말도 거짓말 나름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은 말 전체가 100% 거짓말일때 흔히 사용하는 말입니다. 가장 안좋은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새까만 거짓말은?
거짓말에는 여러가지 색깔이 있지만 새까만 거짓말도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덮으보려는 나쁜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죄를 감추고 은폐하려는 의도를 가진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중에 가장 나쁜 거짓말은 역시 새빨간 거짓말과 새까만 거짓말입니다.

☞ 하얀 거짓말은?
영국에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하얀 거짓말은 거짓말은 맞지만 속아 넘어가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을때 이를 두고 말합니다.

걷기에 나선 사람이 너무 힘들어 할때 옆에서 조금만 가면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힘내라고 한다면 이는 하얀 거짓말에 해당할 것입니다. 

☞ 무지갯빛 거짓말은?
살다보면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은 말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가들은 픽션을 위해 여러가지 재료를 가져옵니다.

무지갯빛 거짓말은 이야기를 재밌게 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야기를 재밌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거짓말이라면 오색 영롱한 무지갯빛 거짓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 핑크빛 거짓말은?
핑크빛은 사랑은 떠올리게 됩니다. 사랑의 분위기가 핑크무드이기 때문입니다. 핑크빛 거짓말은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어울리는 거짓말입니다.

예들들면 '예뻐 보인다. 멋있어 보인다, 사랑해' 이런 말을 수시로 합니다. 들어서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말들입니다.

☞ 노란 거짓말?
노란색 거짓말은 아이들이 하는 거짓말에 해당합니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주사를 맞기 싫어서 "아까 맞았어"라고 한다거나 밥을 먹기 싫어서 "아까 밥먹었잖아"라고 말하는 귀여운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 정치인들의 말은 무슨 색깔?
사람은 대략 하루에 200번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최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가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옵니다. 민간인 사찰을 두고도 이 정당과 저 정당의 말이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래서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의 말이 역겹습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말은 거짓말로 따지면 어떤 색깔일까요.

☞ 피노키오처럼 코기 길어지지 않으려면?
사람은 하루에도 200번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 속에 무지갯빛 영롱한 거짓말이거나 핑크빛, 노란색, 하얀색 거짓말은 봐줄만합니다.

하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새빨간 거짓말과 새까만 거짓말은 하루속히 사라져야 합니다. 건전한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짓말은 언젠가는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져 언젠가는 들통이 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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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터트린 비정규직 직원의 마지막 퇴근길…비정규직은 悲정규직

비정규직 직원의 마지막 퇴근…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뭐길래?

똑같은 시간 똑같은 업무 하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엄청난 차이

“그동안 고마웠어요. 안녕히 계세요” “무슨 말이죠? 어디 가세요?”
“저 1일부터 그만둡니다.”
“어디 다른 데 가시나요?”
“아니요. 회사에서 1일부터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해요.”
“아니 그럼 이게 마지막이군요.”




저녁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는데 한 여사원과 나눈 대화입니다. 7월이 시작되면서 신나는 일과 서글픈 일이 동시에 밀어닥칩니다. 해수욕장이 개장한다고 곳곳에서 축제 분위기입니다.

그런 반면에 비정규직법이 7월이 시작되면서 발효돼 아픈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한쪽에선 즐거워하고 한쪽에선 슬퍼합니다. 한 하늘 아래 살면서 딴세계를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무엇이 이런 슬픈 역사를 만들어 냈을까요. 답답한 현실을 이야기 하려니 가슴이 턱턱 막혀옵니다. 무섬증마저 느끼게 합니다.



1. 비정규직 직원들의 슬픔

저녁 근무를 마치자 이곳 저곳에서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책상도 정리합니다. 후임이 누가 올지 모른다면서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습니다. 평소 예쁘게 기르는 꽃들도 챙기기 시작합니다.

비정규직 직원의 책상은 깨끗합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책상을 가만히 지켜보려니 마음 한구석이 퀭해집니다.


떠나는 직원은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인사를 합니다. 어떤 직원은 인사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해 회사를 빠져나갑니다. 사무실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2. 비정규직 직원을 배웅해보니
한 비정규직 사원과 차를 함께 타고 퇴근했습니다. 평소 묵혀 둔 짐이 많아 차에 실어보니 제법 가득찹니다.

