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생활

변또 도시락이 뭐예요?…엄마와 아빠는 저렇게 살았다? 아날로그 유품 봤더니?

세미예 2008. 10. 16. 08:12

"어린시절 당시 생각만해도 우습고 참 측은합니다."

"당시 몹시 가난했던 살림에 몹시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배가 고파 울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은 물질적으로 풍부해졌지만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것 같아요."

"맞아요, 당시에는 이웃간에 정도 있었고 잘 지냈잖아요."

"맞아요, 요즘 이웃 사촌 제대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시간은 자꾸만 흘러갑니다.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어 역사가 흘러갑니다. 이렇게 자꾸만 어제가 쌓여서 과거가 되고 시간을 자꾸만 흘러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 늙어만 갑니다. 사람들은 세대를 이어지면서 과거와 역사 속 이야기로 치부됩니다. 하지만 어제의 유산과 삶의 방식은 보존하고 잘 가꾸어야만 내일도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입학과 동시에 배운 한글

“나 너 우리…”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배웠던 국어교과서 내용입니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여름이면 냇가에서 멱을 감던 시절이 혹 기억나십니까. 멱을 감고난후 금방 말라버리는 검정 고무신. 닳기도 잘 닳아 비오는 날 구멍난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간 적은 없습니까.



변또 소리에 아이스케끼 먹고 싶은 마음에?

변또(도시락)를 먹고 보자기에 메고 딸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논두렁과 산길을 지나 집으로 뛰어간 기억은 없습니까. 여름이면 “아~이~스~케~키”라는 아이스크림 장수 소리에 입맛만 다신 적은 없습니까. 교복을 입고 등교하다 상급생의 두발검사에 걸린 적은 없습니까.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국민학교 시절 6년을 꼬박 다녀야만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이 가난하거나 집에 농사일을 거들어야할 형편이 될 때에는 학교를 뺴먹곤 했습니다. 아이들도 당시엔 농사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간신히 학교를 다녀서 졸업장을 타게 되면 그야말로 기뻤습니다. 졸업식 때면 부모님들이 축하해주고 눈물까지 흘리는 어머님도 있었습니다.




과거의 유산은 오늘을 있게한 소중한 자산

어느덧 추억이 되어버린 1970~80년대 흔히디 흔한 우리의 일상이었습니다. 그 시절 지질이도 가난했던 그 때가 이젠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그래도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유산이자 삶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이야 교과서도 잘나오고 초등학교 입학전부터 글자를 깨치지만 예전엔 코흘리개들이 많아 손수건을 옷에 붙이고 입학했습니다. 그 때부터 글자를 깨치기 시작한 것이죠. 방학무렵 나눠주던 성적표. 이를 들고 집으로 가면서 친구들마다 희비가 엇갈리곤 했었죠.

 


부산 옛 도심을 나갔다가 이런 추억의 문구류 및 생활용품전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40계단으로 유명한 40계단문화관에서 열리는 70~80년대 '추억속 시간여행전'으로 떠나보실까요. 혹시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라면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오를 것입니다.(자료가 많아 1,2편으로 나눠 올리겠습니다.)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과거를 돌아보는 기회로

잠시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어린시절로 잠시 추억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혹시 이 시절을 경험하지 못하신 분들은 엄마와 아빠가 생활했던 것들입니다. 함께 추억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과거가 말해주는 오늘의 현 주소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고 우리의 조상들이 생활해 왔던 길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조상들의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헌신이 녹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유산을 잘 배우고 잘 보존하고 잘 가꿔 후손에게 전해줘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쌓여 어제가 되고 어제가 쌓여 과거가 되기 때문에 오늘의 삶이 그 만큼 중요하고 이는 과거의 유산으로 배운 게 큰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