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횡단보도가 위험?…횡단보고에 차가 씽씽? 횡단보도 마음놓고 건너게 해주세요

세미예 2010. 3. 25. 11:06

횡단보도 파란불 신호가 들어와도 자동차 눈치보고 건너야 합니다. 최근 보행권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찔해서 횡단보도 조차 마음대로 건널수가 없습니다. 


언제까지 차의 눈치를 보고 보행을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과연 보행권을 마음껏 누릴 수가 없는 것일까요. 




필자는 최근 보행권을 위협받는 사례들을 자주 접하면서 보행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행권도 하나의 공중도덕일진대 왜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요.

공중도덕은 지키면 모두가 편하고 나 하나 지키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불편합니다. 마음놓고 횡단보도조차 건널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해봤습니다.



횡단보도 파란신호도 마음놓고 건널수가 없다니!
엊그제 필자는 아찔한 경험을 했습니다. 횡단보도 파란신호가 바뀌어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택시 한대가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인데도 휙 지나갑니다. 택시가 필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 지 급브레이크를 밟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출발해버립니다. 필자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오던 한 어르신은 이내 놀라서 쓰러집니다.

그런데 이 택시는 횡단보도를 지나 다른 신호에 걸려 조금 가다가 멈춰섭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택시한테 달려갑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저씨들이 택시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립니다.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택시기사 아저씨는 '미안하다'는 말한마디 안합니다.

차창을 열고 오히려 큰소리?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어르신이 이 영업용 택시의 차창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차창을 내린 택시기사는 대뜸 '내가 뭘 잘못했는데? 뭘 어떡해. 바쁘니까 그냥 가보슈'라고 말합니다. 

사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그토록 하기 힘든 것일까요. 오히려 큰소리를 치더니 이내 육두문자를 내뱉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대꾸할 엄두를 못냅니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참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께 그냥 보내주자고 권했습니다. 




잘못을 모르는 사람 어떡해?
어르신은 사과를 받으려다가 젊은 택시기사한테 오히려 봉변을 당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드러누우세요. 뺑소니차로 신고해 버리고요. 도대체 반성이나 잘못을 모르는 사람한테는 따끔하게 혼내주어야 해요'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중 한 분이 이렇게 알려줍니다.  
 

필자와 그 어르신은 차마 그렇게 할수가 없었습니다. 단순하게 사과를 받으려고 했었는데 끝끝내 실패했습니다. 그 사이 신호가 바뀌자 이 택시기사는 잽싸게 도망치듯 차를 몰고 사라져 버립니다.

위협받는 보행권 이대로 좋을까?
일부의 그릇된 운전자들로 인해 보행권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횡단보도조차도 마음대로 건널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건널수있는 파란불인데도 차들이 씽씽 달립니다. 앞으로 휙 지나갈때면 놀란가슴을 쓸어내려야 합니다.


횡단보도의 보행권이 이렇게 침해받아도 되는 것일까요. 마음놓고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는 대책은 없는 것일까요.




보행권 보장해줘 마음놓고 건널 수 있게 해줘야
보행권은 차들이 신호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보행자들이 위협에 처하게 됩니다. 또다른 보행권 침해는 공사로 인한 것입니다.  인도를 막아선 각종 자재와 공사물품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히려 차도로 다녀야 합니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은 아닐까요.




보행권 범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절실
보행자들이 마음놓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작은 실천에서 출발합니다. 이를테면 조금 급하더라도 횡단보도 파란불일땐 자동차를 운전하지 말고 기다린다면 이 자체만으로도 보행권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질서는 지키면 모두가 편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모두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횡단보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사회적인 적극적 관심과 노력이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오늘 또 우리 아이가 건널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