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잊지못할 아찔했던 설명절의 사연 10가지가 새록새록

세미예 2009. 1. 25. 23:49

설명절 입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답게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눈이 쌓이고 길이 험하고 멀어도 마음만은 기쁘게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선물을 한아름 안고 갑니다. 선물이 없어도 마냥 즐겁습니다.




하지만, 올 설날은 그렇게 기쁜 날만은 아닙니다. 경기침체의 여파가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설날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도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사연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필자의 사연 중 아직도 못잊을, 아니 평생 못잊을 특별했던 설날의 사연을 담아봤습니다.



실직했던 그해의 설날, 그 막막했던 그날

10년 전 설날이 현재의 경제위기와 비슷했습니다. IMF 경제한파가 몰아쳤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그 당시 실직의 아픔을 겼었습니다. 그리고 설날을 맞았습니다. 일가 친척들이 모였습니다.


아시는 친척들은 빨리 직장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건넵니다. 모르는 친척분들은 직장생활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황당하고 솔직히 화도 났습니다. 설날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친척들에게 인사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차례만 지내고 방안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정말 어디를 나다닐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뭘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직장을 다시 다니게 될지도 아득했습니다.


큰 회사도 자꾸 망하는 시대다 보니 취직을 엄두도 못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취직을 꿈꿀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군대서 처음 맞은 설날, 눈물이 핑돌았죠

80년대 군대를 갔습니다. 군대도 설날은 찾아오더군요. 첫 설날은 일병때 맞았습니다. 일병땐 졸병시절이고 춥고 배고픈 시절입니다. 그런데 차례랍시고 한꺼번에 지내게 하더니 갑자기 고향을 향해 큰절을 하라고 하더군요.


이까지는 봐줄만 했습니다. 그런데 고참들이 어버이 노래를 부르게 하더군요. ‘낳으실제 괴로움~’ 이 노래를 군대서 불렀더니 눈물없이 부를 수 없겠더군요. 노래를 부르는 데 눈물이 뺨을 적셨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고참들이더군요. 눈물샘을 마구 자극시키다니요. 이렇게 군대서 맞은 첫 설날은 부모님을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 눈물샘을 자극한 정말 잊을 수 없는 설날이었습니다. 


할머님이 설연휴 돌아가신 날

어린시절 할머님이 설명절날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부모님과 고모님들까지 모두 모여서 임종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린 나이에 설날은 신나는 날이건만 전혀 신나게 뛰어놀거나 재밌게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세뱃돈도 받고 싶었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자꾸 만류하시더군요. 나중에 회초리까지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할머님이 임종을 하신후 집안 분위기로 대충 무슨 뜻인줄 알았습니다. 슬픔이 집안 가득 흘러 넘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철없던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 응급실에서 보낸 설날

몇 해전 설명절날이었습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인지 소화가 안됐습니다. 급기야 토하고 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어렵사리 약국을 찾아 약을 지어 먹었지만 도저히 가라앉지가 않았습니다.


점심을 넘겨도 차도가 없이 자꾸 토하기만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병원 응급실에서 링겔을 맞고 저녁까지 꼬박 누워서 보내야 했습니다. 설명절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갑자기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온갖 생각의 꼬리속에 응급실에 누워있다가 저녁 무렵 상태가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사람은 ‘뭐 맛있는 것 혼자 먹다가 그런 일을 겪었냐’면서 비꼬더군요. 


성묫길 나섰다가  오도가도 못한채 길거리에 보낸 설날

결혼후 맞은 첫 설날 부모님이 산소에 성묘에 나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성묫길을 아침 10시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남해고속도로가 워낙 막혀서 꼼짝달싹을 하지 않더군요. 엄청난 성묘인파에 오도가도 못했습니다.


마산까지 가는데만 오후 2시 넘었습니다. 산소까지는 그래도 한참 가야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은 성묘행을 포기하고 오후 3시 마산 인근에서 차를 돌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사람은 그날밤 고향의 산소가 그렇게 멀리있는 줄 몰랐다면서 한 마디 하더군요. 성묘도 못가고 중간에서 포기한 설날,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차례 지내러 가다가 추돌사고가 

한해는 차례를 지내고 작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그것도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뒷차가 추돌을 한 것입니다. 빨리 작은 아버지님 집으로 가야 하는데 추돌사고가 나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일단 차를 세우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대충 사고를 처리했습니다. 마음이 급한데 사고 때문에 차례가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월 초하루부터 사고로 시작한 한 해가 되었습니다. 아마 상대방도 정월 초하루라 마음이 급한 듯하여 대충 수습하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하필이면 설날 당직이람

설날 당직을 여러 번 섰습니다. 설날 당직이 자주 배정되더군요. 그래도 결혼 전에는 설날 당직을 서도 별 것이 아니었는데, 결혼을 한 후엔 설날 당직이 몹시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설날과 추석당일 거푸 당직을 섰습니다. 


명절 당직의 경우 회사에 도시락을 싸들고 가야합니다. 뿐만아니라 회사의 문이란 문은 모두 꼭꼭 잠겨 있어서 통풍이 잘 안돼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설연휴 구입한 첫 로또가 처음으로 4등 당첨 

한 해엔 처음으로 로또를 샀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로또가 많이 팔릴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주의 로또를 봤더니 4등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10만원 조금 넘는 돈을 세금 제하고도 8만원 가량 생겼습니다. 고민끝에 이 돈은 아이의 저금통에 넣어 주었습니다. 참 기분이 좋은 설날이었습니다. 



아래층과 층간소음 문제로 다툼이

지난해부터 아이가 뛰다보니 층간소음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놀이방메트를 온 거실에 깔고 아이한테 '토끼발'을 가르치면서 주의를 주건만 잘 안됩니다. 한번씩 뛰면 아랫집에서 곧장 올라와 나무라십니다. 지난해엔 설날 아침 차례지내러 가야하는데 그만 다툼이 생겼습니다. 





설선물 변질 

한해는 회사에서 받은 선물을 들고 본가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몇일 후 열어보니 유통기간이 이미 지난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받은 선물인데 유통기간이 지난 것이었습니다. 햄이었는데 아마도 거래처랑 서로 교환을 한 것 같았습니다. 찜찜했지만 그래도 받은 것이라 들고 갔는데 유통기간이 이미 지나 있었습니다. 이까지는 좋았는데 햄을 뜯어 개봉해 요리를 하던 집사람이 아무래도 냄새가 이상하다기에 살펴봤더니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누구한테 하소연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받은 선물이고 회사에서는 거래처와 거의 공짜가격에 구입한 것같았기 때문입니다. 먹지도 못하고 곧장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참 기분이 묘한 설날이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참으로 여러가지 설날사연이 생겼네요. 40대 중반을 넘어선 어느날 설날을 돌아보니 참으로 다향한 사연들이 있었군요. 블로거 여러분들은 좋은 설날의 추억들만 생기시고 올 설명절기간 내내 즐겁게 지내시고 오가시는 길 뻥 뚫리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