그 사원의 집까지 차로 이동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뭐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들어줍니다. 들어주는 것 외에는 내가 딱히 할 일이나 말이 없어서 그냥 단순하게 들어줍니다.


회사에서 비정규직법이 통과안되면 내일부터 출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답니다. 사실상 비정규직법에 의해 해고가 되는 셈입니다. 참 서글픈 현실입니다. 이 직원은 만3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에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해주지 않는 한 회사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 결국 울음 터트린 비정규직 사원의 마지막길
회사와 노동조합, 나아가 정치권에 대한 원망이 가득합니다. 특히 명분도 실리는 없는 정쟁에 빠진 정치권에 대한 원망이 결국은 울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정치권이 정쟁에 빠진 사이 이 비정규직 사원은 결국 회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마지막 길이 참 사람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그 울음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정치권에 대한 원망이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 한켠에 마구 비수가 되어 꽂힙니다.


정규직이라는 게 이렇게 부끄러운 것인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정규직을 부끄럽게 만드는 현실이 참 서글퍼집니다.


4. 비정규직법이 뭐기에
정치권에서는 비정규직법 개정을 위한 협상을 했습니다만 결국은 이 협상이 좌초되면서 지난 2007년 마련된 비정규직법, 다시말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7월 1일부터 적용됩니다.


지난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법률이 2년이 지난 2009년 7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됩니다. 그 규정은 비정규직법 4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법 4조를 살펴봤습니다.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7월 1일부터 사업주는 2년 이상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해고해야 하는 고민에 직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5. 대안은 없을까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권이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뭐가 진정으로 비정규직을 위하는 길인지 근본적인 처방을 알면서도 지루한 소모전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는 사이 이땅의 비정규직으로 종사하시는 분들은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 눈물은 하늘을 타고 흘러 내립니다. 대지를 적시며 흘러갑니다. 정치인들에게도 흘러내립니다.


정치권은 이 눈물을 우산으로 가려 애써 외면하시렵니까. 앵무새처럼 자고 일어나면 ‘민생’을 외칠게 아니라 비정규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지금도 거세게 비정규직들의 눈물은 흘러 내립니다. 힘이 없고 도움이 못되어주는 필자에게도 흘러내립니다. 이 눈물은 정치권에도 내립니다.


그 눈물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 눈물을 장마에 내리는 비라고 애써 우기시렵니까. 그 눈물이 보기 싫어서 우산으로 가리시렵니까. 그렇다면 이땅엔 희망이 없습니다. 이땅이 살만한 희망이 있는 곳이란 것을 보여주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들을 보듬어 보세요. 그래서 따뜻한 눈물로 이땅을 적셔볼 의향은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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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짱, 이곳이 당신의 또다른 고향 아시죠…이곳 꼭 보세야죠

노짱에겐 고향이 두 곳 있습니다. 한 곳은 태어나 자란 김해 봉하마을입니다. 또다른 고향은 정치적 고향입니다. 그곳은 다름아닌 부산 동구지역입니다.




이제 대통령님과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조금씩 다가옵니다. 대통령님에게 고향마을 못지않게 정치적 고향도 꼭 보시고 가시라고 부산 동구지역을 다녀봤습니다.


노짱, 잘 보세요. 이곳 부산 동구가 한명의 변호사 노무현을 정치인으로, 그리고 대통령으로 키워낸 곳입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정치를 시작하셨습니다. 골목골목을 성능 안좋은 메가폰을 메고 누비기도 하고, 때로는 마이크 없이 목소리로 외치다 목이 쉬기도 했던 그때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부산 동구 일대. 부산역과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1. 노짱을 제13대 국회 초선의원으로 키워낸 곳 부산 동구

1988년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됩니다. 1971년 제8대 국회이래 17년만의 소선거구제에 의한 선거였습니다. 부산 동구에서도 1명만을 뽑았습니다.


노짱은 이곳에서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이 되었습니다. 중선거구제 시절엔 중구와 동구 영도구가 한 선거구였습니다. 이 3개의 구에서 2명의 국회의원이 배출되었습니다. 박찬종, 김정길 전 의원 등도 모두 이곳을 통해 배출된 국회의원입니다.
 
