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5살 아이의 눈에 비친 미디어법 강행처리는

세미예 2009. 7. 27. 06:18

“미디어가 뭐예요”

“악법은 뭐예요”

“투표가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떤 대답을 하시겠어요. 어른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아도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집니다.


그런데, 어린 자녀한테서 이런 질문을 받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요즘 매스컴의 주요 이슈가 미디어 법안 강행처리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오늘은 이 문제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어린 딸

어린이집에서 한글을 배운 어린 딸은 글자를 깨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단어의 뜻을 읽고 의미를 새기곤 합니다. 또박또박 단어를 읽으면서 뜻을 새깁니다.


단어마다 새로운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입니다. 그러면서 그 의미를 몹시 궁금해합니다. 책속의 단어들도 곧잘 질문해옵니다. 한글이 재밌는 지 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거리의 입간판 마저 또박또박 읽고 이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해가 안되면 엄마와 아빠한테 곧장 질문을 하곤 합니다. 


병원 텔레비전의 뉴스채널 귓가엔 뉴스가 내려앉고

딸은 최근 입원한 갓난아이인 동생을 찾아옵니다. 엄마랑 아빠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종합병원의 여기저기 대기실엔 텔레비전이 나옵니다.


병원엔 여러 곳에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습니다. 무료함을 달래고 기다리는 시간을 달래주려고 설치한 듯 합니다. 병원 텔레비전의 가장 많이 선택해놓은 채널은 역시 실시간 뉴스채널입니다. 사람들이 채널을 그곳으로 돌렸는 지 아니면 병원에서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텔레비전속엔 뉴스가 연신 흘러 나옵니다.


어린 딸의 끊임없는 질문

“미~디~어다. 아빠 미~디~어가 뭐야.”

“미디어는 다리와 같은 것이예요. 이곳 저곳 소식을 다리처럼 연결해주는 것이예요. 텔레비전, 신문과 같은 곳에서 이곳 저곳 소식을 다리처럼 사람들에게 연결해서 알려주는 거예요.”

“미~디~어~법. 엄마 미~디~어~법이 뭐야.”

“친구들이랑 모래놀이할 때, 친구들이랑 엄마도 하고 아빠도 하고 친구들도 하잖아. 이렇게 역할을 정하고 누가 엄마할 것인지 누가 아빠할 것인지 친구들이랑 정하잖아. 이렇게 친구들이랑 정하는 것처럼 텔레비전에서 어떤 동물 친구가 나오는 지 미리 정해놓은 것이예요. 우리딸 좋아하는 뽀로로가 텔레비전에 잘 나오도록 약속을 해놓은 것이예요.”


“날~치~기. 아빠 저게 뭐야”

텔레비전 자막을 보고 아이가 단어를 읽고 궁금해합니다. 순간 부끄러움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집니다. 하필이면 이런 단어를 읽을 게 뭐람. 연신 부끄러움과 난처함이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아저씨들이 일이 바빠서 모래놀이할 때 누가 엄마하고 누가 아빠할 지 정하는 것을 빨리 약속하고 모래놀이 하려고 하는 것이예요.”


‘대~리~투~표다. 엄마 투표가 뭐예요. 대~리~투~표가 뭐예요.“

“???.”

선뜻 자막의 글들을 읽어보다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저씨들이 싸워요." 미디어법과 관련해서 법 통과 당시의 자료화면이 텔레비전을 타고 흘러 나옵니다. 딸애는 싸운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알려줄 방법이 없습니다.


“싸우는 게 아니고 어른들이 종이놀이를 하는 거예요. ”

이렇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궁색해 보입니다. 뭐라고 그 장면을 설명해야 할지 딱히 마땅한 설명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교육상 안좋은 자료화면

여러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는 병원 접수실 텔레비전에 뉴스채널의 미디어법 당시의 장면들이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썩 유쾌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장면이 어떻게 하다보니 어린 딸의 눈에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딸에게 제대로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교육상 별로 유쾌한 장면도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이런 장면까지 우리의 아이들에게 보여줘야하는 그런 슬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봐도 납득이 안되는 강행처리

화면을 타고 들어온 미디어법 당시의 처리장면이 클로즈업 됩니다. 밀고 당기는 장면과 직권상정, 재투표, 대리투표까지. 다시봐도 당시의 장면은 볼썽사납습니다.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둬서 통과시켜야할만큼 중차대한 법이었을까요. 민생 관련법은 제쳐두고 우선 통과시켜야할만큼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정치권은 툭하면 ‘민생’을 외칩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선 민생 관련 법은 줄줄이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민생보다 이 법이 더 중요한가요. 그래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통과시켜야 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제와서 다시 ‘민생’을 외칩니다. 그렇게 ‘민생’이 중요했다면 한달동안 국회를 열어 왜 민생관련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을까요.


이런 국회에서 ‘민생’을 다시 외친다면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저런 논리를 아무리 들어봐도 궁색해 보입니다. 그래서 더 슬퍼보입니다. 이땅의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요. 그렇게 무리를 해서 통과시킬만큼 그 법이 중요했다고요. 역사는 오늘을 반드시 기록하고 재평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재평가후엔 냉정한 민심의 부메랑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