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칼럼

FTA와 총선, 그리고 척화비?…척화비의 기구한 운명은?

세미예 2012. 2. 17. 07:31

"오늘날엔 개화와 척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개화 척화를 떠나 문화재인데…"

"시대가 사상마저 자꾸만 바꾸게 만드네요."

"아마도 사상이 바뀐게 아니라 실리를 추구하다보니 그렇겠죠."

"시대가 바뀐만큼 바뀐 시대에 적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시대 정신을 담아낼 그런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날은 전세계가 하나의 나라로 변해 갑니다. 그래서 흔히들 지구촌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나라와 나라를 뛰어넘는 지구촌 사회이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그 중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대표적인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입니다.

최근엔 FTA가 흔하게 사용됩니다. FTA 시대를 맞아 생각나는 것이 구한말 척화비입니다. 하지만 141년이 지난 오늘날 이 비석들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실정입니다. 

대원군-척화비-FTA-양산 상북면 소토리 척화비한국과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척화비(斥和碑)가 새삼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경남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척화비.



☞ 총선 정국과 FTA, 그리고 척화비는?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요즘 세간의 화제는 단연 총선입니다. 총선 출마자 중에 FTA 주역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FTA 테마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면서 올해로 꼭 140년이 된 척화비(斥和碑)가 새삼 눈에 띕니다.

 

☞ 척화비는 어떤 존재?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글자 그대로 '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의 척화비(斥和碑)는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다지고,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외세 침입을 경계하도록 하고자 1871년 4월에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세운 비석입니다.





개화정책으로 철거되거나 사장 

척화비는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발하면서 대원군이 청나라로 끌려가고 비로소 조선이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면서 상당수 철거되거나 땅에 묻혔으나 141년이 지난 지금도 부산과 경남북, 충북, 전남 등지에 20개 가량 남아 있습니다.

 

 전국에 20개 가량 남아, 철거 혹은 보전(?)
이들 척화비는 대부분 문화재자료로 지정이 돼 있으나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에 방치되면서 사실상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가덕도 척화비-대원군-척화비-FTA-양산 상북면 소토리 척화비가덕도 척화비.

 

 

가덕도 척화비는?
부산 강서구  성북동 56-1에 위치한 척화비는 천가초등학교 교정에 들어서 있습니다. 이 척화비는 부산시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울타리 조차 없이 기념물을 알리는 팻말과 함께 비석만 달랑 서 있을뿐 찾는 이 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장 척화비-가덕도 척화비-대원군-척화비-FTA-양산 상북면 소토리 척화비기장 척화비.

 

 

기장 척화비는?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444-5번지에는 부산시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된 척화비가 있습니다. 이 척화비는  대변초등학교내 대변 포구에 인접해 있습니다. 기념물임에도 불구하고 울타리 조차 없이 비만 달랑 서 있습니다.


기장 척화비-가덕도 척화비-대원군-척화비-FTA-양산 상북면 소토리 척화비양산 소토리 척화비.

 

 

양산 소토리 척화비는?
경남 양산시 소토리 소토초등학교 뒤편 광주안씨 문중 재실인 소계서원(蘇溪書院)의 정문인 ‘유도문(由道門)’ 오른쪽 담벼락 아래에도 척화비가 있습니다. 이 척화비는 양산시 경남유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척화비는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안내팻말도 서 있습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천덕꾸러기 신세 척화비
전국에는 대략 20개 가량의 척화비가 있습니다. 각 지자체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사실상 문화재로서 별다른 가치를 갖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바로 부근에 척화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척화비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FTA시대에 척화비 관리 어떻게?
이처럼 141년 된 척화비가 갈수록 천덕꾸러기 신세를 받으면서 일부에서는 척화비를 철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전국적으로 20개 가량이나 되는 데다 크기는 물론 비석에 적힌 글자도 똑같기 때문에 사실상 문화재로서 가치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척화비의 내용이 지금 시대에 맞지 않고 수량도 많은 편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후세에 전해준다는 의미에서 굳이 철거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습니다. 척화비의 효율적 관리 방안과 관심이 절실해 보입니다.