부산 동구지역은 대대로 야당성향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여당 후보가 별로 선전한 적이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전국구를 포함 민주정의당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을 획득했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이 과반수에 미달하는 이른바 여소야대국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짱은 초선의원 금뱃지를 처음으로 다셨습니다.


노짱은 당선사례를 하시려고 트럭을 타시고 손을 흔들며 달동네를 돌아다니셨습니다. 동구 곳곳엔 노짱의 감사 플래카드가 내걸렸습니다.

하지만 노짱은 1992년 3월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애석하게도 낙선하셨습니다. 그래도 노짱은 트럭을 타시고 동구지역을 돌아다니시면서 사람들에게 성원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부산역 대합실. 이곳을 통해 노짱을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부산역 광장. 이곳에서 노짱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호소하셨다.

초량동 산복도로. 산복도로는 높은 곳에 도로가 뚫려 있다.

초량동 일대의 올망졸망하게 붙은 집들.


2. 노짱이 선거운동 했던 부산역과 초량동 일대

초량동 일대는 부산역과 부산항이 인접해 있습니다. 부산의 많은 곳이 바다를 끼고 있지만 초량동 일대는 부산항이 손에 잡힐듯 한 눈에 들어오는 곳입니다.

노짱은 이곳에서 1988년 4월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1992년 3월24일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1995년 6월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선거때마다 이곳 부산역에서 정견발표를 하셨고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부산역에서 시작, 차이나타운 거리(일명 텍사스촌), 초량동 주택가, 초량시장, 초량동 산복도로를 누비면서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동일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린 후보자 정견발표회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노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정동 산복도로와 수정동 일대.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 전경.

동구 수정동일대. 부산항과 저멀리 영도가 보인다.

수정동 산복도로와 수정산.


3. 노짱이 누비던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

수정동과 좌천동 일대는 노짱이 초선이 되기 위해, 또 재선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던 시절 달동네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집을 짓고 살아 일명 하꼬방집이 참 많았습니다. 그곳을 일일이 누비시면서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선거운동을 하시다가 연탄을 나르는 주민을 보면 돕기도 하셨습니다. 요즘이야 소방도로도 개설되고 차로 움직이면 금방이지만 그 좁디좁은 곳을, 높은 동네를 선거운동 하시면서 돌고돌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렇게 선거운동을 하셨습니다. 수성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린 후보자 정견발표회엔 노짱의 인기는 단연 높았습니다.


범일동 일대. 저 멀리 안창마을도 보인다.

범일동 일대. 부산진시장과 좌성대가 보인다.

범일동과 좌천동 일대. 저 멀리 부산항이 들어온다.


4. 노짱이 지지를 호소하던 범일동일대

범일동 일대도 산복도로들 낀 동네라 선거운동 하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안창마을까지 다녀가려면 다리가 후들거릴만큼 피곤합니다. 좁디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걸어서 일일이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셨습니다. 

좁은 골목길이 많은 지역이라 범일국민(초등)학교에서 열리는 후보자 정견발표회가 참 중요했습니다.
당시 노짱은 특유의 날카로움과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청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5. 오늘의 부산 동구

노짱 보이세요. 부산의 동구는 초량1동, 초량2동, 초량3동, 초량6동, 수정1동~수정5동, 좌천1동과 좌천4동, 범일1동, 범일2동, 범일4동, 범일5동으로 모두 14개동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당시와 비교해서 동이 많이 줄었죠. 인구가 줄어 통폐합되어 그렇습니다.


골목골목 누비던 당시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어떠세요.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요. 아니면 많이 변했나요.


6. 노짱을 기억하는 부산 동구 주민들

세월이 흘러 부산 동구지역도 많은 사람이 이사를 가고 왔습니다. 필자 역시 16년간 살아온 동구를 떠나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노짱 이야기를 꺼내자 주민들은 금방 기억해냅니다. 선거때마다 강한 인상을 남긴 특유의 제스처도 지어 보입니다. 식당을 운영하시던 분들은 소탈하게 먹성좋은 이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노짱을 배출한 정치적 고향 부산 동구 주민들은 노짱의 서거소식이 더 슬프게 와닿습니다.


노짱 보셨나요. 기억나세요. 이렇게 살가운 국민들을 뒤로 하시고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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